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재 주방 창밖으로 불똥이 떨어지는걸 보고 옆 건물에 불이 난줄 알았다
▲ 화재 주방 창밖으로 불똥이 떨어지는걸 보고 옆 건물에 불이 난줄 알았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난주 토요일밤,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TV를 보다 일찍 주무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돌아와 침대에 붙어 있는 아이패드를 켜고 웹 서핑을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또 어느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건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니는 주무시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며 '또 시끄럽게 싸운다'고 혀를 차셨다.

그러다 "아들, 나와봐. 옆집에 불이 났는가보다" 하시며 방에 있는 나를 불러내셨다. 불이 났다는 소리에 뭔 소린가 싶어 방을 나갔다. 저녁을 먹고 환기를 위해 주방 창문을 열어뒀는데 창밖에는 불이 일렁 거리는 느낌과 함께 조그만 불똥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걸 보며 '진짜 옆집에 불이 났나?' 생각하는 순간, 우리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불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보니 불은 옆집이 아니라 우리 빌라 4층에서 난 거였다. 우리집은 빌라와 단독주택이 블록으로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있는 4층짜리 조그만 빌라다. 한층에 2세대씩 총 8세대가 살고 있다. 어머니와 두 식구 살다보니 지난번 살던 집은 쓸데없이 크고 낡아서 어머니와 오랜 고민 끝에 새로 내부 리모델링한 작은 빌라로 2년 전 이사왔다.

좋은 집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나, 우리 두 식구에게는 따뜻하게 다리 펴고 누울 수 있는 안락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이자 우리 가족 전 재산이다. 행여나 우리 세대에도 불이 옮겨 붙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어머니는 연신 발을 동동 구르셨다.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까지... 소방차 진입이 안 됐다

119 화재를 인지하고 소방차가 오기까지 10여분 남짓한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 119 화재를 인지하고 소방차가 오기까지 10여분 남짓한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불은 우리집 윗위층인 401호에서 났다. 바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급히 어머니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밖에 나가 어머니를 옆으로 모셔두고 사람들에게 119 신고 여부를 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학생 2명이 '5분 전에 신고했다'고 했다.

불이 난 세대의 아주머니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바깥에 나왔다. 그리고 계속 건물 안을 들락거리며 다른 세대 문을 두드려 '바깥으로 나오라'고 외쳤다. 그 집 아저씨는 일찌감치 약주를 한 잔 하고 아주머니와 각자 다른 방에서 일찍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집에 불어 나 있었고 술 취해 자고 있는 아저씨를 깨워 탈출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아저씨는 셔츠에 팬티 바람으로 바깥에서 비틀대고 계셨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온 동네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혹시나 불이 커져 도시가스 배관에 옮겨 붙어 폭발이라도 할까 봐 건물 1층 외벽에 붙은 도시가스 배관을 모두 잠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우리 건물이 있는 블록 바깥에 모셔다 놓았다. 그리곤 집에 있는 소화기가 생각나서 급히 집으로 뛰어 들어가 소화기를 가져나오고 집 안에 차단기를 내렸다.

잠시 소화기를 가지고 불이 난 4층으로 올라가 '불을 꺼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허나 불길이 이미 4층 주방 창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상태라 개인이 혼자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란 판단에 그냥 소방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골목 끝에 소방차가 보였다. 하지만 골목이 비좁고 항상 주차난에 시달리는 동네라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많았다. 소방차 진입을 할 수 없어 우리 건물 사람들은 주차된 차에 붙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빨리 차를 빼달라'고 말했다. 차를 이동시키는 시간에도 불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차에서 호스를 꺼내 우리 건물이 있는 곳까지 연결하기 시작했다.

호스를 연결하는 동안 먼저 2명의 소방대원들이 화재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갔다. 나는 들고 있던 소화기를 소방대원에게 건네주며 '쓰시라'고 말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소방차에서 이어진 호스는 이내 건물 현관으로 들어갔고 금방 불은 꺼져 불길을 뿜어내던 창문에서는 시꺼먼 연기만 피어 올랐다.

우리집까지 무슨 일이 생길까 어쩔 줄 몰라하던 어머니께 불이 꺼졌다고 전해 드리러 블록 밖에 있는 골목으로 나갔다. 불이 난 게 동네에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와 우리 건물 사람들이 당황해서 이리저리 뛰어 다닐 때도 '구경꾼'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불이 꺼진 걸 알려 드리러 어머니께 간 그 순간, 어머니 뒤에서 불 구경을 하고 있던 고등학생 커플이 '시시하게 꺼졌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하고 화가 났다.

이날 화재로 우리 건물 4층에 거주하는 분들은 하루아침에 오갈 곳을 잃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그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낄낄대는 10대들을 보며 물론 일부겠지만, 이 모습이 요즘 우리 아이들의 '인성'인가 싶어 참담했다.

갑작스러운 화재에 사람이 죽을까 싶어, 우리가 가진 모든 게 사라질까 싶어,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보다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 꺼지는 모습을 보며 '시시하다' 말하는 그 10대들의 모습이, 우리의 이런 사회가 내겐 더 무섭고 두려웠다.

불이 다 꺼지고 소방관들이 철수한 건물 복도에서는 4층에서부터 재가 섞인 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