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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7시, 3월의 마지막 날 부산에서 팽목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전교조 부산지부 선생님, 화명 촛불에서 만난 분들, 해운대에서 세월호 촛불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 등이 있었다.   
사고가 아닌 참사, 세월호 학살이라 제대로 말할 수 있는데 4년의 시간이 지났다. 4년 전 학살의 증언하러 말없이 주검으로 올라와 가족들과 오열로 만났던 팽목항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팽목항까지 2시간30분 도보순례길 

30여 명의 영남(부산, 김해, 양산)사람과 호남의 세월호광주상주모임 사람들이 팽목항 기억의 순례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도 같이 걸었습니다.(고 윤경빈의 가족 등 네 사람)
 30여 명의 영남(부산, 김해, 양산)사람과 호남의 세월호광주상주모임 사람들이 팽목항 기억의 순례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도 같이 걸었습니다.(고 윤경빈의 가족 등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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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씨가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깃발을 앞세우고 출발했다. 바람이 세다. 깃발은 활짝 펼쳐져 사진 찍기에는 좋았다. 깃발을 든 사람은 힘들어 보였다.
 정인선씨가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깃발을 앞세우고 출발했다. 바람이 세다. 깃발은 활짝 펼쳐져 사진 찍기에는 좋았다. 깃발을 든 사람은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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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에 도착하여 조금 빠른 점심을 먹었다. 팽목항(진도항)까지 약 10km(9.84km) 떨어진 곳이었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의 정인선씨의 깃발을 쫓아 억의 기억의 순례길을 걸었다. 매화가 지고 벚꽃이 피고 있었다. 노란 민들레며 개나리, 봄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길을 걸었다.

낯 익은 사람이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유가족이란 느낌이 들었다. '단원고 2학년5반 경빈이 엄마'라고 하였다. 작년 12월 부산 화명촛불에 지성이 아빠와 같이 오셨던 분이었다.

"4월이 다가오면 유가족들은 다 신경이 예민해 진다"고 하였다. '황전원이 비공식적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한다고 했는데 유가족 입장에서는 황전원이 특조위 사퇴가 사과'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몇 번을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처음 이 길을 걸었던 이야기, 들에 피는 꽃들을 참 좋다는 말도 들었다. 30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봄꽃이 지천으로 핀 길을 걸었다.

'들꽃을 참 좋아한다'는 경빈이 엄마(전인숙씨)는 걷고 있는 사람과 길가의 꽃들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아마도 네 번째 봄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들꽃을 참 좋아한다'는 경빈이 엄마(전인숙씨)는 걷고 있는 사람과 길가의 꽃들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아마도 네 번째 봄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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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어느날 팽목항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호소하기 걸어 나왔던 그 길을 걷는다.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러 가겠다던 그 때의 절규와 경찰앞에 가로 막혀 오열했던 그 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앞 뒤로 받으며 팽목을 향해 걷고 있다.
 4년 전 어느날 팽목항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호소하기 걸어 나왔던 그 길을 걷는다.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러 가겠다던 그 때의 절규와 경찰앞에 가로 막혀 오열했던 그 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앞 뒤로 받으며 팽목을 향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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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기억의숲에서 팽목까지

백동 무궁화동산에 다달았다. 아니 세월호 기억의 숲에 도착했다. 내 걸음으로 한 시간 반이 걸렸다. 3시에 시작하는 '0416기억예술마당'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해에서 아빠 따라 왔다는 중1 수현이는 기억의 숲 위쪽에서 부터 한 그루 한 그루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출발하지는 외침이 여러번 있었지만 기억의 벽 앞에서, 기억의 숲 안에서, 고 김관홍 잠수사 동상 앞에서, 돌탑 앞에서, 시간이 멈춘 듯 아무말 없이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세월호 기억의 숲이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 경빈이 엄마와 아빠, 초기에 조성된 숲의 은행나무는 지지대를 묶었던 철사에 짓눌려 있다. 이 숲은 목포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304변 접힌 면으로 구성된 '기억의 벽' 앞에 시간이 멈춘 듯 하다.
 세월호 기억의 숲이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 경빈이 엄마와 아빠, 초기에 조성된 숲의 은행나무는 지지대를 묶었던 철사에 짓눌려 있다. 이 숲은 목포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304변 접힌 면으로 구성된 '기억의 벽' 앞에 시간이 멈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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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의 숲 은행나무에 붙여진 이름표
 세월호 기억의 숲 은행나무에 붙여진 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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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늦게 팽목항에 도착했다. "차 타면 금방'이라며 서너 번이나 경찰차에 태워주겠다는 경찰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2시 57분이다. 분향소를 들러 혼자 묵념을 하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었다. '0416기억예술마당'이 열리는 등대로 갔다. 일행들과 참가자(80여 명)들이 모여있었다.

0416기억예술마당 '시작할게 너무 많은 유가족 발언'부터

▲ 시작할게 너무 많은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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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번째 0416기억예술마당이 지난 3월31일 토요일 팽목항 등대앞에서 열렸다.
 열 두번째 0416기억예술마당이 지난 3월31일 토요일 팽목항 등대앞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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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추모공연인 '0416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토요일 첫 공연을 한 이후,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전국예술문화인들이 모여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이 열 두 번째 공연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고재성 선생님(전교조 진도 지회장)이 일을 도맡고 있다.

열 두 번째 기억예술마당 재능기부를 한 분들은 노래와 시낭송  약전낭독 그리고 살풀이 품으로 공연을 채었다. 권준희, 박성훈, 이미랑님이 노래를 부산에서 온 '삶,말,글' 모임의 이상석, 김옥이님 등이 시낭송을, 정인선(세월호광주시민모임)님이 세월호 희생자 소연양의 약전낭독을 이혜란님이 살풀이 춤으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였다.

재능기부로 채워지는 기억예술마당
 재능기부로 채워지는 기억예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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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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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를 위해 부산에서 온 김옥이님의 글과 말로 3월 토요일 7시~ 밤 11시 30분에 끝난 일정을 마무리 해 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제 스스로에게 '정말 껍데기로 살지는 말아야지'를 되놰었다. 108배 절을 하면서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어지고... 속절없이 세월만 흐를까 문득 문득 부끄럽웠다. 당시 아들에게 보냈던 글이다.

'사랑하는 아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날이 갈수록 아픔을 더하는 것 같구나 우리들 민탗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충격, 정말이지 이 정도까지일 줄은..... 억울하고 원통한 이들이 이토록 많은데 얼마나 철저하게 외면당하는지!

대한민국호를 생각하며 떠오느는 단어가 껍데기,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 등이란다.
'뭐 하는 척, 그저 보이기 위한 삶'은 노예의 삶이지 않니. 먼저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어야 누구에게 어디서고 당당한 주인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러운 것은 가난과 약함이 아니라 돈과 허위에 함몰된 거짓과 위선이지 않니!'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촛불로 바뀐 세상,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때 숨겨온 위정자의 무책임과 무능, 거짓, 위선, 눈속임의 민낯을 다시 확인했다. 또 다른 우리 사회의 껍데기들을 많이 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그대들 순정한 눈물만 남고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태그:#0416기억예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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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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