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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소설 전문 팟캐스트 <낭만서점>은 지난 10년간 주요 10개 세계문학전집 브랜드의 판매 자료를 분석하여 연령대별 선호도를 이렇게 밝혔다.

10, 20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30대는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50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지천명)는 50대는 어떤 이유로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끌리는 걸까.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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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는 그리스 지식인이다. 터키인들에게 박해받는 그리스인 동포들을 돕기 위해 친구가 카프카스로 떠나면서 남긴 충고(책벌레)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삶의 양식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노동자들과의 생활을 위해 크레타 갈탄광으로 떠나려는 화자에게 조르바가 나타난다. 스무살 처음 들은 산투르 소리에 매료되어 이를 배우기 위해 마을을 떠나는 열정을 지닌, 키가 크고 몸이 마른 60대 노인 조르바. 그는 예리한 눈빛과 격렬한 말투로 화자에게 동행을 요구한다. 화자는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게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p.22).

지금까지 함께 잔 여자들의 치모를 모아 베개 속을 채우기도 했다는 조르바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억에 갇혀 사는 여관 주인 오르탕스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마을의 젊은 아가씨 롤라와 놀아나기도 하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거친 말과 행동과 달리 조르바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과 눈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p.77).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태초의 세상을 보듯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사는 시대와 삶에도 적용된다.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크레타 혁명 당시 독립군에 가담했던 그는 자신들에게 별로 나쁜 짓도 안 한 터키인들의 목을 자르고 물건을 훔치고 사기 친 결과가 '자유'였다 말한다. 국가라는 권력 아래 합리화된 전쟁과 살인을 용인할 수 없던 것이다(물론 그도 피가 뜨거웠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화자는 이러한 조르바를 통해 인식의 혼란을 겪게 된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갖고 형제들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는 일종의 공동 사회를 만드는 로맨틱한 계획(p.78)'을 가진 내가 인부들 사이를 들락거리는 것을 조르바는 질책한다.

조르바에게 감화된 '나'는 마음에 품었던 마을의 젊은 과부와 동침하는 자유로움을 얻지만, 자신을 짝사랑하다 자살한 청년으로 인해 과부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피살될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귀를 물어 뜯기면서까지 그녀의 죽음을 막으려는 조르바를 보며, 여관 주인 오르탕스의 죽음과 사업 실패 후의 조르바를 보며 화자는 자유에 조금씩 다가간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사람들 나름대로 자유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작가가 조르바를 통해 말하는 정의는 '자연의 비인간적인 법칙을 반대하고 지금 존재하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도덕적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행위(p.388)'가 아닌 듯싶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17년(작가 나이 34세)에 실제 만났던 인물 기오르고스 조르바와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그에게 받았던 삶의 영감을 고스란히 담은 것으로 파악된다. 화자는 35살로 등장하지만 작품이 1946년(작가 나이 63세)에 발표된 만큼 작가가 오랜 삶 속에서 공부하고 고민했던 사상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고전을 자주 접해본 이가 아니라면 내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느라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기 다소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고전은 참뜻을 깨닫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말처럼 한 번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 별로 두 번, 세 번 읽으면 주인공이 보여주는 자유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작품이 궁금하긴 하지만 어렵고 길게 느껴지는 이 책을 읽기 주저하는 당신에게 조르바의 말을 전한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잠자고 있네.><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일하고 있네.><잘해 보게.><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여자랑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p.391)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열린책들(2009)


태그:#고전,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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