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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2월 31일 '#내려와라 박근혜' 9차 대구시국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006년 12월 31일 '#내려와라 박근혜' 9차 대구시국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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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중심으로 만18세 이하의 선거권 인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지난 3월 22일 4월 국회에서 18세 선거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농성을 시작했고, 이 자리에서 청소년 3명은 참정권을 요구하며 삭발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로 내놓은 헌법 개정안에서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 선거권 행사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하고, 18세 이상 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한다"라며 18세 선거권을 명시했다.

그보다 훨씬 먼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19세 이상인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18세이거나 그보다 더 낮추어 16세에도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선거제도가 있는 세계 230여 개 나라 가운데 93%가 18세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심지어 북한도 17세라고 하니 18세 선거권 요구는 시대의 당위이며 국제적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즉각적으로 단행해야 할 일이라는 데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는 이토록 고3에 해당하는 18세의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논의와 요구가 격렬한데, 정작 학교 안에서 18세 고3은 지워진 존재, 학생도 시민도 아닌 인간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학교에서 고3은 권리도 권력도 없는 자, 학생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자, 오로지 학습 의무만 있는 자이다. 대한민국 고3이 학교에서 갖는 유일한 권리는 학교가 만들어준 조폭적 선후배 질서에 따라 1-2학년보다 급식을 먼저 먹을 수 있는 권리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대표를 뽑는 학생자치 선거에서 고3은 배제되는 것이 일반적인 학교들의 현실이다. 학생으로서의 '고3권' 배제는 학생자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학교 규정을 살펴보면 전국의 많은 고교들이 학생자치회장 입후보 자격을 "선거 공고일 현재 회장은 2학년, 부회장은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규정하고 있다. "회장(2학년), 부회장(1학년)은 전교생이 직접-비밀 선거에 의거 선출"한다거나 "회장은 2학년, 부회장은 각 학년에서 입후보"한다고 규정을 정한 학교도 있다. 조금씩 문구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고3을 배제하고 고1-고2 중심의 학생자치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학교들은 여름방학 전에 학생자치 선거를 실시하고 이듬해 1학기까지 학생자치회장단의 임기를 규정하고 있다. 2학년 2학기 때 학생자치회장에 당선한 학생이 고3 1학기에 임기를 마치도록 한 것이다. 고3 2학기부터는 모든 것을 접고 오로지 수험생 모드로 전환하라는 명령인 셈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이 같은 시스템에 문제 의식을 지니기보다는 순응한다. '고3 학생'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수험생이라는 제단에 기꺼이 바치고 마는 것이다. 학교들은 이를 학생자치 선거 규정으로 단호히 명령하고 학생들은 군말 없이 복종함으로써 학교에서 학생 자치나 학교 민주주의는 반쪽 짜리가 되거나, 온전히 뿌리내릴 수 없는 체제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 고교들의 실상이다.

시도 교육청들도 이러한 흐름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경기, 세종, 강원, 울산 등의 교육청에서 학생 참여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방송인 '미디어경청'에서는 2018 청소년 방송 운영위원을 모집하면서 "2018년 새 학기 기준 경기도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및 같은 나이 청소년"을 지원 자격으로 제시했다. 학교 밖 청소년까지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 놓고 정작 학교 안 초등학생은 물론 중1과 고3은 배제했다. 2017년 경기도교육청 청소년방송 1기 아나운서 모집 지원 자격 역시 "경기도 내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2학년 (같은 연령 학교 밖 청소년 포함)"이라면서 고3을 배제했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교육감 최교진)은 2018년도 제4기 학생기자단을 모집하면서 모집 대상으로 "세종시 공사립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으로 했다. 역시 초등학생과 고3은 응모가 불가능하다. 학교 밖 청소년도 참여할 수 없다.

강원도교육청(교육감 민병희) 역시 2018년 학생기자단을 모집하면서 대상을 "18개 시군 고등학교 1-2학년"으로 한정했다. 고3은 물론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빼버렸다. 학교 밖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울산광역시교육청(교육감 권한대행 류혜숙)은 울산교육 홍보대사 제3기 어울림기자단을 모집하면서 "고등학생(1-2학년)"으로 대상을 제한했다.

이 지역 교육감들은 모두 취임 이후 '학생중심' '학생자치'를 기치로 내걸고 있거나 학생들의 참여와 자치를 존중하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실제로는 배제와 격리를 당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감이기는 하지만 실제 학생 자치나 학생참여가 해당 시도교육청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무관심하거나 잘 모른다는 방증이다.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존중-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배제-격리 당하는 부조리를 개선하는 것을 이들이 외면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들 가운데에는 16세 선거권을 주장하는 교육감도 있고, 그들의 모임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18세 선거권을 공식 입장으로 내놓기도 했다. 정작 자신들이 책임지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권리와 민주주의, 학생들의 자치와 참여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는 모르면서 말이다.

18세 선거권을 옹호하고 힘을 보태는 일도 교육감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거기에 더해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부당하게 배재-격리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챙기고 살펴야 한다. 교육청에서 먼저 특정 학생들을 제외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고3이든 초등학생, 중학생이든 참여 의사는 그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학교나 교육청이 미리 제한하고 막아서는 안 된다.

고3에게도 학생자치회장으로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고3들 역시 그러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학교 안의 고3권과 학교 밖의 18세 선거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시민교육의 진정한 시작이며 학생자치를 일구고 학교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필수적인 권리이다.


태그:#18세 선거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학생자치, #교육감, #민주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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