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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파서 누워있을 자유도 없어!" 엄마들끼리 모이면 흔히들 주고받는 말입니다. 더 이상 이 말이 사실이 아닌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들도 돌봄받는 세상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독박돌봄노동 탈출기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장미(배종옥)가 이혼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글을 썼었다(관련 기사 : "난 너 없이 다 할 수 있더라" <라이브>의 배성우가 이혼당한 이유). 여성의 '독박 돌봄노동'이 이혼선언의 주원인임을 분석한 이 글을 쓴 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 중 한 독자가 내게 남긴 응원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지 않으렵니다.'

이 한 문장이 여성학자도, 여성운동가도 아닌, 그저 공부하고 일하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결혼 후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정체감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 평범한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는 용기를 내게 했다. 나 역시 지난 12년의 결혼생활 내내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글에서 나는 이혼의 원인을 '여성의 돌봄을 당연한 듯 생각하면서, 자신은 전혀 상대방을 돌보지 않는 오양촌(배성우)의 태도'에 돌렸지만, 남성들이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것에는 여성들 역시 일조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스스로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돌봄노동을 자처한 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몸에 밴 가부장적 시선은 내가 원치 않아도 불쑥불쑥 올라와 나의 일상에 많은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지금부터 몇 회에 걸쳐 쓰게 될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독박 돌봄노동' 탈출기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가부장적 시선의 불편함과 부당함,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 보고자 하는 몸부림은 비단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경험을 나누는 것이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진 존재 모두가 보다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며, 보다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성학자도, 여성운동가도 아니다. 따라서 이글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학제적인 의미를 검토하지 않았다. 여기서 '돌봄노동'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다른 가족구성원의 일상이 영위되도록 하기 위해 가정 안에서 제공되는 모든 물리적, 신체적, 정서적 서비스. 그러니까 주부들이 늘 하는 그런 일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부장제'란 오랜 시간 세상을 지배해온,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규정된 사회질서, 문화, 지배적인 정서 등을 의미한다. 그럼, 지금부터 '나의 독박 돌봄노동 탈출기'를 시작한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남편 밥 차린 신혼 시절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이 시작된 첫 날부터 중요한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이 시작된 첫 날부터 중요한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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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부당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 적어도 신혼의 열정적인 사랑과 설렘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그 시절. 나는 내가 제공하는 돌봄노동이 전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2006년 5월. 2년간의 '닭살 연애(내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끝에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는 서울의 한 빌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당시 나는 제도권 언론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일보다 남편의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이 시작된 첫 날부터 중요한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혹여나 피곤한 남편이 깰까봐 살짝 일어나 서툰 요리 솜씨로 무려 1시간이나 걸려서 국을 끓이고 밥을 지었다. 매일 다른 메뉴로 아침 식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애를 썼다.

결혼 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출근해왔던 난 새벽밥 짓기가 너무나 피곤했다. 하지만 나보다 힘든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이 정도는 당연히 내가 제공해야하는 '돌봄'이라고 생각했었다. 결혼 전 자취생활을 하면서 아침밥을 먹지 않는 데 익숙해져있었던 남편은 아침밥을 먹으면 오히려 배탈이 난다고 호소했다. 나는 '아침밥은 몸에 좋으며, 아침밥이 안 맞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밥을 지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나는 취재원과의 약속도 미루고 집으로 달려갔다. 쓰다만 기사들을 뒤로 하고, 재빨리 퇴근해 요리 책을 펴두고 이것저것 만들어 놓은 뒤 빌라 창밖을 내다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따끈하게 먹어야 하는 국 종류만 빼고 다른 음식들은 모두 테이블에 예쁘게 차려 두었다.

남편이 딱 맞춰서 도착해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칭찬해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갑작스런 일이나 회식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오거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면, 너무나 서럽고 화가 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나의 정성과 돌봄이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에 무척이나 서운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다움'을 온 몸으로 실천하려 했었던 것 같다. 여성주의 심리학자 미리암 그린스펜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감은 가정과 연결되고 남편 역시 여성의 돌봄이 대상이 되었다"고 썼다. 신혼 시절 나는 이런 정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남편에게 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일이 기자로서의 나의 일보다 중요했고, 남편이 내가 차려준 밥을 먹지 않는 것은 내 정체감에 손상을 입는 너무나 서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이런 '여성다움'에 대한 시각이 옳은 것인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혹은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모르게 배워온 대로, 남성의 시각으로 규정된 여성의 정체감을 그대로 흡수하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너무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던 친정엄마 모습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을 이제와 깨닫는다.

암투병 중에도 아빠 아침밥 차렸던 나의 엄마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나문희(문정아 역)는 평생을 독박 돌봄노동에 시달리다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역할로 나온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나문희(문정아 역)는 평생을 독박돌봄노동에 시달리다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역할로 나온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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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정엄마는(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신다) 초등학교 교사였고, 공식적인 출산휴가 기간 외에는 단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으셨다.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휴직하시기 전까지 늘 맞벌이를 하셨고, 지금은 성인이 된 옛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사로서 헌신적이고 사명감이 높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서도 매우 헌신적이었다. 매일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 식구들 아침밥을 챙기셨고, 퇴근 후엔 저녁 식사를 차리고 주무시기 전까지 낮 동안 비워두었던 집을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계속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의 딸들에게 늘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집안일 하지 마. 여자는 일 할 줄 알면 계속 일만 하게 돼. 나중에 결혼해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는 우리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면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설령 일찍 오신다고 해도 집안일을 거드시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주말이면 등산을 다니시거나, 테니스 동호회에 나가셔서 취미활동을 하셨다. 주말에도 우리 엄마는 우리 자매를 돌보는 독박육아를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난 몰랐다. 그냥 그게 당연히 엄마의 삶, 여자의 삶인 줄 알았다.

그러던 친정엄마는 내가 신혼의 단 꿈에 빠져 엄마를 닮은 헌신적인 아내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결혼 첫 해에 덜컥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우리 가족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매우 컸다. 하지만 당사자인 엄마는 달랐다. 가장 먼저 충격에서 벗어나 마음을 다지셨고, 2주에 한 번씩 씩씩하게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셨다. 입원은 하지 않고 외래에서 항암제를 맞고 집에 와서 회복기를 가진 후 다시 항암주사를 맞곤 하셨는데, 항암제 부작용으로 메스꺼운 속이 조금만 가시면 다시 집안일을 하셨다.

본인은 메스꺼워서 잘 드시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아침마다 아버지의 아침밥을 지었다. 빨래도 하셨고,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청소도 하셨다. 우리 부부는 아픈 엄마를 보기 위해 자주 친정에 방문했는데, 엄마는 그 때마다 우리를 위해 먹을 것을 내어주셨다. 엄마는 암환자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엄마라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끝까지 지켜내셨고,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그 날까지 '돌봄노동'을 쉬지 않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함께 살았던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일방적으로 가족을 돌보면서, 돌봄을 받아야 할 때조차 받지 못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오셨던 거다. 아마도 우리 엄마 역시 엄마의 엄마로부터, 또 그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인 여성다움이 몸에 배어서 그랬을 것이리라.

당시 난 엄마에게 다녀오고 나면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난 내 감정이 알려주는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오래된 문화에, 몸에 배어 버린 것들에 저항하는 것은 피곤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다. 나는 불편한 감정들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엄마를 닮은 헌신적인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억눌렀던 감정들은 단지 숨어 있는 것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후 난 남편의 밥을 잘 챙기고, 아침마다 와이셔츠와 넥타이와 양말을 골라주고, 옷을 다려 입히는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면서도 마음 한 쪽에는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희생하는 엄마의 그 삶이 내 것이 될까봐 두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픈 아내를 돌볼 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내가 챙겨주는 음식과 옷들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신혼 초기, 내가 제공한 음식과 옷들에 대해 늘 맛있다, 고맙다 해주었던 남편의 찬사도 점점 줄어들었고, 남편이 아침을 차려주었던 로맨틱한 주말도 점점 사라져갔다.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나는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얼마 후 임신을 했다.

덧) 지난해 여성 암환자 중심의 요양병원이 문을 열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병원의 원장은 당시 이런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많은 여성들이 산후조리원 시기를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아이 낳고 돌봄을 받고 회복에 집중했듯이, 여성 암환자들은 집중적으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 그런데, 암에 걸린 남성은 집에서 여성의 돌봄을 받지만, 여성 암환자들은 집에 가서 또 집안일을 한다. 여성 암환자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여성 암환자들이 집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 돌볼 줄 아는 남편, 아버지, 아들, 애인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집에서 돌봄받는 여성은 아직까지도 일반적이지 않다. 여전히 대다수의 여성 암환자들은 자신의 아픈 몸보다 식구들을 걱정하고, 가족들의 일상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10여 년 전 나의 엄마가 그랬듯 말이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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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