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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에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와 어우러진 새빨간 동백꽃봉오리. 지난 4월 8일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 있는 금사정에서다.
 새봄에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와 어우러진 새빨간 동백꽃봉오리. 지난 4월 8일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 있는 금사정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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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상징하는 정열적인 빨간 동백꽃과 샛노란 유채꽃, 순백으로 하얀 배꽃까지 봄꽃 3종 세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지금 나주다. '나주배'로 유명한 전라남도 나주에는 아주 특별하면서도 애절한 사연을 지닌 동백나무가 있다.

남도에는 동백숲이 지천이다. 강진 백련사, 광양 옥룡사지, 여수 오동도, 고창 선운사가 대표한다. 모두 수백 년 된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들이다. 반면 숲이 아닌, 동백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이 된 나무가 있다.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외구마을에 있는 금사정의 동백나무다.

 나주 금사정의 동백나무. 키가 6미터, 뿌리 부분의 둘레가 2.4미터에 이른다. 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나주 금사정의 동백나무. 키가 6미터, 뿌리 부분의 둘레가 2.4미터에 이른다. 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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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금사정과 동백나무. 기묘사화를 피해 내려온 유생들이 금강십일인계를 조직하고 절의를 약속하며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주 금사정과 동백나무. 기묘사화를 피해 내려온 유생들이 금강십일인계를 조직하고 절의를 약속하며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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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정 동백나무는 세월의 풍상이 비켜간 듯,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펼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무의 키가 6미터, 뿌리 부분의 둘레가 2.4미터로 어른 두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다. 폭은 동서로 7.6미터, 남북으로 6.4미터에 이른다.

나이가 무려 500살이나 됐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붉디붉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꽃에서 왕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젊은 나무가 피운 것보다 더 낫다. 새빨간 꽃잎에 노란 꽃술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룬 모습도 황홀하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처럼 정열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붉은 색의 꽃봉오리가 통째로 뚝-뚝- 떨어져 애틋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처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금사정의 동백나무는 꽃도 꽃이지만,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사연이 꽃보다도 더 애절하다.

 '천연기념물' 금사정 동백나무가 피운 동백꽃. 새빨간 꽃잎에 노란 꽃술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금사정 동백나무가 피운 동백꽃. 새빨간 꽃잎에 노란 꽃술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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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금사정과 동백나무. 세월의 풍상이 비켜간 듯,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펼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주 금사정과 동백나무. 세월의 풍상이 비켜간 듯,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펼친 모양새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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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14년, 1519년이다. 개혁을 주창하던 정암 조광조(1482∼1519)가 훈구세력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묘사화다. 울분을 참지 못한 많은 유생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정암의 억울함을 알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암은 37살 젊은 나이에 전라도 화순 능주로 유배돼 결국 죽임을 당했다. 정암을 추종하던 많은 유생들이 사화를 피해 도성을 떠나 낙향을 택했다. 성균관 유생을 대표해 상소를 올렸던 임붕을 비롯 나일손 정문손 김식 진이손 진삼손 정호 등 11명이다.

이 유생들이 나주로 내려와 금강십일인계를 조직한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시기지만, 절의만은 지키자고 결의한다. 모임 장소로 정한 영산강변에 정자 금사정을 세우고, 거기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금사정과 어우러진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굵은 나뭇가지에서 세월의 무게가 묻어난다. 나무의 뿌리 부분 둘레가 2.4미터로 어른 두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다.
 금사정과 어우러진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굵은 나뭇가지에서 세월의 무게가 묻어난다. 나무의 뿌리 부분 둘레가 2.4미터로 어른 두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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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 가지 사이에 내려앉은 새빨간 동백꽃 봉오리. 나무에는 가지마다 세월의 풍상이 짙게 배어있다.
 동백나무 가지 사이에 내려앉은 새빨간 동백꽃 봉오리. 나무에는 가지마다 세월의 풍상이 짙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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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유생들이 심은 나무가 금사정의 동백나무다. 이 나무는 유생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다.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한 유생들은 동백꽃의 비장함에 자신들을 빗댔다. 한겨울 추위가 혹독할수록 더 붉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동백꽃을 떠올렸다. 사철 푸른 동백나무의 한결같은 생명력도 닮고 싶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0년 동안 풍진 세상을 다 겪은 금사정의 동백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큰 동백나무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생김새나 모양도 반원형으로 아름답다.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제515호)로 지정됐다.

동백나무를 지키고 선 금사정은 나주시향토문화유산(제20호)으로 지정돼 있다. 금사정도 겉보기에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지 않지만, 선인들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핏빛 선연한 동백꽃과 어우러져 그 가치와 격을 느낄 수 있다.

 영산강변에서 만나는 노란 유채꽃. 강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 봄처녀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영산강변에서 만나는 노란 유채꽃. 강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 봄처녀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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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강변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밭. 당초 영산포 홍어축제의 볼거리로 만든 꽃밭이지만, 지금은 부러 꽃밭을 찾는 여행객들이 더 많다.
 영산강변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밭. 당초 영산포 홍어축제의 볼거리로 만든 꽃밭이지만, 지금은 부러 꽃밭을 찾는 여행객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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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유채꽃은 나주 영산포 영산강변에 활짝 피어 있다. 당초 홍어축제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여러 해 전에 만든 유채밭이다. 지금은 축제도 축제지만, 부러 유채밭을 찾는 이들이 더 많다. 강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 봄처녀라도 된 것 같다. 노란 유채꽃밭 사이에 색색의 민들레와 튤립도 피어있다.

화사한 유채꽃을 피운 영산포도 많이 변했다. 폐역이 된 옛 영산포역은 철도공원으로 변신했다. 홍어의 거리도 깔끔해졌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회사의 서고를 품은 영산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영산포 철도공원. 호남선 철도의 이설과 함께 폐역이 된 옛 영산포역이 철도공원으로 변신했다.
 영산포 철도공원. 호남선 철도의 이설과 함께 폐역이 된 옛 영산포역이 철도공원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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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때 설치된 영산포등대. 우리나라 연안에 있는 유일한 등대였지만, 영산포를 오가는 뱃길이 끊기면서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돼 왔다.
 일제강점기 때 설치된 영산포등대. 우리나라 연안에 있는 유일한 등대였지만, 영산포를 오가는 뱃길이 끊기면서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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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산포는 호남에서 가장 큰 포구였다. 영산강의 뱃길을 따라 홍어와 젓갈이 모여들었다. 날마다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들면서 선창도 북적거렸다. 1976년 영산강하구언 건설을 위한 둑막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뱃길이 끊겼다. 휘황찬란했던 포구의 불도 다 꺼졌다.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영산포등대다. 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건립됐다. 홍어와 젓갈을 싣고 영산포를 오가는 뱃길을 밝힌, 우리나라 연안에 있는 유일한 등대였다. 하굿둑 축조로 뱃길이 끊긴 뒤부터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돼 왔다. 이 등대가 영산포 황포돛배 선착장, 영산나루 앞에 있다.

영산포에서 영산강변 유채꽃과 어우러지는 홍어축제도 흥미진진하다. 나른한 봄날, 코끝까지 톡 쏘는 삭힌 홍어 한 점에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주는 맛의 향연이다. 축제는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나주를 환하게 밝혀주는 배꽃. 나주의 봄꽃 3종 세트를 완성시켜주는 꽃이다.
 나주를 환하게 밝혀주는 배꽃. 나주의 봄꽃 3종 세트를 완성시켜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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