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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사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쌍용차 경영진이 지난 2015년 전원 복직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120명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지난 4월 2일까지 32일 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전원복직을 위한 단식'을 진행했고, 쌍용차 조합원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옥중에서 7일간 단식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복직 문화제'도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선동씨의 딸 김희진씨가 아빠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김희진씨 편지를 본인 동의를 받아 <오마이뉴스>에 싣습니다.[편집자말]
 
2013년 5월 1일, 노동절 대회에서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길 건너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로 가려는 시민을 막아서고 있다.
▲ 시청광장을 막고 있는 경찰 2013년 5월 1일, 노동절 대회에서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길 건너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로 가려는 시민을 막아서고 있다.
ⓒ 장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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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안녕? 나 희진이야. 이렇게 아빠한테 편지를 쓰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요즘 아빠는 어때? 괜찮아?"

사실 요즘 내가 아빠한테 묻고 싶은 질문 중 하나였어. 순탄치 않았던 면접이 좋지 못한 결과로 나오게 되고 다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아빠한테 드는 걱정은 딱 한가지더라. 괜찮을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해 보이던 아빠였지만 정말 괜찮은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사실 묻고 싶었어. 그리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어. 아빠는 지금 어떤지. 아빠라는, 남편이라는 책임감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아빠의 면접 결과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되레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척 아빠한테 장난을 쳤던 것 같아. 아빠라는, 남편이라는 무게는 내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힘겨운 무게일 테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올라왔을 때 새벽 늦게까지 그렇게 아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그때 너무 묻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딸이 반가웠던 건지 쉴새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빠를 보며 차마 묻지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이 자리에서 묻게 되네.

아빠가 해고된 지 10년이 다 돼가고 그 사이 우리 집은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아. 매년 여름마다 같이 계곡으로 텐트치고 놀러가던 우리 집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여행이라는 걸 가본 적이 없고 우리 집에 한숨 쉬는 일은 많아지고 서로 각자 다들 여유가 없어 아쉬운 소리는 늘어나고, 대화는 단절되고... 그러면서 점차 아빠와 나의 갈등은 심해졌지.

불같은 둘의 성격이 부딪히는 날엔 애꿎은 엄마만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서로가 여유가 없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었고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하기에 소통의 답답함을 느꼈고, 그러면서 점차 아빠와 나의 사이는 멀어졌지.

그치만 그런 내가 조금씩 변할 수 있었던 건 문득 내가 알던 어렸을 적 한없이 크기만 했던, 강하기만 했던 아빠의 뒷모습이 한없이 외로워 보이고 쓸쓸해보인 순간부터였던 것 같아.

어렸을 적 가족보다는 친구를,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빠가 미웠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아빠가 원망스러웠는데...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아빠의 말이 이기적이고 욕심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 이제야 왜? 우리가 이제 성인이 되고나서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랬던 내가 조금씩 사회에 나가고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점차 하나둘씩 아빠라는 사람이 이해가 되더라.

아빠도 나처럼 친구가 좋은 시절이 있었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이번 생이 처음이라 서툴 수밖에 없었고... 아빠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한 사람이라고 보게 되니 그때부터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어 책임감 하나로 버텨주고 지금까지도 나의 아빠로 있어줘서 고마워.

지금 많이 힘들지? 답답하고 속상하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이 지치고 너무 힘들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그런지 요새 부쩍 술이 더 늘었더라. 배가 더 나왔어. 그러다가 나랑 제대로 한번 놀아보지도 못하고 나중에 그냥 시간만 보내게 되면 어떡해. 나랑 친구하고 싶다며... 배 더 나오면 아빠랑 안 놀아줄거야.

지금은 힘들지만 우리 10년 동안 못해본 것들, 그 흔한 여행 한 번도 제대로 못가보고 서로 마음 편하게 한번 웃어본 적도 없는데 지금 못 해본거 나중에라도 해봐야지. 안 그래? 술은 좀 줄이고 아저씨들이랑 다른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

비록 우리 가족이 해고로 인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게 전환점이 되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존중해주게 되고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지금 아빠의 뜻을 존중해. 물론 엄마랑 걱정도 많이 했지만 아빠가 옳은 선택,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항상 이 자리에서, 아빠의 옆자리에서 우린 다 같이 응원해줄거야. 그러니깐 힘들더라도 조금만 힘내자 아빠.

우리 가족 지금은 힘들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자.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해 뜰 날이 오겠지? 지금까지도 나의 아빠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영원한 절친이 되어보자. 사랑해. 

태그:#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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