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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호기심에 역술인에게 생년월일시를 슬쩍 건네거나, 신문 속 '오늘의 운세'를 조용히 펼쳐본 적 있나요? 왜 우리는 '그런 거 안 믿어'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야' 하면서도 미래를 궁금해하는 걸까요? 사주에 울고 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왜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내 인생을 파헤쳐 보기로 결심했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내 인생을 파헤쳐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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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주 좀 봐주세요."

나는 가끔 지인들의 사주를 봐준다. 그렇다고 내가 사주 봐주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고수도 아니며, 예전에 배웠던 사주명리학 기초를 써먹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알음알음 알게 된 지인들은 사주를 봐달라며 종종 부탁한다.

내가 사주를 배우게 된 계기는 이렇다. 20대 시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전산 전공이 아닌 사람이 IT 회사에 입사를 했으니 어느 정도 고생은 예견된 것이었으나, 매일 꿈속에서조차 코딩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당시엔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상황이 겹쳐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기였다. 아침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비교가 불행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니던가?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이나 대학 동창들을 보니 하나같이 잘 사는 것 같았다.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느낌. 누군가는 잘 나가는 남편을 만나서 편하게 쇼핑이나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고, 같이 회사에 입사한 동기들은 또 하나같이 좋은 프로젝트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철학관이나 점쟁이를 찾아가곤 했다. '지금의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 '왜 나만 고생하는 것인지'라는 물음을 들고 꽤 여러 곳의 철학관을 드나들었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에게도 찾아갔었다. 상담을 받고 나면 뭔가 희망일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내 인생을 파헤쳐 보기로 결심했다. 자주 드나들던 철학관에서 강의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등록을 했다. 그렇게 사주명리학 기초과정을 배웠다.

사주를 기초만 배운 이유

나는 사주명리학 기초만 배웠다. 겨우 만세력으로 8글자를 뽑고, 대운을 뽑고, 기본적인 해석을 하는 게 전부다.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이후 중급과 고급과정을 개설했지만 수강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더 배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주 명리학 기초만 배워도 미래를 모두 알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기초과정을 배우고 나니 미래를 알고 싶어진 마음보다 지금 충실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너무 단순한 진실을 먼 길을 돌아 깨달았다고나 할까?

기초만 배운 덕에 다른 사람의 사주를 봐줄 때도 당장 올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보다는 상담하는 이의 기질과 그로 인한 선택, 주변 환경, 그래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신기한 것은 20대에 사주 명리학을 배웠는데, 40대에 들어서 그때 배운 내용이 더욱 새록새록 생각이 나고 이해가 된다는 점이다. 기초를 배운 뒤로 치열하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나이로 인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선택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책임도 개인의 몫이다. 몇 번 상담을 해보니 사람들은 상담을 요청해 올 때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온다. 다만 그 결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될까요?" "이직해도 될까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은 당장 회사를 떠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회사를 그만둘 사람은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말 없이 퇴사하거나 조용히 이직 준비를 한다.

사주가 미신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떠나 나는 사람들에게 사주 명리학을 배울 기회가 있으면 배워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사주 명리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음양오행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일이다. 요즘은 쉽게 설명한 책들도 많다. 배워보면 재미있다. 특히 서양철학과는 다르게 사람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가 있어 재미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주를 배우면서 이 말뜻에 깊이 공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앞뒤 꽉꽉 막혀서 모든 일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하지 못할 상황만 펼쳐질 때가 많다. 그럴 때 무리하게 에너지를 쓰기보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때를 기다리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때가 와도 기회를 잡지 못한다. 반대로 물이 들어왔는데도 노를 젓지 않는다면 인생은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항상 바닥만 있는 건 아니니까

과거의 행동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과거의 행동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 ⓒ erothermel,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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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정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왜 나만?'이라는 물음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인생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인생은 4계절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농사를 짓듯 준비할 때, 나아가야 할 때, 확산해야 할 때, 거두어야 할 때, 그리고 쉬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쉬면서 반성하고 다시 에너지를 축적해야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이때 대부분 인생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며 괴롭게 지내기도 하는데, 이 시기야말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나는 20대에 어려운 프로젝트를 몇 건 해내면서 일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전문가가 되었다. 매년 퇴사를 고민하던 그 어려운 시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인생의 스토리는 더 빈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고난을 버텨낸 자만이 거둘 시기에 결실을 보게 된다. 인생이란 오늘을 살아가는 내 삶의 기록이 매일 쌓여가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당연히 미래 예측도 가능해진다. 오늘의 나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기록의 결과이듯, 앞으로의 10년도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종종 지난 10년간의 과거 기록을 엑셀에 나열해본다. 처음 취업한 해, 결혼한 해, 아이를 낳은 해, 진급한 해 등...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계획을 간단히 또 나열해본다. 혹시 과거에 기록한 다이어리가 있다면 더 좋다. 당시 나의 마음을 기록하고, 나의 생활을 기록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면 좋다. 마흔이 넘어 다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당시 나에게 찾아온 어떤 행복한 사건들은 10년 주기로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충실히 내 인생을 살았다면 말이다.

그러니 현재 힘들다고 낙담하지 말자. 인생이 나에게 말하는 메시지를 듣고, 나의 어떤 면을 성장시킬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음에 찾아오는 고비는 어쩌면 고비가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다. 인생이 항상 바닥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사주, #명리학, #점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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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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