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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겨우내 헐벗었던 가지들이 새순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다. ⓒ 김민수
1948년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보내는 해,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 어린 기념사로 여느 해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을 보낼 수 있었다.

제주 4.3항쟁이 서서히 그 진실을 향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을 때, 머지않아 역사의 진실은 밝혀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자신들의 정권유지 차원에서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좌익 혹은 빨갱이 좌파, 이런 단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진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역사의 진실보다 더 중했던 것이다.

제주도민의 10%가 살해 당했던 아픈 역사, 내가 살던 종달리에도 그때의 아픔이 깊게 새겨진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숨죽여 지내야 했던 세월은 길었고 서서히 '폭동'이 아닌 '항쟁'이라는 이름이 붙어도 여전히 그 아픔을 맘껏 이야기하지 못했다.
동백의 낙화 그해 이 맘때에도 동백은 그렇게 낙화했을 것이다. ⓒ 김민수
권력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폭력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여전히 '국가권력'의 힘(제주 4.3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제노사이드였다)은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도민증(그래봐야 주민등록증 뒷면에 이사한 주소를 네임 펜으로 쓴 것에 불과하지만)을 받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동네 어르신들을 태우고 제주시에 나갔다 오는 길에 얼토당토 않게 교통단속을 한 경찰과 한 판 말싸움을 벌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때 차 안에 있던 어르신들은 적잖이 당황하셨단다.

'감히 어떻게... 경찰에게...'

그 일로 나는 성격 까탈스러운과 용감한(?) 도민이 되었다. 권력의 힘을 등에 업은 이들로 통칭되는 이들은 제주도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팽나무 오랜 세월 견디다 보면 태풍에 입은 상처도 있기 마련이다. ⓒ 김민수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하나둘 이뤄지기 시작했다. 제주 4.3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제주 4.3 평화공원도 조성되었다. 그렇게 역사는 진실규명을 향해 진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역사적인 진보가 아닌 후퇴의 길로 돌아섰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당 홍준표 대표 역시 그 인식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음은 이번 4.3항쟁 70주년에 내뱉은 말로 알 수 있다.

나는 '좌익새력' 운운하는 홍준표의 발언을 듣고 섬뜩했다. 저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4.3항쟁의 진실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팽나무 바람에 흔들리며 더 강인해 지는 팽나무의 새순들 ⓒ 김민수
제주도를 떠난 지 꽤 오래되었다. 십이년, 그 사이에 제주도가 그리워 꽤 많이 찾았지만 대부분 제주도의 날씨는 나를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더니만, 서울은 비바람에 꽃샘추위로 몸살을 앓았다는데 내가 제주도를 방문했던(4월 8-10일) 시간, 제주도는 최상의 날씨를 보여줬다.

이번 여행길에 나는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그때도 이랬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봄처럼 피어나길 희망했다.

그 희망의 상징으로 팽나무의 새순을 보았고, 떨어져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동백을 보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죽어간 제주도민들을 보았다.
제주도 그 작은 섬은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먼 이들로 인해 붉은 섬이 되어버렸다. ⓒ 김민수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녂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귀하다...

1980년 초, 대학 시절에 제주 4.3항쟁과 관련된 노래를 배웠다. 그 노랫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제주 4.3항쟁이 아픔이 전이되었다는 뜻이겠다. 누군가 이 노랫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채꽃은 1960년대 이후에 제주도에 들어왔으므로 이 노랫말은 문제가 있다고.

이성과 합리, 과연 그것만으로 우리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제주 4.3희생자들 제주평화공원에 전시된 4.3희생자들의 사진들 ⓒ 김민수
내가 이번 제주여행에 동행한 분들은 굳이 보수와 진보로 나눈다면 보수쪽에 속한다. 그러나 4.3 평화공원 전시관을 둘러보고, 개괄적인 역사적인 진실만으로도 그들은 제주 4.3항쟁이 우리네 아픈 역사였음을 인식했다. 거기엔 진영논리 같은 것은 없었다.

"당연히 좌익도 있었겠죠. 1945년에 해방되었는데 독립운동을 할 때에도 좌우가 있었는데 해방되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었겠죠. 그런데, 좌익이라고 이렇게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죠. 더군다나 어린 아이들과 민간인들, 제주도 전체를 붉은 섬으로 덧칠하고 다 죽여도 좋다고 한, 그런 작자를 국부라고 추앙하는 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제주 도민들은 그냥 살려고 발버둥 쳤을 뿐이에요. 여기에 무슨 진영논리가 끼어들 틈이 있어요? 진보든 보수든 아직도 그걸 이용하려는 것들이 나쁜 놈들이지."
제주 제주의 중산간, 어는 등선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청춘 ⓒ 김민수
 
그래,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죽지않고 살려고 중산간으로 올라갔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중산간으로 피신한 이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 아예, 중산간 마을 중에서는 사라져 버린 마을도 있다. 잃어버린 마을 중 하나인 다랑쉬마을이 보이는 곳, 그곳에서 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청춘을 담았다.

바람, 제주의 바람. 그것이 어찌 칼바람이기만 할 것이며, 시원한 바람이기만 할 것인가?
화산석과 파도 제주의 바다는 돌과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어울림이 아주 강렬하다. ⓒ 김민수
제주도 곳곳, 4.3항쟁의 흔적이 없는 곳은 없었다. 오름도 마을도 바다도 모두 아픈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햇살과 바람과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운 날은 오히려 서럽도록 아픈 것이다.

여행에서 보낸 이삼일은 꼭 이런 날이었다. 하늘도 바람도 햇살도 모든 것이 완벽한 봄날이었으며, 봄의 기운에 피어나는 꽃들과 깨어나는 나무의 새순은 이 모든 서러움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머위이파리 사이로 난 길 ⓒ 김민수
내가 만난 모든 것들, 그것들은 그때에도 이렇게 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서러운 봄이었을까? 고사리가 쑥쑥 올라와도 꺽을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을 그 때, 그들은 고사리비에 쑥쑥 올라오는 굵은 고사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년엔 저걸 꺾어 삶아 말려 고사리나물 해먹을 수 있을만큼 평온해질 수 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꾸었겠지. 그리고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로 난 길로 간 이들과 그 섬에 남겨진 이들은 4월만 되면 상처가 도져서 아프고 또 아파 삼켰겠지.
팽나무 아직은 앙상하지만, 이제 곧 이파리들로 풍성해 질 것이다. ⓒ 김민수
아들이 올라가서 잘 놀곤 하던 팽나무, 십여년 사이에 고목처럼 변했다. 나무란 그런가 보다. 그저 그렇게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몇 백년이나 된 듯 고목처럼 변하는가 보다. 어느 순간에 고목처럼 자란 팽나무처럼 우리네 아픈 역사도 조금씩 조금씩 진실이 밝혀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역사로 자리매김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진실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 득실거린다. 자신들의 잘못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아!
한 번 온 봄이 꽃샘추위 기승을 부린다고 멈추더냐?
역사의 진실은 묻혀있을 수 없으니, 더딘듯해도 진실이 승리할 것이다. 이 믿음을 어찌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8-10일에 만난 제주도의 풍광들입니다.

태그:#제주도, #팽나무, #제주 4.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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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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