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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을 운영한 4년 동안 정부 기록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탓이다. 기록이 부족하니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는지도 알 수가 없고, 비선실세 논란과 더불어 모든 정치 과정이 비밀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속칭 '캐비닛 문건', 청와대 유실기록물들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문건들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이재정 의원은 이 문건들을 직접 찾아가 뒤지기로 결심했다. 이재정 의원은 직접 눈으로 이를 열람하기로 마음먹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이관된 소위 캐비닛 문건이라 분류되는 대통령 기록물들의 경우 기록물을 생산하던 당시부터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않았던 탓에, 목록에 적힌 표제만으로는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일일이 모두 들추어 실제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중략)
글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최고의 집중도로 속독하다 보니, 흡사 몹시 덜컹거리는 차에 앉아 장시간 독서를 했을 때와 같은 멀미 증상, 구토와 현기증 같은 것이 수시로 찾아온다." -19P


그 결과, 청와대가 자신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을 사회 불온 세력으로 몰거나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대응방향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재정 의원은 이 과정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기록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캐비닛의비밀
 캐비닛의비밀
ⓒ 이재정,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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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 기록에 남으면 그 일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후세에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때문에 옛부터 많은 통치자들이 기록을 없애려고 했고, 타인의 평가를 피해 기록을 조작하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독재정권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고 그 정책 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알아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비교적 최근까지 계속되어, 기록에 대해 체계적인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이재정 의원은 이 책에서 기록 전문가들과 대담을 가지며 앞으로 기록 문화가 나아갈 바를 모색한다. 책 자체는 이재정 의원의 책이지만, 설문원 기록학회 회장, 조영삼 서울기록원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과의 대담이 주된 내용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기록 전문가들의 의견 서술에 많은 양을 할애한 것이 인상적이다.

정부의 '의중' 상관없이 기록 잘 관리할 수 있어야

책에 실린 기록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국가기록원이 틀을 갖춘 것은 참여정부 시기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 문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기록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업무의 결정권자가 되지 못했고, 행정부 공무원들이 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MB 정부의 몇몇 공무원들은 기록을 정비했던 참여정부의 인사들을 기록 유출을 했다는 명목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기록 정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기록을 감추는데 급급했다. 지금 남겨진 박근혜 정부의 기록 상당수가 식당에 관한 것이고 중요 기록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2016년부터 2017년부터 26대의 문서 세단기를 사들이기까지 했다. 사실상 현재의 정부 기록 제도는 상당 부분 제 기능을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 등장한 기록 전문가들은 기록 전문가들이 정부의 의중에 상관없이 기록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기록원을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키고, 국가기록원장 자리를 민간 전문가에게 개방하고, 전자 디지털 환경에 맞는 기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권력의 민주화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다.
"이건 기록의 정치적 속성과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록을 통제하지 않는 권력은 없다는 자크 데리다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 독재권력은 심지어 국민들의 기억까지 통제하고 싶어 하니까요. 결국 기록의 생산과 관리, 공개과정 모두 권력의 성격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정부기관의 책임성은 일차적으로 기록의 생산과 관리를 통해, 투명성은 기록의 공개를 통해 달성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 어려워져요." -92P


또한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고, 원칙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최대한 국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기록 운영이 중요하다. 다행히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국가기록관리혁신 TF는 과거 정치적 의중에 따라 휘둘렸던 기록 관리에 대해 비판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정치인의 책은 보통 정치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책 자체를 열심히 쓰기 보다는 책으로 사람을 알리는 것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람과의 대담을 담으면 책의 전개가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기 쉽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기록이라는 주제를 안정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이재정 본인에 대한 소개는 적당히 줄였다. 이 점이 책의 내용을 알차게 만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낯선 분야에 대한 책이지만 군더더기도 적다. 담백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우리나라는 기록 문화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여정부나 서울시에서 기록에 대해 정비한 것은 결정권자의 의지가 컸다. 지도자나 결정권자가 기록에 관심이 많은 것도 좋지만,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고 역사의 발자취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는 기록 부족으로 인한 논란이 적어지는 나라를 꿈꿔본다.



캐비닛의 비밀 - 국회의원 이재정의 적폐청산 프로젝트

이재정.전진한 지음, 한티재(2018)


태그:#이재정, #기록, #역사, #정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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