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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15~25세 실업률은 9.8%. 전체 실업률인 4.6%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이 같은 현실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당연히) 청년들이다. 겹겹이 쌓여가는 불안에 오늘도 토익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지만, 영어가 취업을 담보해주던 시대는 갔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마음은 또 다시 초조해진다.

취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27일 송파구 일자리카페 오픈 행사에 초빙된 취업 전문가 이민영 강사의 특강을 들어보기로 했다. '취업의 신'으로 불리는 이민영 강사는 면접 경험이 없는 기업의 실무자들을 면접관으로 양성하는 기업 교육가다. 특강을 통해 요즘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요즘 취업 시장의 트렌드는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 날 함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어 본다... 기자 말

'외워온 자기소개',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최근 있었던 일이다. 모 IT기업의 최종 면접 장소에 입장한 지원자들은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면접관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드 다발이 놓여져 있었던 것.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 수십 장을 보며 '저게 뭘까' 긴장하는 지원자들에게 면접관이 물었다. '이 중에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와 약점, 강점을 소개하는 카드 하나씩을 골라 자신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과는 어땠을까. 대다수가 카드를 붙잡고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심지어 카드 선택을 포기한 지원자도 있었다는 후문. 해당 기업이 이 '카드 면접'을 통해 지원자들로부터 알고자 한 것은, 사실 지원자들이 서류전형에서 이미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있는 답변을 내놓은 지원자는 많지 않았다고. '1분간 자기소개 해 보세요'와 같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본인 소개를 요구했다면 누구보다 유창하게 자신을 어필했을 그들이었다. 하지만 물음의 방법을 바꾸어 지원자들이 미리 외워온 것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기업은 자기소개 작성 과정에서 지원자가 정말 자신에 대한 분석이 있었는지를 구분해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모 기업 해외영업팀 신입사원을 뽑는 채용에서, 지원자들에게 현금 3만원을 주고 외국에 내다 팔만한 상품을 사와 면접관 앞에서 세일즈를 하도록 하는 면접이 있었다. 채용의 영광을 거머쥔 주인공이 선택한 제품은 샤워기 필터. 미국 중부 일부 지역의 수도 시설이 매우 낙후돼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미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굳이 수출해야 하는지 묻는 면접관의 날선 질문에, 그는 해당 지역의 거주자들 상당수가 모래가 섞이지 않은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깨끗한 수도를 경험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아 원래 그런 줄 알고 쓰는 이들에겐 샤워기 필터가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 될 거란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그가 현지 사정에 이토록 밝았던 것은 자신 스스로가 미국 중부에서 유학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 시절 모래섞인 물을 쓰는 것이 너무 괴로워 한국에서 샤워 필터를 공수해와 알뜰히 썼던 기억을 면접에서 되살린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학 경험에도 불구, 그의 영어 실력이 썩 좋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첫 세일즈 장소로 어디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미국 중부의 대학교 기숙사를 공략하겠다'고 대답한 그의 번뜩이는 답변은 다소간의 부족함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카드 면접'과 '샤워기 필터', 이 두 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준다. '갖춰진 나를 진실되게 드러낼 것'.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면접 지원자들을 종일, 수 시간씩 상대하는 면접관들은 '외워 온 자기 소개', '선배가 손봐준 면접 필살 답변' 같은 것들쯤은 쉽게 걸러낼 수 있다. 지원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를 AI로 가려내거나, 시중의 면접 컨설턴트들이 귀띔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단어들을 빅데이터화하여 지원자가 진짜 '자기 답변'을 하는지 여부를 판별해내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모범 답안'을 만들어내려 애쓰지 말고, 직무와 관련해 필요한 역량들을 자신이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를 보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프레젠테이션 면접에 ' PPT 실력'은 필요없다고?

해외 영업팀 신입 사원이 된 '샤워기 필터' 청년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그는 영어 실력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람'과 '영어를 잘 하는 사람' 중 영업팀에 더 필요한 인재는 단연코 전자다. 바로 수긍하기 어렵다면 아래의 내용을 따라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자.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의 필수 요건으로 영어를 꼽는다. 물론, 글로벌 시대이고, 상당수 취업 준비생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요즘이기에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 구직자들의 영어 실력은 소프트 스킬(soft skill), 혹은 '외적 능력' 정도로 취급되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직무에 필요한 '핵심 능력'을 갖춘 인재라면, 영어는 뽑아놓고 가르치는 한이 있더라도 뽑는다는 얘기다. 면접관들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직무에 대한 지원자의 관심과 경험, 그리고 역량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창 유행인 '프레젠테이션 면접' 대비 시에도 같은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프레젠테이션 면접 준비를 위해 PPT 잘 만드는 법을 공부한다. 그러나 요즘 기업들은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쓰일 PPT라면 외주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PPT 자체는 '핵심 능력'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 면세점의 사례를 보자. 이 면세점은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매출 향상을 위한 방안을 1시간 이내로 준비해 발표하도록 하였다. PPT를 깔끔하게 만든 지원자와, 요즘 면세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중국의 사드 보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한 지원자 중 면접관의 선택을 받은 지원자는 누구였을까. 두말 할 필요 없이 후자였다.

세븐일레븐은 식품 부서의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다양한 재료를 주고 혼밥족을 위한 도시락을 즉석에서 만들어 올 것을 주문했다. 면접관들의 선택은 편의점 업계가 '도시락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이에 대한 질의에 대비해온 어느 지원자의 '5대 영양소 골고루 혼밥'이었다. 뛰어난 요리 실력 같은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핵심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지원 직무에의 관심과 거기에 따른 역량 개발이었다.

오해는 말자. 뛰어난 영어 실력이, 깔끔한 PPT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혹은 요리 솜씨가 의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지원하는 기업의 지원하고자 하는 부서가 요구하는 '핵심 능력'이 어학이나 컴퓨터 활용 능력, 요리 실력 그 자체인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도입부의 질문을 다시한 번 끌어와 보자. 해외 영업팀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역량은 '매우 뛰어난 영어 실력'일까, 영업을 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일까? 여전히 대답이 어렵다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의 사례를 보자. 현대그룹의 모 계열사는 총 5층 건물 중 3층을 '영어 전용'으로 운영한다. 3층에서는 오로지 영어만 이용할 수 있다. 외국에 파견 보낼 직원들의 영어 실력을 회사에서 키워내는 것이다. 필요한 핵심 역량만 있다면 영어 실력은 부차적인 것이다. '내 적성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라는 직업 탐색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내가 앉고자 하는 그 자리가 요구하는 '핵심 능력'이 무엇인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취업, 세 가지만 기억하자.

우리는 면접에서 진실된 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과, 자리에 필요한 '핵심 능력'들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 덧붙여 취업을 위한 '꿀팁' 세 가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

첫째, 기업의 채용 블로그를 참고하자. 기업의 채용 블로그는 좋은 인재를 모셔오고자 하는 기업의 유인책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이나 인재상을 엿볼 수 있다. 기업의 공식 홈페이지나 채용 사이트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둘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활용하자. NCS는 직업과 직무에 필요한 '핵심 능력'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다. 앞서 우리는 핵심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필요한 핵심 능력은 무엇일까? NCS는 여기에 대한 대답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NCS를 검색하면 관련 사이트에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직무에 관련한 경험을 많이 쌓자. 휴학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하는 취업 준비생들이 많다. 물론, '기본적인 수준'의 영어는 필요하므로 영어 실력이 아주 떨어진다면 휴학을 해서라도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휴학한 동안 뭐 했어요?'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영어공부했습니다'라는 대답은 결코 좋은 답변이 아니다. 가능만 하다면, 지원 직무와 관련한 경험을 답변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청년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어차피 일은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취업을 준비한다. 이는 자격증이나 수료증이 발급되지 않는 '경험'에 시간을 투자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다. 그러나 신입사원의 4분의 1이 1년 이내 퇴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애써 일을 가르쳐 놓은 직원들이 퇴사해버리는 경험을 반복한 기업들은 이제 뽑아서 잘 가르쳐 이용할 인재가 아닌, '갖춰진 인재'를 원한다.

물론 실무 경험이 없는 신입 사원이 직무에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직무에 필요한 '핵심 능력'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핵심 능력 양성을 위한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청년 실업은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년들의 노력 부족이나 높은 눈높이 따위를 탓하는 것은, 이미 '오버 스펙'인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자, 청년 실업 문제의 제도적,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에 불과하다. 여전히 OECD평균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시급을 받으며, 등에는 수 백 수 천 만원의 등록금을 짊어지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의 '노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취업에 관한 전문가의 조언을 나누는 것은 그 노력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땅의 청년 취준생들에게 다시한 번 응원과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페이퍼보이> paperboy.kr 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태그:#취업,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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