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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달걀.'

혹자는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 비유한다. 손에 쥐어진 달걀은 악력에 약하다. 조금만 움켜쥐어도 와작 부서진다. 놓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순간 달걀은 깨지고 만다. 힘을 뺀 채 자연스럽게 쥐고 있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내려놔야 하는 게 권력이라는 점을 강조한 교훈이다.

'깨기 어려운 달걀.'

일단 제 손에 들어오면 좀처럼 놓지 않으려는 권력의 아이러니를 빗댄 표현이다. 달걀을 쥔 손엔 핏줄이 불뚝 솟을 만큼 힘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꽉 옹동그린 채 잡히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손에서 달걀을 빼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달걀을 쥔 자가 쥔 것을 지켜내는 것도 매우 어렵다. 방어를 위해서는 손을 꼭 쥐어야 한다. 하지만 그 힘이 그대로 달걀에 전달되는 순간 달걀은 깨지고 말기 때문이다.

달걀을 깨트린 시민의 힘

'달걀'을 오래도록 쥐고 있으려고 앙탈을 부렸던 이들이 적지 않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내려놔야 할 때임에도 되레 달걀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제 손안에 무한정 놓여있게 될 줄 믿었던 그들. 하지만 그들의 '달걀'은 11년 9개월과 18년 5개월만에 각각 폭삭 깨지면서 참담한 종말로 이어졌다.

전두환도 '달걀' 욕심이 유별난 정치인이었다. 휘하처럼 부리던 친구의 손에 '달걀'을 맡겨놓고는 그 친구의 손을 제압함으로써 사실상 제 손에 있는 '달걀'인 양 그것을 즐기려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다 깨졌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정권에 맞섰던 야당도, 탁월한 정치인의 능력도, 조직화된 운동원들의 저항도 아니었다. 시민의 힘이 그 일을 해냈던 것이다. 시민의 힘이 수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라는 '달걀'은 깨기 어려운 괴물이 된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있다.

중앙 권력이 교체되도 부산 권력은 그대로였다.
▲ 지방선거 23년 내내 부산권력은 한쪽의 수중에 중앙 권력이 교체되도 부산 권력은 그대로였다.
ⓒ 육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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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은 '부산의 달걀'이 그렇다. 시장 선거가 시작된 1995년부터 지금까지 부산 지역의 권력은 한쪽의 손안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 중앙권력에 비해 감시와 관심이 적어서 그럴 거라고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비리와 불법의 '종합백화점'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지역 적폐의 원인이 '23년 된 달걀' 때문이라는 게 지역을 걱정하는 부산시민과 지역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23년 간 깨지지 않은 '달걀'

그동안 7명의 민선시장이 배출됐지만 모두 '원컬러'였다. 중앙권력이 교체되고 두 명의 진보성향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부산은 '보수'라는 하나의 컬러를 고집했다. 컬러를 바꾸기 위한 첫 시도는 1995년 노무현 전 의원에 의해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는 큰 표차의 패배였다.

7년 후.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다. 그가 중앙권력을 장악했던 5년 동안, '부산의 달걀'을 깨기 위한 시도가 두 차례 있었다.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 시절에도 부산의 색깔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토록 '부산의 달걀'은 매우 강고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산시장에 두 차례 도전했던 이가 있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깃발을 들고나온 그에게 부산시민들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시민의 힘을 실어줘도 될 만한 그릇인가에 대한 회의뿐 아니라, '부산의 달걀'이 깨진 이후 상황을 책임질 정도의 충분한 무엇을 갖춘 인물이라는 확신도 서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부산시민은 '달걀'이 깨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원컬러 허남식 후보'는 2/3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리며 '부산의 달걀'을 쉽게 지켜낼 수 있었다.

2014년의 부산, 조짐이 보였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춘 후보가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부산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 자당의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건 제1야당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이 사건을 '오래된 달걀'을 깨기 위한 진정성이라고 평가했다.

결과가 말해준다. 오 후보자의 득표율은 49.4%. 경쟁자인 서병수 후보와는 불과 1.2%P 격차였다. '부산의 달걀'이 깨지기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던 셈이다. 저 정도의 진정성이면 '달걀'이 깨진 이후를 야권 후보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판단한 시민들의 표가 오거돈 후보에게 몰렸던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23년간 깨지지 않은 '부산의 달걀'. 오거돈 후보는 이것을 깨려 할 테고, 자유한국당 후보로 확정된 서병수 현 시장은 이 '달걀'을 지켜내려 할 것이다. 깨려는 자와 지켜내려는 자 모두 그에 상당한 이유와 당위성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줘야 한다. 이는 피선거권자의 도리이기도 하다.

깨야 한다 vs. 지켜야 한다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 사진은 지난 2월 27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 사진은 지난 2월 27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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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부산시장. 사진은 지난해 10월 24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부산시 국정감사 당시 모습.
 서병수 부산시장. 사진은 지난해 10월 24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부산시 국정감사 당시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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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깨려는 오 후보가 중시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먼저 '23년 된 달걀'을 유권자의 입장에서 성찰하는 일이다. 왜 여태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는지, 그래서 형성된 관성의 실체는 어떠한지 곱씹어 살펴봐야 한다. 또 깨어짐은 파괴와 혼란이 아닌 희망과 기대라는 점을 명쾌하게 증명해낼 논리 개발도 필요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시민의 힘을 흡인할 동력을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2014년에 보여줬던 그런 진정성이 후보와 후보의 소속 당을 통해 시민들에게 투영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키려는 서 후보 역시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왜 깨지면 안 되는가, 이 부분을 설득할 이유와 명분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또 권력의 관성을 끊어낸 '촛불'이 시민들의 뇌리에 살아있다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 23년이란 세월이 만들어낸 관성에 의존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23년 된 달걀'을 깨느냐 지키느냐, 그 일전이 지금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태그:#오거돈, #부산시장, #지방선거, #부산 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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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분야 개인 블로그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남자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고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미래를 향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민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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