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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는 정치인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치인들이 하는 발언과 행동에는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관심이 쏠리지만 정작 정치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투표방식이나 선거구획정처럼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절차들도 대충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어제(4일) 국회에서 있었던 코미디같은 비극도 그러하다.

4일 국회에선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가 열려 지난 3월 15일에 합의했던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참여해 두 번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00분의 1 이상의 유효 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정당등록을 취소한다"는 정당법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이에 정치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제정당 연석회의(노동당·녹색당·민중당·우리미래 4개 정당)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회의장 앞에서 항의하자 정치개혁소위원회는 개정안을 의결하지 않고 재논의하기로 했다. 재논의하는 이유는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반하는지 아닌지를 더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실토한 것 아닌가?

정당결성과 등록에 개입하는 나쁜 국가

4일 국회에서 제6차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앞두고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관계자 등이 소위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정당등록 취소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소수정당, 정당등록 취소조항은 위헌 4일 국회에서 제6차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앞두고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관계자 등이 소위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정당등록 취소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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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정당법 개정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62년 12월 31일에 제정된 정당법은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시민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명분은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정당의 결성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이런 악법이 제정될 때에도 30인 이상의 발기인만 있으면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릴 수 있었고, 지구당도 10인 이상의 발기인만 있으면 창당준비를 할 수 있었다. 법이 규정하는 최소요건은 지역선거구 총수의 1/3 이상의 지구당, 서울특별시와 부산시, 각 도 중에 5곳 이상에 지구당을 둘 것, 지구당의 법정당원수 50인 이상이었다. 정당의 등록취소는 법이 정한 지구당수와 지구당의 당원수를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만 가능했다.

그런데 1980년 11월 25일,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이 정당법을 더 개악시켜서 제38조에  ▲ 국회의원 총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하거나 고의로 참여하지 아니한 때  ▲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라는 조항을 추가했다. 즉 시민들이 어렵게 정당을 결성하고 난 뒤에도 정부가 등록을 쉽게 취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개악된 정당법에 따라 2012년 총선이 끝난 뒤인 4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개 정당에 대한 등록취소 공고를 냈고, 이에 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이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정당등록취소조항과 정당명칭사용금지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렸다.

정당법 자체가 악법이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헌법정신에 따르면 "정당 설립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나 침해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일정 수준의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군소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배제하기 위한 입법도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단 한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일정 수준의 득표를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정당 등록을 취소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런데도 이번 정치개혁소위원회는 '한 번'을 '두 번'으로, '100분의 2이상'을 '100분의 1이상'으로 바꾸는 수준에서 정당법 개정을 마무리하려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읽었다면 있을 수 없는 개정안이다. 소위원회의 이름이 부끄럽다.

국회가 진정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현재의 정당법은 폐지되거나 정당결성과 활동이 쉽도록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에 개정된 정당법은 지구당을 폐지하면서 시도당의 법정당원수를 1000인 이상을 두도록 해서 전국 5곳 이상 5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정당을 결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역시 정당결성을 가로막는 문제 조항이다.

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관계자들이 정당등록 취소조항을 폐지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소수정당 정당등록 취소조항은 위헌' 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관계자들이 정당등록 취소조항을 폐지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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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법만이 아니다. 현재의 공직선거법도 정치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녹색당은 2015년 5월과 12월에 공직선거법의 고액 기탁금 제도, 비례대표 후보의 선거운동을 제약하는 유세 금지 조항, 선거 관련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규제, 선거운동기간 중 호별 방문 금지 등이 정당활동을 위축시키고 소수정당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비례후보 고액기탁금 1500만원'에 대해서만 위헌판결을 내리고 나머지 조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비례후보 고액기탁금에 관해 올해 6월말까지 국회가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왠지 정치개혁소위원회는 또 '1500만원'을 '1200만원'이나 '1000만원'으로 개정하는 코미디를 연출할 것 같다. 그리고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리지 않은 조항에 대해서도 국회가 개정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올해 2월에도 시도지사 후보 기탁금으로 5000만원을 납부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56조 제1항 제4호와 선거방송토론회 참석제한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82조의2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녹색당이 제기한 상태이다. 시도지사 후보의 기탁금이 4000만원, 6000만원이 아닌 5000만원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법을 제정할 당시에 그렇게 제정됐을 뿐이다. 이렇게 높은 기탁금은 다양한 후보들이 선거에 나설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공직선거법이 대중적인 선거운동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선거방송토론회 참석기준을 국회의원 5인 이상의 정당, 전국 득표율 3% 이상 득표 정당, 최근 4년 이내 해당 지역구 선거 후보자로 10% 이상 득표한 자,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5% 이상인 후보자로 제한한 것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을 방해한다. 이런 잘못된 규칙들은 정치개혁의 발목을 계속 붙잡을 것이다.

진정 정치개혁을 바란다면 정치인에게 열광할 것만이 아니라 이런 잘못된 정치관련 법률들을 개정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응급처방만 계속되면 정치개혁이나 새로운 정치의 등장은 불가능하다.

정당의 수가 줄어든다고 정치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의 수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치든 생태계든 다양성이 보장될 때에만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다. 한국정치의 고인 물이 썩은 내를 뿜은지 오래이다. 물만 바꿀 게 아니라 물이 고이지 않도록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녹색당 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정당법 개정안, #정당등록취소, #공직선거법,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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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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