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K리그 슈퍼매치 이야기다. 양 팀 선수들은 느릿느릿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팬들은 초라해진 슈퍼매치의 위상을 지켜봤다.

지난 8일 오후 2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 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FC 서울의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당초 K리그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였다. 지난 시즌까지 서울의 전설이었던 데얀이 '푸른 유니폼'을 입고 친정팀을 만나는 첫 경기였기에 관심이 컸다.

리그 개막 전부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올 시즌 첫 번째 슈퍼매치는 예상 외로 초라했다. 슈퍼매치는 K리그가 자부하는 최고의 상품이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지루함과 답답함만이 가득했다. 시즌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으나 최근 K리그 경기 중 가장 '재미없는' 경기가 됐다. 헛심공방이 경기 내내 이어졌고 슈퍼매치는 3년 만에 0-0의 스코어로 마무리됐다.

스타 플레이어가 사라진 수원과 서울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4.3

▲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4.3 ⓒ 연합뉴스


빅매치는 선발 라인업부터 팬들의 마음을 두근두근 하게 만든다. 보통 강팀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즐비하고 그 강팀들 간의 승부를 빅매치라 부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의 슈퍼매치의 양 팀 스타팅 멤버가 발표되자 팬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두 팀의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 중에 이름만으로 팬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스타 선수는 소수였다. 홈 팀 수원에는 염기훈과 데얀, 서울에는 곽태휘와 박주영 정도만이 이름값이 있는 선수였다. 그나마 박주영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염기훈과 데얀, 곽태휘가 선발로 나선 22명의 선수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사실은 슈퍼매치의 무게감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방증한다. 과거 이운재, 이정수, 에두, 이청용, 기성용, 몰리나 등 리그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즐비했던 슈퍼매치가 아니었다. 심지어 염기훈과 데얀, 곽태휘는 선수 경력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 선수들이다.

냉정히 이번에 펼쳐진 슈퍼매치는 K리그 최고의 매치라고 내놓기에 다소 초라했다. 물론 이날 경기장을 누빈 선수들은 K리그 팬들이라면 익히 알 만한 선수들이다. 허나 K리그에 관심이 부족한 일반 팬들을 경기장에 찾아오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슈퍼매치 역사상 최소인 1만3122명의 관중만이 경기장을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느릿느릿한 공격 전개, 팬들은 한숨만

사실 스타 선수가 부족해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멋진 경기력을 선보이면 팬들은 금세 경기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원과 서울은 느릿느릿한 공격 속도를 시종일관 유지했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과 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먼저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서정원 감독의 출사표가 무색하게 홈 팀 수원은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기본적으로 쓰리백으로 나선 곽광선-조성진-이종성이 수비에 전념했고 윙백 이기제와 장호익도 대부분의 에너지를 공격보다는 수비에 쏟았다. 후방에 위치한 다섯 명의 수비수들은 계속해서 공을 돌리며 서울의 빈틈을 찾았지만, 수원과 마찬가지로 안전지향적으로 나온 서울의 틈은 크지 않았다.

결국 수원 수비진은 전방에 위치한 공격진에게 롱패스를 전달하려 했으나 효과는 미비했다. 데얀은 제공권이 좋은 황현수-곽태휘 조합에 완전히 묶였다. 측면 공격수 염기훈과 유주안은 수비 뒷공간으로 전달되는 롱패스를 받기에 스피드가 부족했다. 속도감 있는 패스와 과감한 전진 패스가 필요했지만, 빅버드(수원 월드컵경기장 애칭)에서 두려움에 빠진 수원의 패스는 느리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수원의 무의미한 롱패스 덕에 서울이 전반전 주도권을 잡았다. 수원의 목적없는 롱패스를 빼앗아 공을 가지고 서서히 공격 작업을 수행했다. 황선홍 감독이 선택한 신진호-김성준-정현철로 이뤄진 서울의 중원은 패스와 탈압박으로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서울은 경기 흐름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수원과 마찬가지로 속도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서울 선발 라인업에는 스피드를 장점으로 장착한 선수가 전무했다. 공은 소유하고 있었지만 후방으로 내려선 수원의 수비라인의 균열을 가하기에는 속도가 한없이 모자랐다. 에반드로와 안델손이 열심히 측면을 공략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간혹 중앙 지역에서 직접 돌파로 만든 찬스는 슈팅이 아쉬웠다.

느릿느릿한 슈퍼매치는 후반 6분 유주안 대신 바그닝요가 투입되면서 그나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와 직선적인 드리블이 강점인 바그닝요는 오른쪽 측면에서 차이를 만들어냈다. 수원의 속도감 있는 플레이가 후반전을 달구던 순간 최성근이 거친 파울로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과감한 전진 패스보다는 안정적인 횡패스·백패스가 경기장에 횡행했다. 빠른 스피드의 역습보다는 지루한 지공이 계속됐다. 라이벌 팀을 상대로 승리를 원했던 양 팀의 팬들은 선수들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특히 홈구장에서 역습 상황임에도 뒤로 공을 돌리는 수원 선수들의 플레이에 관중석에서는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초라해진 슈퍼매치의 위상

다잡은 승리 놓친 FC서울 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리그1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1-1로 경기를 마친 서울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8.4.1

▲ 다잡은 승리 놓친 FC서울 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리그1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1-1로 경기를 마친 서울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8.4.1 ⓒ 연합뉴스


이번 슈퍼매치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역대 최소인 1만3122명이었다. 충격적인 수치다. 종전 슈퍼매치 최소 관중 기록이었던 1만9385명보다 무려 6천 명이나 감소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와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을 핑계로 삼기에는 기록적인 급감이다. 한국 테니스 간판 정현의 시축과 하프타임 행사가 진행된 사실이 무색한 수치다.

슈퍼매치 관중수 하락은 계속된 흐름이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1 시즌 개막전에서 5만 명이 경기장을 찾은 것을 정점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K리그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던 '블랙홀' 같은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2016 시즌 FA컵 결승에서 두 팀이 만나면서 다시 반등하는 듯했지만 슈퍼매치의 인기는 계속 바닥을 찍고 있다.

슈퍼매치를 만드는 수원과 서울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두 팀 모두 2012년 홈 경기 평균 관중 2만 명 이상을 기록한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은 매시즌 1만6천 명에서 1만7천 명 정도의 홈 관중을 유치하며 선방하고 있지만, 수원은 지난 시즌 평균 8796명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이는 수원이 '축구 수도'라는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슈퍼매치의 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수원과 서울은 K리그의 스타 선수들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다. 모기업의 지원이 늘지 않는 한 스타 유입은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유명한 선수가 없는 경기장에 팬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 팀의 떨어진 순위도 슈퍼매치 인기에 악영향으로 다가온다. 객관적인 전력상 올 시즌 수원과 서울의 우승은 불가능하다. 당장 이번 슈퍼매치 이전에 수원은 리그 5위, 서울은 리그 10위였다. 두 팀이 순위 테이블 정상을 두고 맞붙은 기억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 누리꾼의 말처럼 적어도 이번 슈퍼 매치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고전하는 팀'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지 못하는 팀의 경기"에 불과했다.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매치에 팬들은 쉽게 열광하지 않는다.

일단 양 팀 모두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올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는 오는 5월 5일 열릴 예정이다. 공휴일인 어린이날, 추락한 슈퍼매치의 위상이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두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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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매치 느릿느릿 추락한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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