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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은 올림픽 금메달 선수를 배출하기로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태권도 선수였다. 운동을 관두고 살이 찌더니 100㎏에 달하는 거구가 됐다.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도는 540˚ 돌려차기를 세계에서 3명만(태권도의 경우 국내가 세계라는 말과 동일어다) 가능할 때 그는 그 중 1인이었다. 화려했던 시절은 '아, 옛날이여'가 되었고, 지금 동생은 배가 만삭 임산부만 하다. 첫째를 낳을 때 올케와 함께 출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작년 말 둘째를 낳을 때도 출산에 실패했다.

사태가 이쯤되니 주변에서 남동생을 보는 이마다 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건강을 위해서, 외모를 위해서 직업상(국제경찰) 다이어트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수많은 조언을 들어도 남동생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빼지'라는 생각에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동생네는 큰 아이를 키울 때 평일에 장인, 장모님 댁에서 올케와 아이가 지내고, 주말에만 세 가족이 모이는 시스템으로 살았다. 그러다 큰 평수로 이사를 해 합가했다. 문제는 올케네 집안 식문화 기준이 일반인들과 현저한 차이가 있는 데서 시작됐다.

"우리 와이프 식구들은 소식해. 애기들 밥만큼 밖에 안 먹어. 밥을 더 달라고 하면 많이 먹어서 살찐다고 할까 봐 눈치 보이고, 그래서 배고프니까 자꾸 우유를 마시거나 다른 걸 먹게 돼."

동생이 투덜거릴 때만 해도 먹성 좋은 동생 기준에 그렇게 보이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사돈 어르신들이 안 계신 동생네를 갔을 때 소식에 대한 팩트를 보게 됐다. 그날 올케가 저녁상을 차리면서 어른 4인, 유아 2인 밥을 놓았는데, 어느 게 어른 거고 어느 게 아이 건지 구분이 안됐다. 6살 우리 아들이 먹는 밥과 100㎏ 남동생이 먹는 밥 양이 같았다. 작은 공기에 아담하게 담긴 밥그릇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개그맨 유민상씨가 했던 '마른 인간 연구소'라는 개그가 떠올랐다.

비만인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2030년에는 이전 시대 마른 인간들에 대해 이런 의문을 품는다.
'예전엔 말입니다. 사람들이 조각 케이크를 먹었다고 합니다. 아니 하나를 다 먹어도 아쉬운데 케이크를 조각 내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올케네 소식 기준을 개그로 짜면 '비만 인간 연구소'라는 개그가 나올 것 같았다. 치킨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남동생과 성인 4인 가족이 함께 한 마리를 먹는 올케네 소식은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서로 다른 기준과 차이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없는 그의 몸매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다.

<넌 (안) 작아>
 <넌 (안) 작아>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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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넌 (안) 작아>는 이처럼 서로 다른 기준이 자아내는 유머를 다룬 책이다. 하나의 주제로 '기승전'까지 몰아가다 마지막 결론에서 통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이 그림책은 단순한 스토리에 깊이 있는 주제를 담았다.

파랑이가 잔디밭 위에서 민들레 홀씨를 불고 있다. 파랑이 앞에 주황이가 나타나더니 대뜸 "너 진짜 작다"고 한다. 파랑이는 "나 안 작아. 네가 큰 거지"라고 받아친다. 주황이는 "나 안 커. 볼래?" 하고선 친구들은 데리고 온다. 이후 둘은 네가 작은 거네 네가 큰 거네 우기며 친구들 무리까지 합세해서 다툰다.

책 가운데 제본선을 경계로 양쪽 무리로 나뉘어 "작다고", "크다고"를 외치며 주거니 받거니 리듬감 있게 싸운다. 이때 화면 전체를 채우는 커다란 거인발이 '쿵' 소리와 함께 등장한다. 어찌나 커다란지 책에는 무릎 아래 발만 보이고 파랑색 작은이 중에는 날아가는 애들도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놈이 등장한 다음 장에서는 분홍색 꼬맹이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건지 커다란 놈 어깨나 머리 위에 있다 내려온 건지 알 수 없다. 

"봤지? 나 안 작아."
"봤지? 나 안 커."


<넌 (안) 작아>
 <넌 (안) 작아>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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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과 분홍 꼬맹이가 등장하자마자 싸우던 두 무리는 상대방이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며, 또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는 크기의 상대성을 수용한다. 조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운 걸 지켜본 독자는 아직 씩씩 거리는 감정이 남아 있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배고프다며 정답게 밥을 먹으러 간다. 두 무리가 화면에서 사라진 뒤 분홍 꼬맹이가 거인을 올려다 본다.

"너, 털 진짜 많다."

파랑이가 작은 건지 주황이가 큰 건지 대립된 주장이 자아내는 갈등을 주제로 다룬 <넌 (안) 작아>는 그림도, 이야기도 단순하다. 배경 없이 캐릭터만 나와서 독자는 파랑이와 주황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다. 글도 군더더기 없이 대화만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독자가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그림과 글을 단순화했다.

독자는 책을 보면서 파랑이, 주황이와 함께 '작다니까, 크다니까'를 외치며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거란 기대에 점점 흥분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커다란 거인과 분홍 꼬맹이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아, 크기는 상대적이란 걸 말하려 했던 거구나'라는 결말을 예상하며 제목이 왜 '넌 (안) 작아'였는지 이해한다.

긴장의 끈을 놓고 책장을 넘기니 파랑이와 주황이는 예상대로 "넌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구나"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다만, 마지막에 분홍 꼬맹이가 거인을 보고 하는 말이 "너 정말 크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너 털 진짜 많다."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작가는 파랑이와 주황이를 그토록 싸우게 했나보다. '작다, 크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흑백 논리에 빠지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크기의 상대성도 결국 크기 문제다. "털 많다"라는 한 마디는 크기가 아닌 아예 다른 관점을 제공하며 흑백논리를 깨뜨린다. '상대성, 흑백논리, 다양한 관점'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다. 진부하지만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는 가치관을 '넌 (안) 작아'는 유머있게 표현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실천하는 건 그림책처럼 쉽고 재미있게 되지 않는다.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 상황에서도 만삭 배를 유지하는 동생에 대한 질타를 담아 밥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상황이 재미있어서 한바탕 농담이 오갔다.

"차라리 밥을 많이 주고 간식을 먹지 말라고 그래. 평소에 늘 적게 담다보니 많이 담는다고 해도 적게 담기는 거 같아. 그냥 사람이 이렇게 먹어도 되나 싶을 만큼 담으면 돼."

올케네 식구가 소식을 해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다 같이 웃자고 이야기를 건냈다. 어떠한 원망도 비난도 감정도 넣지 않았다.

"제가 잘 못 먹이고 밥을 너무 조금 줘서 이 사람이 힘든가 봐요."

올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차, 싶었다. 우리에겐 농담인 일이 올케에겐 아닐 수 있었다. 누가 많이 먹는 거고 적게 먹는 거냐 양에 대한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남동생의 다이어트다. 그가 빼면 모든 논란은 사라진다. 올해는 제발 배를 만삭인 배를 출산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넌 (안) 작아

크리스토퍼 와이엔트 그림, 강소연 글, 김경연, 풀빛(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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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넌 안 작아, #상대성, #입장차이,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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