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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 알베르게에서 본 비오는 바깥 풍경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 알베르게에서 본 비오는 바깥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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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그들

레온까지, 나, 버스를 타버렸다.

잠을 자는 동안도 온통 신경은 왼쪽 발바닥에 가 있었다. 과연 다른 아침처럼 걸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한번 깨서 화장실에서 다시 소독을 하고 잠들었다. 잠들면서 세 가지 경우를 뒀다.

첫째, 거즈를 대고 테이프를 감은 다음 계속 걷는다. 둘째, 상처가 어느 정도 진정되도록 만시야(Mansilla de las Mulas)에서 하루 더 머문다. 셋째, 레온(Leon)까지 버스를 탄다. 세 번째는 결코 생각해보지 않은 경우였다. 이 길을 걷기 전에 결심한 것이 있었다. 배낭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짊어지고 가기. 꼭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기.

그런데 배낭을 다음 목적지 알베르게까지 보내고 싶은 적이 있었다. 어제 칼사다 데 코토 (Calzada de Coto)에서 잘 때였다. 왼쪽 발바닥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만시야까지 30km 이상 걸어야 그 다음날, 레온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레온은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 위에 있는 세 도시 중 마지막 도시였고 나는 그곳에서 두 가지 일을 꼭 해야 했다.

국내에서 사온 데이터 사용 유심칩이 7월 8일 끝난다. 그 전에 하나 더 구입해야 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가 일러준 대로 트레킹화도 사야 했다. 유명한 대성당 등 볼거리가 많지만 나는 위의 두 가지 것에 무게를 뒀다.

조금이라도 몸을 아껴야 했다. 막상 배낭을 맡기려고 하니 내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처럼 허전했다. 배낭을 메고 가야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를 수도 있었다. 배달 서비스는 지정된 목적지에 가져다 두기 때문에 그곳까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야 했다. 하지만 버스 타는 것은 고민해 볼 여지가 있었다. 내 발 상태가 걷기 힘들 정도로 심각했다.  

순례자들이 다 떠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순례자들이 다 떠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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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야에서 약국에 들렀다가 공원에서 소독하며 해바라기 하고 있을 때 슈퍼에 다녀온 데미안이 옆에 앉았다. 그는 나를 위해서, 나처럼 신발을 벗었다. 물집 하나 없는 그의 발은 깨끗했다. 부러운 눈길로 그의 발을 훑었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저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발. 걷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발. 그 발이 내게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좀 더 일찍 알아야 했다고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휘, 네 식량은 태양이구나." 태양처럼 환하게 웃는 그가 체리를 내 앞에 내놓으면서 앉았다. 나는 꿈쩍않고, 눈부시나 습기가 거의 없는 햇살에 몸을 맡긴 채 과즙 많은 체리에 손을 내밀었다. 고요가 한 움큼 내 입속에서 깨지는 듯했다. 그때, 데미안이 목소리를 조금 낮춰 심각하게 물었다.

"왜, 너는 버스 탈 생각을 하지 않니?" 

입속에서 과즙과 함께 달콤하게 스며들던 고요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나는 데미안에 경계태세를 취하면서 쏘아봤다. 정말 내가 버스를 타는 대상으로 보였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었다. 나는 각을 세워 대꾸했다.

"너, 나한테 농담하니? 나는 그런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어. 하루 여기서 더 머무르면 머물렀지 버스는 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오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내 합리화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시 데미안의 부축을 받고 절뚝거리며 침대에 와서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읽었던 책에서 마침내 내 합리화를 찾았던 것이다. 존 브리얼리의 <산티아고 가이드북> 책 속에서 다음 코스에 관한 안내를 읽다가 이런 표현을 발견했다(p.251).

…번잡한 길들을 따라 부르고스(Burgos)에 갔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이전의 경험이 어떠했건 이번 순례 여행이 무엇이건 간에, 만시야에서 레온 시내 중심가로 향하는 정규 노선을 이용하면 이 주도로의 번잡함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버스를 타는 옵션을 선택한다면, 걸어서 가는 동료 순례자를 위해 기도를 해주자….


저자는 어떤 곳에서도 버스를 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독 이 구간에서만 '정규 노선을 이용하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만큼 주도로 옆에 순례길이 있어서 사색을 방해한다는 다른 뜻이었다. 오죽 순례길 답지 않으면 버스를 타라고 할까. 내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확실히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그 다음날 내린 비였다.

비를 맞고 젖은 신발 속에 그렇지 않아도 피부 껍질이 벗겨진 곳에 물이 들어가 질퍽거릴 것을 생각하니, 아, 물집 공포가 또다시 몰려왔다. 이제 겨우 절반 걸었을 뿐이다. 이번만 눈 감아 보자. 나는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을 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비가 온 것이 고맙기도 했다. 4~5시간 걸려야 걸을 수 있는 20km를 버스 타면 30여 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레온 대성당
 레온 대성당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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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체 에너지는 늦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6시 전부터 순례자들이 배낭을 꾸리느라 시끄럽기도 했다. 6시 15분에 완전무장을 하며 나가는 데미안은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전날 나는 6시에 거뜬히 출발할 수 있다고 그 앞에서 큰소리 쳤다). 나는 버스를 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레온에 도착하면 이 숙소에서 함께 머물자며 숙소 주소를 메모해줬다. 데이비드는 6시 45분 즈음에 갔다(잠이 많은 그가 그날은 일찍 갔다). 나는 일부러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자는 척했다.

텅 빈 공간. 나도 늘 선두 주자에 포함됐는데, 뒤처졌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처절했다. 제일 늦게 출발한 팀은 자전거 순례자들이었다. 모두가 떠난 그곳. 어두운 공간에 일렬로 정리된 2층 침대 사이에 혼자 남은 나는, 밀려오는 허전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창밖을 봤다. 건물이 비에 젖어 그렇지 않아도 질척한 나를 더 구덩이로 밀어넣었다. 그 느낌이 이곳에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싹, 가져가버렸다.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레온으로 갈 거라는 계획을 접었다.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구건물과 현대 건물이 조화로운 레온 광장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구건물과 현대 건물이 조화로운 레온 광장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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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에 레온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면 8시 5분에 레온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거였다. 그곳에서 몇 분 걸으면 데미안이 일러준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하지만 나는 다른 곳을 선택했다). 알베르게에 배낭을 맡겨 두고 숙소에서 1.5km 떨어진 까르푸에서 유심칩과 트래킹화를 사면 됐다. 그곳 알베르게는 10시 30분부터 접수를 받는다고 했다.

구글맵이 알려준 대로 만시야 정류장에 가서 레온 가는 버스를 탔다. 요금도 쌌고 버스 기사도 친절했다. 버스도 새 차였다. 레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타는 듯했다. 아, 배낭 메지 않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은 낯설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살아낸 일상이었다. 그 일상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나는 옆 좌석에 배낭을 두고 실내로 향했던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높은 차체는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밖은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와이퍼 움직이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렸다.

5분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 차창 밖으로 배낭을 맨 채 우비를 그 위에 걸치고 왼쪽 길로 얌전히 걷고 있는 그들을 본 것이. 그들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인 외침이 터졌다.

"아, 저 미친 놈들! 비 오는 날, 저 뭐하는 짓거리야? 누가 봐준다고 비 오는 날 저러고 있어? 미쳤다, 미쳤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니깐!"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놀란 것은 나였다. 예기치 못한 욕설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치미를 떼고 얌전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내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했다. 그리고 또 욕설을 내뱉었다.

"아, 저 미친 놈…." 

데이비드였다. 키가 큰 그는 순례자들 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 검은 판초를 입고 멕시코산 모자를 목에 둘러 배낭 뒤로 돌리고는 약간 머리를 숙이면서 걷고 있었다.

내뱉은 욕설과 달리 나는 감정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갑자기 코가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반칙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나도 저 미친 부류에 속한다는 안도감 아닌 안도감이었다(남은 순례길 동안 나는 버스를 다시는 타지 않았다). 

적요

그래도 레온 대성당은 봐야했다, 늦은 저녁 슬슬 나가서
 그래도 레온 대성당은 봐야했다, 늦은 저녁 슬슬 나가서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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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시 까르푸에 가서 보다폰(유럽에서는 이게 더 잘 터진다고 한다) 유심칩을 한 달 2.4기가 사용량으로 50% 할인된 가격인 10유로에 샀다. 트래킹화는 프란체스코가 말한 것이 없어서 그냥 뒀다. 그는 방수가 안 된 걸로 무거운 배낭을 메니 고어텍스는 사지 말고 뒤꿈치를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사라고 했다. 그리고 세 가지 브랜드를 적어줬다. 까르푸 매장에는 없었다.

레온에서 공립 알베르게 보다 요금이 두 배나 비싼 사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빨래와 건조가 무료였다. 이틀 힘들어서 빨래를 못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다리 저는 동양인을 위해서인지 10시 전에 접수를 해줬다. 4인실을 내줬다. 알베르게 치고는 고급이었다. 알베르게 측의 배려인지 4인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독실처럼 사용했다. 하지만 늘 북적대다가 혼자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외로움은 만만하지 않았다.

적요는 시끄러움보다 더 사람을 괴롭혔다. 어디서인가 우리말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실제로 그날 옆에 있는 4인실에 한국인 순례자들이 있었다. 며칠 뒤에 그들과 만나게 된다). 너무 외로워서 환청이 들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레온시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광장마다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고 노천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냥 혼자 발바닥만 보고 실내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일어났다. 대성당이라도 봐야 했다. 아픈 것은 아픈 거지만 마음까지 유폐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발바닥에 거즈를 대고 감싸기 시작했다. 살짝 내리던 비도 멈춘, 해가 밤 10시나 돼야 지는 스페인이었다. 나는 영혼과 몸이 자유로운 순례자였다. 거칠 것 없는 프레그리노(Pregrino)였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끊임없이 내게 기운을 북돋우고 있었다.

정성 들여 거즈를 감싼 발에 양말을 신고 드디어 신발 속에 넣었다. 행복의 세트 포인트(set point)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작동하는 나는 선글라스까지 끼고 거울 앞에서 씩, 웃었다. 완벽한 외출 준비였다.

조금 징그럽지만 발 상처를 기억하며
 조금 징그럽지만 발 상처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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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 #프레그리노,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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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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