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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교조 출신 교사이자, 경남 민예총 이사장인 안종복의 첫 시집 <물이 될 수 없어 바람으로>에 수록된 필자의 해설이다. - 기자 말

어찌 보면 아득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엊그제 같은 1988년.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의 한국사회. 교단에 선 교사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어 학생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단어를 거침없이 말하던 이가 있었다.

경상남도 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안종복. 고백하자면 필자는 그의 제자 중 하나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마음 한 편엔 잊을 수 없는 '스승'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지식에 앞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 관해 말해주는 교사.

지극히 드물기에 그런 스승을 가졌다는 건 행복에 다름없다. 안종복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용기'와 '평등'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불의가 가진 힘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인 평등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소중한 가치다.

'교사 안종복'은 필자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그걸 가르쳤다. '존경할 만한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고통 받는 타자를 위해 충분히 행복했을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던진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감히 말하자면 안종복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최근 첫 시집 <물이 될 수 없어 바람으로>를 출간한 안종복(오른쪽)과 필자. 우리는 사제간이다.
 최근 첫 시집 <물이 될 수 없어 바람으로>를 출간한 안종복(오른쪽)과 필자. 우리는 사제간이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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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집을 낸다고 했다. 보내온 원고를 찬찬히 살펴 읽으며 필자는 스스로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했다. 안종복의 시는 때론 거칠고, 어느 순간 평정심을 잃고 격정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그 '거침'과 '격정'에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진실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안종복의 노래엔 '용기'와 '평등'을 향한 가슴 뜨거운 서정이 일렁이고 있다. 뿐인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열망까지 읽힌다. 아래 시를 읽어보자.

박제된 시조새가 박물관의 창을 부수고
빗살을 가른다
휘젓는 날개는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역사를 녹음 속으로 몰아갈 즈음
여인의 옷자락은 천지를 덮고
비상하는 구지봉

- '구지봉' 중 일부

해직과 투옥, 오랜 가난과 고통 속을 살아왔지만 안종복은 그것들에 주눅 들지 않았다. 위 작품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박제된 시조새'의 '휘젓는 날개'가 '역사'를 향해 있다는 그의 문장은 역사를 온전히 낙관하는 자가 아니면 쉬이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도저한 낙관 담아내

역사와 인간에 대한 그의 '도저한 낙관'은 미군 탱크에 깔려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 '이제야 눈물이 난다'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난다.

나는 아직,
너희들을 위한 진혼곡을 부를 수 없다
어찌 이대로 너희들을 보낼 수 있단 말이냐
가을은 보낼 수 있어도 겨울은 맞을 수 있어도
안타까운 너희들의 혼은 억울해서 보낼 수 없다
아니 망월동 수유리 삼천리 방방곡곡
죽은 자의 영혼까지 불러내어 맞서게 하련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또래 어린 여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토록 절절하고 구체적으로 진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교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 안종복의 시는 삶의 구체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구체적 '역사성' 외에 '서정성'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시다.

송이송이 차례로 펴지는 날개
소녀의 마음 같구나 연보라 꽃잎
네 안에서 봄이 녹는다

소녀는 수줍은 손수건을 흔들고
기차가 검은 연기를 뿜는다
고사리 손 그림처럼 순진한 풍경화가
번개마냥 다가온다

- '등나무 꽃' 중 일부

여기서 잠시 필자의 기억 속 안종복이 보여준 '역사성'과 '서정성'을 말해볼까 한다. 오래 전 이야기다. 서울올림픽과 '5공 비리 청문회', '광주항쟁 청문회'가 열렸던 1988년. 30대 중반의 젊은 영어교사 안종복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모의 청문회'를 열거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비판받아 마땅한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전횡을 일삼은 군사독재가 지속되던 1980년대의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 그러나 안종복은 그걸 두려워하지 않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절대 다수의 교사들이 세상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다하지 못하던 시대였는데도 그는 달랐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9년.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이른바 '전교조 사태'를 매일같이 보도했다. 어제까지 학생들의 아픔을 다독이고, 슬픔을 함께 울어주며, 즐거운 일에는 더불어 웃던 스승들이 무더기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용기'는 그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안종복이 보인 '용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아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쳐보겠다"는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교사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몬 정권에 당당히 맞섰다. 그 용기는 결국 '투옥'이란 고통을 불렀다.

안종복은 언필칭 '1989년 전교조 사태'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던 교사 중 한 명이다.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라",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친구도 경계하라"는 말이 아닌, "불의와 타협하는 인간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는 가르침을 준 스승.

그 시절,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환했던 그의 눈빛에선 용기와 더불어 '따스한 서정'이 반짝였다. 그 '서정'을 이번 시집에서 다시 확인했으니 이것은 분명 행복한 체험이다.

우리 물이 되어 만나자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흐르자
가난한 땅이라도 좋고
버려진 땅이라면 더더욱 좋은
신심으로 집짓고 진심으로 땅을 가는
그런 곳에 스며드는 물이 되자
- '순백의 마음으로 내일을 예비하자' 중 일부

바람은 호수를 맴돌다 물위에 자고
춤추던 바람개비 몸살로 누웠나
꽃배 기우뚱거리다 일렁대며
마냥 유혹하는 연지호
- '풍경' 중 일부


단순히 '용기'만이 아닌, 그 용기의 내부에 '인간적 서정성'까지 간직한 안종복이기에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나자' 혹은, '버려진 땅에 스며드는 물이 되자'고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을 필자는 안다.

이 도저한 서정성에 더해 '춤추던 바람개비 몸살로 누웠나'라는 작고도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안종복이 인간과 세계를 얼마나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지 누구라도 어렵잖게 짐작이 가능하다. 논의를 좀 더 심화시키기 위해 아래 두 편의 시를 살펴보자.

그리움이었다 민주야,
너를 부르며 칭송했던 나의 역사가
세월 따라 묻혀 버릴까봐 두려워
빨갛게 칠한 도화지의 반쪽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채워졌다
다른 반쪽은 싸우면서 채울 나의 빈 마음
- '빈 사색' 중 일부.

당신을 알면 당신을 이길 줄 알았는데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표만 찍어대며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안 그날이
세상 속에 내가 갇혀버린 바로 그날이었지요
- '세상 속에 갇히다' 중 일부.


안종복의 첫 시집 <물이 될 수 없어 바람으로>.
 안종복의 첫 시집 <물이 될 수 없어 바람으로>.
ⓒ 안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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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그것을 열망했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 속에서 커왔다. 그렇기에 '민주'의 역사는 '칭송의 결과물'이 아니다. 안종복은 그의 시 '빈 사색'을 통해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결국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싸우면서 채울 나의 빈 마음'이 합쳐져 열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우리는 위에 인용된 '세상 속에 갇히다'에서 얼핏 보이는 절망과 슬픔도 실상은 희망과 꿈의 반어(反語)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결국 아름답고 평등한 세상은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열리는 게 아닐까.

시종여일했던 그의 신념과 태도

다시 기억의 회로를 과거로 돌려본다. 1999년 학교를 졸업한 필자는 직장인이 됐다. 10년 만에 안종복을 다시 만난 게 그 즈음이다. 한 언론사의 수습기자였던 필자는 신문을 통해 안종복이 오랜 해직기간을 거쳐 경상남도 김해시의 중학교 교사로 복직했다는 걸 알게 됐다.

삶의 지향과 태도를 바꾸지 않은 그는 많지 않은 월급을 받는 게 분명할 텐데도 진보 언론사에 적지 않은 후원금을 쾌척했다. 자신보다 먼저 타인을 생각하며 살아온 안종복의 인격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고교시절 존경했던 스승'이 보고 싶었다.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재직하던 학교로 전화를 걸었고, 어렵지 않게 서울에서 안종복을 만날 수 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 그러나, 안종복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고,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한 목소리 또한 변하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직장에 몸담고 있는 제자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만 해도 눈치 없는 필자는 안종복이 오래 전부터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삶과 세상을 진실의 눈으로 바라봤던 과거의 젊은 스승은 그때 이미 '미래'의 전망까지도 시와 문학을 통해 설계하고 있었다. 이번 시집을 통해 뒤늦게 그걸 알아차렸다.

작지만 큰 별이다
태고의 신비 간직한 영혼이다
하루에도 억겁의 세월을 살며
사실의 강을 뛰어넘어
진리의 성문을 들어서는
지성과 이성으로 무장한 개선장군이다
지식으로 황금을 누르며
과거와 현재의 산맥을 이어
마르지 않은 생존의 핏줄로 아름다운
속살 드러내지 않은 새악시다 님은

시간의 기록은 지워지지만
역사적 진리는 영원히 남는다
오, 임의 사랑으로 역사는 쓰여지고
우리의 사랑도 추억 속에 남는다
- '미래의 땅을 위하여' 중 일부.


위에서 말하는 '님'이 누구인지는 구구한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지식으로 황금을 누르며' '마르지 않은 생존의 핏줄로 아름다운' 님은 '역사적 진리'로 남아 '우리의 사랑과 추억'이 된다. 아직도 분명하게 답을 찾아낼 수 없다면 아래 인용할 안종복의 또 다른 시 '전선으로 간 병사'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어찌 민주를 잊으랴 자유를 망각하랴
사랑하는 이들의 피와 땀과 죽음과 그 불굴의 사상과 투지와 용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제 누구라도 답을 찾았을 것이다. '님'이란 바로 '민주'와 '자유'. 이 두 단어는 안종복이 시종일관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길에서 발견한 '용기'와 '평등'에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민주와 자유는 망각할 수 없고, 망각해서도 안 될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용기와 평등처럼.

이러한 '역사성'에 더해 안종복은 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서정성'도 든든히 지켜내고 있다. 아래 세 편의 시는 필자만이 아닌 적지 않은 독자들을 햇살 눈부신 평화로운 강변으로 이끈다. 읽으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노래들이다.

낮은 얼음장 밑으로
친구의 혼이 흐르고 있다

그해 서툰 걸음 터벅터벅
우리의 희망을 맡기려 떠났지
- '겨울강가에 앉아서' 중 일부.

기다림이 길다하여
외로워 말자
헤어짐이 멀다하여
서러워 말자

우리는 소낙비
소낙비 사랑
어우러져 내리는
참사랑 참비
- '소낙비 사랑' 중 일부.

실비 몰고 오는 숨결 같은 바람
장대비와 함께 오는 숨 막히는 바람이라도
황량한 거리의 쓸쓸한 찬바람이라도 좋으리
- '물이 될 수 없는 바람으로' 중 일부.


필자가 열일곱, 스승 안종복이 서른일곱이던 시절에 우리는 만났다.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주는 아니지만 서로가 애틋한 사제는 아주 가끔 만나 속내를 터놓는 사이가 됐다.

3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서른일곱 '젊은 스승'

안종복은 몇 해 전 정년퇴직을 했고, 필자의 머리칼에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심하면서도 서러운 세월. 그러나, 스승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2015년 늦가을이었던가? 경남 창원에서 열린 작고(作故) 문인의 출판기념회에서 안종복을 만났다.

어두운 건물의 2층 복도. 먼저 필자를 발견한 스승이 성큼 다가와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제자를 끌어안았다. '작은 거인'의 몸짓과도 같은 그 포옹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이와 상관없이 안종복은 여전히 '서른일곱'의 젊디젊은 피 뜨거운 교사다. 최소한 필자에겐. 여전히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스승을 가졌다는 건 얼마나 기꺼운 일인가. 아래처럼 '역사'와 '서정'이 나란히 어깨를 건 절창을 시집 안에 담아낸 안종복은 지금도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제자들이 우러러 보는 사표(師表)다.

기어서라도 가리
가는 허리 따라서 올망졸망
서린 한이 가없이 펼쳐진 몸의 전설을 보러감이라
하늘을 향하지 않음은
땅에 뿌리를 내려 그 아내로 살고자 함이었더냐
발길 머무는 곳
자손들 옹기종기 처처에 살아남아
오늘, 돌무더기 위로 억세게 밀어 올린
꼿꼿한 분신의 몇 알들이여
폐허의 탑을 돌아가며
신비로운 기운들을 되풀이하며

대지의 핏줄에다 수혈하는 혈흔 몇 점
- '망개나무' 전문.

너는 본래 나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구름과 안개와 비와 바람과 햇살과
이름도 알 수 없는 꽃과 나무와
너를 낳은 산맥과 오래전
반도의 탄생과 함께 있었다
- '백두산 돌을 보며' 중 일부.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어서라도' 가야 할 길을 잊지 않고, '폐허의 탑' 뒤에 엄존하는 '신비로운 대지의 핏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안종복은 자신이 조금 더 가지려 남을 밟고 올라서는 세상에서 '구름과 안개와 비와 바람과 햇살과 꽃과 나무'는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고 노래한다.

이는 비울수록 채워지는 게 사람의 마음임을 알지 못한다면 쉽게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독점을 경계하며 나눔의 성정으로 살아온 그가 걸었던 험난한 역사의 가시밭길을 생각해본다. 서늘해지는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그러나, 정작 안종복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언제나처럼 '옳은 길'을 향한 그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다. '마산교협 창립에 부쳐'라는 부제가 붙은 시를 보자.

배배 꼬인 역사의 틈서리
가쁜 시간의 틀 속에서
시린 아픔
핏줄 물어뜯는 인내로 이기고
그렇게 죽은 듯 살았었구나
그대 민주교사여

그대 영혼은 깊은 상흔으로
숨죽이며 소리치며
부서지고 찢겨진 고통의 파편 모아
오늘 허기진 가슴마다
참교육의 깃발 꽂는구나
그대 분노로 아름다운 이여
- '죽은 듯 살았었구나' 중 일부.


위 시는 '시린 아픔'과 '핏줄 물어뜯는' 역사의 고통 속에서 '허기진 가슴'으로 살았음에도 '분노'조차 아름다운 사람을 노래하고 있다. "안종복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는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스승의 겸손과 겸양을 알고 있다. 맞다. 안종복은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용기와 그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평등의식을 저항과 극복의 삶을 통해 체득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앞세우는 법이 없다.

제자가 스승의 문장을 평한다는 건 주제 넘는 일이다. 해서, 필자는 안종복 시집의 한 구석에 자리할 이 졸고가 시집 해설이 아닌 '30년 전 제자가 잊지 못할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딸이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할 사람

이제 그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됐다. '사랑하는 나의 딸들아'라는 제목이 붙은 안종복의 시를 읽는다.

'아빠가 교원노조의 가난한 선생'이었기에 '아빠 때문에 못 산다'고, '아빠는 바보'라고 했던 어린 두 딸을 향해 안종복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를 감옥에 두고 엄마와 너희들이 흘리는 눈물은 작은 눈물'이라고, '나라를 빼앗기고 이민족의 수탈 아래 허덕이는 이 강토 이 민중을 위해 뿌리는 눈물은 큰 눈물'이라고.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빠를 생각하며 울지 말고 이 땅의 고난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함께 울자'고. 아빠를 그리워하며 울던 안종복의 두 딸은 이제 서른을 넘긴 어른이 됐다. 아버지의 삶과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그럼에도 딸들의 이름 '정하'와 '정민'을 부르는 안종복의 문장엔 눈물이 묻어 있다.

그 눈물의 힘이 오늘의 안종복을 만든 게 아닐까. 스승의 시에 덧붙여 필자는 이런 말을 정하와 정민에게 해주고 싶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용기와 평등을 가르친 스승으로 모두의 가슴 속에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이젠 그 '바보 같은 아빠'를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태그:#안종복,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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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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