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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맥주가 잘 맞지 않는다고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왔어. 우리 나라에서 주로 먹게 되는 라거 맥주는 국산, 수입을 막론하고 더울 때 시원한 맛에 한두 잔 마시는 것 외에는 크게 즐기지 않았지. 그런데 영국 출장에 가서 에일 맥주를 마시면서 완전히 생각을 바꾸게 되었지. 런던프라이드나 세인트앤드류스 에일 등, 가는 곳에서 파는 그 지역 에일 맥주는 뭐랄까? 새로운 맛의 기준을 가지게 했단다.

한국에 와서도 수제맥주(Craft Beer) 열풍이 불어서 에일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어 요즘도 가끔 즐기게 되었어. 그러다가 위크숍 때문에 홍콩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홍콩에는 어떤 드래프트 맥주가 있을까? 궁금해서 미리 검색을 해봤단다. 관광지는 아니긴 한데, 포트리스힐과 틴하우역 사이쯤 되는 곳에 홍콩식 드래프트 맥주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메모를 해두었지.

신텐디 체코 드래프트 맥주
▲ 체코 맥주 신텐디 체코 드래프트 맥주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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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홍콩 워크숍이 시작되고, 3일쯤 지난 밤.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결심했지. 함께 가겠다는 여자 후배가 있어서 같이 찾아보기로 했어. 숙소가 있던 코즈웨이베이에서 20분쯤 걸어서 포트리스힐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했지. "어렸을 적에는 겁 없이 참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밤에 외국의 거리를 걸어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라고.

후배는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외국계 항공사와 비행기 제조사에서 커리어를 쌓은 친구라 외국 경험이 아빠보다 훨씬 더 많은 친구인데 의외라고 생각했지. 아빠는 말했어 "아니 그래도 홍콩은 매우 안전한 동네이고, 여러 차례 워크숍도 왔는데 괜찮지 않니?" 그랬더니 다른 이야기를 하더구나. 미혼일 때는 인도나, 중동의 거리까지도 호기심에 잘 돌아다니곤 했는 데, 아이가 생기고 키우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겁이 나더라는.

결국 그날은 그냥 한 바퀴 돌아 호텔로 돌아왔는데, 아직은 해외에 나가면 밤에 호기심에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빠로서는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 만약에 아빠에게 해외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희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 그저 남자이기 때문에 괜찮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 사고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 오는 것인데 말이지.

그 후론 조심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공교롭게 얼마 후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단다. 상하이에 출장을 가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함께 간 분들과 술을 한 잔 하게 되었어. 신티엔디(신천지)라는 오래된 식민지 시절의 유럽식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 놓은 번화가가 있는 데, 그곳에 유명한 체코 드래프트 맥주가 있다는 말에 가게 된 거야.

'슈바인스학세'라는 독일식 족발과 함께 즐겁게 맥주를 먹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동료 한 분이 옆 테이블의 중국인들과 가벼운 시비가 붙은 거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국인이 흥분을 하더니만 술병을 들고 싸움을 걸게 되었지. 그 분은 덩치가 크고 힘이 있는 편이라 양 손을 잡아 제압을 하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 나서 밖으로 나왔지.

독일식 족발 요리
▲ 슈바인스학세 독일식 족발 요리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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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중국인은 자신이 제압당했던 게 분했던지 족발을 자르는 칼을 들고 따라 나온 거야. 너무 놀라서 모두 뛰어서 그 자리를 피했단다. 사실, 한국에서도 술 마시고 시비가 게 벌어지는 일의 당사자가 되어 본 건 대학생 때 이후 처음인지라 놀라기도 했고, 특히나 칼이 주는 두려움은 막상 겪어 보니 정말 크더구나.

귀국 후에 한동안은 남자를 보면 손만 바라보게 될 만큼 칼을 든 상대방이 주는 공포감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단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도 벌어졌다면, 아빠 혼자 부양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일이 닥치게 될까? 그 영향을 받아야 하는 너희를 생각해보면서, 홍콩에서 그 후배가 했던 걱정했던 말이 떠올랐고, 100% 이상을 공감하게 되었단다.

언젠가 너희도 아빠를 닮았으니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가게 되겠지. 아빠가 즐겨 듣는 여행 팟캐스트를 들어 보면 스물을 갓 넘겨서 전 세계를 히치하이킹 하거나, 배낭 하나 매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다. 사실, 그 전에는 그저 당차고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에는 매일 자라는 너희를 보면서 언젠가 내게 긴 여행을 떠나야 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말을 보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천천히 해보게 되었어.

외국을 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경험과 생각들이 얼마나 삶에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는지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은 찬성해야 겠지만, '위험한 상황들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피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하기로 했단다. 어린 시절에는 돈이 없다 보니, 배낭을 매고 가장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나 카우치서핑을 통해 숙박을 해결하거나 하루밤치 숙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 이야기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심지어는 히치 하이킹까지 하면서 말이지. 물론 아무 일도 없었고, 그 무용담을 자랑스레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너희를 키우게 되니 생각이 바뀌게 되는구나. 위험은 확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최소한의 보안은 경제적인 절약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구나.

이방인은 어디서나 쉽게 티가 난단다. 한국에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쉽게 알아채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지(하다 못해,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온 여행객들도 티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타국의 여행자는 더욱 그럴 확률이 높지). 그리고 모든 범죄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에게 벌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란다.

가끔 사회에 불만이 있는 범죄자들이 살인이나 강도를 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관찰해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불우했는지를 이야기 해. 하지만 정작 그들의 범죄는 CCTV와 더 많은 보안을 갖춘 부자동네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범죄가 쉽게 드러나지 않은 보안이 취약한 가난한 동네에서(그들의 표현대로라면 무전한 동네겠지) 행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더구나.

스코틀랜드의 행복했던 어느 저녁의 기억
▲ 북해의 어느 밤 스코틀랜드의 행복했던 어느 저녁의 기억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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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논리로 보안이 높은 호텔이나 높은 등급의 기차 보다는 그 반대의 허술한 숙소와 3등칸에서 사고들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도 당연한 논리고, 아빠처럼 덩치 큰 남자보다는 왜소한 여자들에게 사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거야. 물론 돈이 없는 청춘들이 더 오래 여행을 하고 싶어서 아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나면 결국 소탐 대실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어.

최소한의 보안이 이루어지는 숙소와 운송수단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와 시간대를 선택하는 게 안전한 여행의 기본이란 생각이 든단다. 좀 더 나은 조건의 환율을 찾아 정식 환전 루트가 아닌 환전상을 찾는 경우도 포함될 것 같고 말이야. 소탐대실이라고 작게는 더 큰 경제적 손실을 크게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

더 나은 조건이나 더 저렴한 가격은 거기에 걸맞은 이유가 있는 법이란다. 이것을 선택하는 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나쁜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젊음의 치기는 세상의 모든 불운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확률은 그저 확률일 뿐,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발생하게 되지.

"여행의 많은 순간순간들을 극한 지점으로 몰다 보면 그 안에서 선명한 쾌감을 만난다"는 여행 산문 집에서 읽은 문구가 생각난다. 많이 낭만적이고, 그런 쾌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지만, 남들보다 더 극한의 여행을 하는 것이 더 나은 행복이라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단다. 여행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다른 형태로 깊은 의미와 기쁨을 남길 수 있다는 걸 겪어왔고, 너에게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

SNS에서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더 극단의 여행으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그런 여행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에 행복한지를 천천히 경험을 통해 느끼며 세상을 향해 성장해가기를 소망한다. 언젠가는 내 모든 이런 생각들이 노파심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네가 증명하며 여행을 즐기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구나.

포트리스 안쪽 한 호텔에서 바라본 홍콩 섬 쪽 야경
▲ 포트리스 힐 포트리스 안쪽 한 호텔에서 바라본 홍콩 섬 쪽 야경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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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할 예정입니다. (electricjin.blog.me)



태그:#여행, #안전한여행, #여행사고, #확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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