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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 시집 <한라산> 서시 중에서

4.3항쟁 7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시집 하나가 복간됐다. 87년 <녹두서평> 창간호에 처음 소개된 뒤 국가보안법으로 시인이 구속되고 문학을 정치권력으로 휘두른 필화사건의 주인공이 됐던 시집 <한라산>이다.

복간된 시집 '한라산' 발표된 지 31년이 됐다. 초판이 절판되고 복간된 시집 '한라산'
▲ 복간된 시집 '한라산' 발표된 지 31년이 됐다. 초판이 절판되고 복간된 시집 '한라산'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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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발표된 지 올해로 31주년이 된 <한라산>은 본명 이상백, 필명 이륭 시인에게 '이산하'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해준 시집이다. 2003년 6월 시학사에서 출판된 후 지금은 절판됐으며 이번에 노마드북스를 통해 복간됐다.

이번 복간은 이 시인의 시인학교 2기 제자 모임인 '목련구락부'에서 페이스북 펀딩을 통해 마련한 비용으로 제작됐다. 나는 이 시인의 제자로서 시집 <한라산> 복간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인은 시집 복간과 함께 본인 스스로 중단했던 '한라산 필화사건' 재심청구도 곧 추진할 계획이다.

어떤 내용이 담겼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간 이산하시인  시인은 몇 년 전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방문했다. 제주4.3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늘 말해왔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간 이산하시인 시인은 몇 년 전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방문했다. 제주4.3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늘 말해왔다.
ⓒ 이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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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라산>은 1987년 독재정권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삭제했거나 완화된 부분을 복원하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사실은 확인해 수정했다. 어색하고 생경한 대목들도 시인이 직접 손질해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이 시인은 '복간된 시집이라기보다는 복원된 시집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당시 원본 시를 보고 인쇄소에서 거부해 할 수 없이 민감한 부분들을 완화했다고 밝혔다. 시인이 그렇게 한 발 물러선 것은 세상에 4.3의 진실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지만, 결국 자기 검열을 거친 작품이었음을 복간본 후기를 통해 인정한 것이다.

시인의 말대로 복원된 시 '서시'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유럽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침탈하고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유린했는지 서술했으며 특히 미군정과 이승만정권, 그들의 권력을 등에 업은 서북청년단 등 반공단체의 잔인한 만행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4.3항쟁 기간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뿐 아니라 4.3항쟁이 일어나게 된 세계사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들이 시대적 흐름으로 서술돼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당시의 상황과 4.3항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7살이라는 나이에 청춘을 바치며 써내려간 4.3서사시로 인해 시인은 정치적 고통보다 30년 동안 늘 진실만 말해야 하는 멍에로 자신을 압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땅히 세상의 모든 악에 책임을 져야 하고 오래 슬퍼해야 한다"며 그것이 자신의 이마에 찍힌 천형이라고 밝혔다.

박종철 열사의 부산 혜광고 선배이기도 한 시인은 <한라산> '서시' 원고를 넘기며 3개월 전에 만났던 후배의 부음을 들었던 기억과 3년의 수배생활과 민청련 선전국 시절, 서사 시를 쓰게 된 배경 등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과 이산하 시인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소설 '순이삼촌'으로, 이산하 시인은 서사시 '한라산'으로 제주 4.3항쟁을 세상에 알렸다.
▲ 소설가 현기영 선생과 이산하 시인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소설 '순이삼촌'으로, 이산하 시인은 서사시 '한라산'으로 제주 4.3항쟁을 세상에 알렸다.
ⓒ 노마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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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제주도를 '가스실 없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라고 표현한 시인은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 안 쓴다면 역사의 방관자가 된다는 작가로서의 양심으로 서사 시를 쓰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라산>을 87년도 국면전환용 용공조작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시인을 '간첩의 지령으로 시를 쓴 빨갱이'로 몰았던 안기부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해 11월 11일 구속됐으나 증언해줄 작가와 변호해줄 변호사가 없어 좌절했던 상황, 당시 공안검사였던 황교안 전 총리로부터 '영원히 콩밥을 억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항소이유서 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시집 <한라산>은 4.3의 역사적 배경과 원인, 과정, 의미를 축약한 '서시'를 시작으로 맥아더 포고문에서 나타났듯이 정복자로 군림했던 미군정의 전횡을 담은 제1장 정복자, 4.3직전의 상황을 담은 제2장 꽃샘추위, 4.3의 발화를 담은 제3장 포문을 열다, 4.3의 참혹한 살육과정을 담은 제4장 불타는 섬 등과 저자 후기로 이어진다.

특히 4장에는 오라리방화사건과 5.1남한단독선거 거부투쟁 등 당시의 굵직한 사건들이 소개되고 제주도 빨치산의 활약과 토벌대의 잔혹한 학살 등이 사건의 시기에 따라 묘사돼 있다.

소설가 조정래는 추천사를 통해 "80년대 치열한 시대정신 속에서 태어난 장편 서사시 한라산은 잊어서는 안 될 작품"이라며 그 원본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침묵의 죄를 용서 받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복간프로젝트의 펀딩 리워드인 수제노트를 만든 이순호 글상걸상 대표는 "시 안의 자기를 죽여 끊임없이 역사를 깨우는 자여, 시인이여! 그 비수, 그 칼날 한 30년 품고 살았으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라"며 그간 한라산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시인에게 존경을 표했다.

한편 시집 <한라산> 복간을 기념해 오는 4월 6일에는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북콘서트 '노래로 읽는 한라산'이 열린다. 가수 김현성, 백창우, 꽃다지, 박경하와 지인인 황경민 작가와 남덕현 작가가 노래를 부르고 성우인 윤소라씨와 박훈 시인이 우정 출연해 시낭송을 한다.

고광헌 시인과 이문재 시인, 공지영 작가 등도 참석해 축하메시지를 전하고 당시 <녹두서평>의 편집장이었던 신형식씨와 재심청구 소송에 참여할 심재환 변호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노래로 읽는 한라산  시집 '한라산' 복간기념 콘서트 '노래로 읽는 한라산'이 오는 4월 6일 홍대입구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 지하 CY씨어터에서 저녁 7시부터 열린다.
▲ 노래로 읽는 한라산 시집 '한라산' 복간기념 콘서트 '노래로 읽는 한라산'이 오는 4월 6일 홍대입구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 지하 CY씨어터에서 저녁 7시부터 열린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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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과 비슷한 내용으로 각 언론사에도 보도자료 형식의 기사를 보냈습니다.



한라산 - 이산하 장편서사시

이산하 지음, 노마드북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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