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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네가 집에 오지 않아서 걱정하시던데 어떻게 된 거니?"
"아~ 깜박하고 집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생각이 나서 할아버지한테 인터폰하고 할아버지 집으로 왔어."

하교 후 제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않는 아들 녀석 때문에 걱정을 한바탕 쏟아내는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고 아이와 통화해보니 나름 사정이 있었더라고요. 벌써 몇 번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발걸음을 하니 중간에 아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친정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웁니다.

베란다에서 아이의 하교를 지켜보시던 친정 엄마가 할머니 집을 지나 우리 집 방향으로 무심히 걷는 딸아이를 부른 적도 있다고 하십니다. 잠깐만 딴 생각을 해도 아이들은 몸이 집으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고 우리 집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도 어색할 겁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친정 부모님이 계셔서 언제든지 아이들을 위해 뛰어다녀 주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들 키워볼까 했는데...

쌍둥이 남매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쌍둥이 남매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3학년부터 학교 내의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듣고 학원으로 이동하거나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하교합니다.

지역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은 성장했고 1~2학년 동안 자유시간을 원하던 아이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하교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월 중순으로 향하는 시점에도 하굣길을 아이가 깜박하는 걸 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쌍둥이 남매는 2학년까지는 매일 등교와 하교마다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학원-집의 트라이앵글을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고 출근해도 되는 근무환경에 놓인 3학년이 되면서 아침에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또 3학년의 수업시간은 1~2학년 때 보다 한 시간씩 늦게 끝나고 정규수업 이후에 돌봄 교실 대신 방과 후 수업을 매일 한 가지씩 배치하니 학교에서 3시 이전에 하교하는 날이 없어졌습니다. 거기에 학원을 한 개나 두 개만 다녀도 금세 부부가 퇴근하는 저녁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저녁에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킹맘 카페에는 언제 시터의 돌봄을 그만둘 수 있냐는 질문이 종종 올라옵니다. 아이들이 좀 커서 어른의 보살핌이 덜 필요해지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워킹맘뿐만 아니라 블랙 시터(아이를 소홀히 돌보고 고비용이 들어가는 시터)를 만나 잦은 교체를 경험하거나 혹은 오랜 고용으로 자꾸 인건비가 상승할 때마다 시터 월급을 주려고 워킹맘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털어놓는 하소연입니다.

오죽하면 아이를 양가 부모님이 챙겨주시거나, 좋은 시터를 만나는 것은 워킹맘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만큼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워킹맘에게 대리 양육자의 존재가 절대적입니다.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 육아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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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학원을 과하게 다니는 것을 아이가 싫어하거나 흥미나 아이의 수준과 일치하는 적당한 학원이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아이의 하교와 부모의 퇴근 사이 시간 공백이 발생합니다. 한참 성장할 나이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간식을 챙겨 먹는 일도 녹록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부모가 없는 빈집으로 친구들이 모여 어울리면서 안 좋은 미디어 매체를 접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항간에는 낮 시간에 혼자 있는 아이와 친구관계를 맺기를 꺼려 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등의 기사를 접할 때에는 더욱 불안해집니다. 짧은 등하굣길이라도 어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직장 선배는 아이가 중학교 1학년과 5학년이나 됐는데도 입주 시터를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모두 출근이 이르고 퇴근이 늦으니까 아침도, 간식도, 저녁도 챙겨주는 어른이자 아이들이 하교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빈 집을 경험하지 않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입주 시터의 고용으로 적잖은 비용을 사용하지만 아이들의 하교 후 공백을 걱정하지 않고 부부가 마음 편하게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으며 때때로 입주 시터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출근할 수 있어 좋다고도 합니다.

아이가 조금 크면 확실히 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노력은 줄어듭니다. 이때가 대리 양육자 없이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겠다는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는 때죠. 특히 80~90년대 초반까지 국민학교를 다닌 지금의 부모 세대는 입학식을 제외하면 어른의 간섭 없이 학교를 오가며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던 기억 때문에 아이들의 등하굣길 보안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전 초등학교 안에서 아이를 인질 삼았던 사건을 보면 아이의 안전이나 사회적 분위기는 점점 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참 초등학교에서 1~2학년의 돌봄 교실 확대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그 시기를 지나 3학년이 된 저희 집의 쌍둥이 남매, 초등 5학년과 중학생이 된 직장 선배의 아이를 보면 대리 양육자의 도움은 10년의 짧은 기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등굣길을 챙길 수 있다고 저녁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육아해볼까라는 생각도 잠깐이고 저 역시 워킹맘을 계속하려면 쌍둥이 남매의 일상을 챙기기 위해 앞으로 몇 년이나 친정부모님께 기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워킹맘의 시터 졸업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시터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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