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기 급변하던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다.

 유리 역의 류정한, 라라 역의 전미도 배우가 마주 보고 있다.

유리 역의 류정한, 라라 역의 전미도 배우가 마주 보고 있다. ⓒ 오디컴퍼니


러시아 상황을 상징하는 캐릭터들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간적 배경은 러시아이고, 시대적 배경은 농노들의 인권이 바닥에 있었던 절대 왕권 차르 체제 후반부부터 1차 대전, 러시아 혁명, 러시아 내전, 그리고 그 이후까지다. 러시아의 역사와 아픈 과거를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이야기 할 때 중요하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인물들 자체가 러시아의 당시 상황을 상징하고 각 계층을 대표한다는 점이다.

인간적인 지식인의 모습 '유리 지바고'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 작품 안에서 유리의 가장 큰 역할은 역사의 격변기 속 고통 받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부유하게 자랐지만 고아였고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쟁터로 갔다. 전쟁이 끝나고는 혁명가들의 지시에 따라 모든 재산을 사회와 나눠야 했으며 빨치산의 의사로 강제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참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보인다. 결혼을 했지만 라라에게 끌리는 것도 그렇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갈등과 행동들을 가끔씩 보여준다.

유리는 시인이기 때문에 항상 표적이 됐다. 역사적으로 전쟁과 혁명 속에서 글쟁이들은 고통에 시달린다. 유리 역시 글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글을 써달라는 협박까지 받는다. 순수하게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평생 동안 글을 쓰는 게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쓰고 그의 뮤즈가 되는 여자 라라를 놓지 않으면서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의지는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굳건한 러시아 '라라'

유리의 운명적 사랑 라라는 러시아 자체로 해석되고는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갖은 수모를 겪어온 라라지만 언제나 단단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가장 희망적인 인물이다. 본인을 겁탈하는 코마로프스키를 향해 총을 들이밀거나 남편을 찾아 겁 없이 전쟁터의 간호사로 지원하는 용감한 사람이다. 유리를 언제나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는 모습 때문에 어떤 아픔이 와도 러시아는 굳건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급진적으로 변한 인물 '스트렐니코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급진적으로 변한 인물 '스트렐니코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오디컴퍼니


시민과 혁명의 상징 '파샤'

파샤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극의 앞부분 파샤일 때와 뒷부분 스트렐니코프일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파샤는 혁명을 꿈꿔왔다. 라라와 결혼을 하지만 첫 날밤 그녀가 코마로프스키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들은 파샤는 부르주아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 그러고는 이 사회를 바꿔버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라라를 뒤로 한 채 전쟁터로 뛰어든다. 그 후 무서울 만큼 급진적인 인물이 된다. 러시아 내전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을 지지하는 적군의 핵심 인물이 돼 황제와 부르주아 세력을 지지하는 백군세력과 치열하게 싸운다. 파샤는 혁명 그 자체도 상징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가장 힘들었을 시민들도 동시에 상징한다.

현명한 어머니 '타냐'

타냐는 유리의 부인이자 소꿉친구다. 남편에게 다른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이해하고 본인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유리를 사랑한다. 남편을 뺏긴 여자로 불쌍하게만 여겨질 수 있는 캐릭터지만 자세히 보면 시대를 참 현명하게 보낸 사람이다. 전쟁이 터지고 급변하는 사회, 전쟁터에 잡혀 다니는 남편. 돌봐야하는 자식과 부모님까지. 타냐는 당시의 현명한 어머니를 잘 보여준다.

기회주의자 '코마로프스키'

코마로프스키는 계속 바뀌는 정권 속에서도 엄청난 처세술로 살아남는 고위 법관이다. 혼란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이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 칠 때 살아남는 기회주의자들을 상징한다.

사실 이들 한 명씩 뜯어보면 다 아픈 영혼들이다. 시대를 잘못 태어나 힘든 세월을 온 몸으로 부딪힌 사람들. 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 지 지켜본다면 더 공감하면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이기에 더 큰 아쉬움

현재 <닥터 지바고>는 좋다는 후기와 아쉽다는 후기가 골고루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전반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건 유리의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이다. 유리는 시인이다. 그래서 유리가 쓰는 시는 극을 끌고 나가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극에서 시를 쓰고 시를 들려주는 장면은 굉장히 적다. 그래서 유리의 시를 읽으면서 감동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다. 본인 글에 대한 신념, 시를 통해 전하는 라라에 대한 사랑이 좀 더 표현 됐다면 시인 지바고의 면모가 더 탄탄해졌을 것 같다.

큰 무대도 잘 활용하지 못했다.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 휑한 느낌이 든다. 무대 양쪽에 인물들을 배치해 각 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자주 취하는데 이 때 침대, 책상 등 소품의 크기가 작다. 무대 자체도 휑한데 소품들마저 이를 채워주지 못하니까 광활한 무대에 배우들만 덩그러니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친절한 전개도 아쉬운 요소다. 모든 극은 아무런 정보가 없이 가더라도 70% 이상은 서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아무런 정보 없이 보러간 관객들이 이들의 이야기와 러시아 배경까지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닥터 지바고>는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고 인물 한 명마다 풀어내야하는 설정들이 많은데 이를 일일이 설명하다보니 지루해진 듯싶다.

또한 러시아의 상황 보다는 러브 스토리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인물들이 상징하는 의미보다는 사랑 이야기가 더 먼저 더 많이 기억난다. 이들의 사랑도 중요한 내용이지만 작품 안에는 다른 메시지들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이 소극적으로 다뤄져서 아쉬웠다.

좋았던 점은 이렇게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닥터 지바고>가 가진 작품의 이야기는 좋다는 거다. 곱씹을수록, 알면 알수록 아름다운 작품이다. 러시아의 변화를 그 속에 사는 여러 명의 인물들을 내세워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설명했고 사랑 이야기를 통해 더 애틋하게 표현했다. 어쩌면 워낙 촘촘하게 이야기가 만들어졌기에 이 작품을 소화하는데 오래 걸리는 게 아니까 싶다.

<닥터 지바고>는 명작이고 잔잔한 가운데 큰 울림이 있는 극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변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잔잔하게 스며들고 싶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정보를 알고 공연을 보러가길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5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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