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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리가 제주4.3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에서 내레이션을 하고 있다.
 이효리가 제주4.3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에서 내레이션을 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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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 6년째를 맞은 '소길댁' 이효리가 공식 석상에서 제주4.3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3일 오전 10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이효리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추모시를 낭독했다.

이효리가 낭독한 시는 △이종형 시인의 '바람의 집' △이산하 시인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김수열 시인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등 3개.

바람의 집에는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4.3의 상징과 같은 '동백꽃'도 언급했다. 이효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이효리는 2013년 가수 이상순과 결혼하면서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도가 70주년을 맞은 4.3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그에게 추념식 내레이션을 제안하자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에선 추념식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으나, 이날 추념식 현장에서 울려 퍼진 이효리의 차분한 목소리는 4.3 유족과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이효리가 읽은 시.

바람의 집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산하>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김수열>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여기 심고 싶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에 서서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되어버린 상처마저 혀로 핥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바람을 부추기고
바람이 거칠면 바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고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어른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그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푸르고 푸른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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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4.3,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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