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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가슴 설레는 영화를 봤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시작부터 관객을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탈리아 북부 작은 마을에 있는 별장에서 가족들과 여름을 보내던 열일곱 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앞에 스물넷의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나타난다. 올리버는 엘리오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의 연구를 돕기 위해 잠시 온 박사과정의 보조 연구원이다.

여자 친구가 있는 엘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올리버에게 향하는 것을 느낀다. 햇빛이 내리쬐던 어느 오후, 엘리오는 올리버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외출한다. 마을 한복판에서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마음을 고백을 하고 올리버는 며칠 망설임 끝에 이를 받아들인다. 엘리오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했다.

영화엔 초록의 식물들과 노란 햇빛, 탐스럽게 익은 과일 등 따뜻한 자연의 색들로 가득하다. 음악영화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귀를 간질이는 노래들이 팝과 클래식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흘러나온다. 모든 것이 밝고 환하다.

동성 간의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퀴어 영화에 흔히 등장해 온 차별과 폭력, 거짓말, 배신, 죽음 같은 것은 이 영화에 없다. 노골적인 섹스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나누는 사랑의 배경에는 여유와 예술적 낭만이 흘러넘친다.

게다가 엘리오의 부모는 이들의 사랑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본다. 신경 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두 주인공의 연기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되어 있고, 카메라는 이를 감각적으로 영상에 담았다. 덕분에 관객들은 엘리오와 올리오가 주고받는 사랑의 감정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다. 나 역시 낭만적인 기분에 완전히 도취되어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내 첫사랑을 생각했다.

왜 첫사랑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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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첫사랑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연애도 이미 여러 번 해본 마당에 딱히 첫사랑이라고 떠올릴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늘 의아했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어느 영화제에서 퀴어 영화들을 보는 동안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들의 연애담이 이해되는 한편 뭔가 불편하기도 했다. '어떤 불편함'인지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며칠 동안 중학교 때 반 친구가 내게 보냈던 편지가 내내 궁금했다. '그 편지를 내가 어디다 두었지?' 결국 며칠 후 엄마네 집 장롱 안에서 누가 볼 새라 꽁꽁 싸매 둔 편지 뭉치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건 중학교 때 동성 친구가 보낸 편지였다.

그 애와 나는 친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애가 내게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엽서를 보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어쩌다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쭉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떡볶이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고 있는지, 고등학생의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아주 강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편지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일 뿐이었으니까. 그 감정이 약해진 순간 편지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오랜만에 편지를 찬찬히 읽는 동안 나는 알 것 같았다. 왜 내게 첫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애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동성 간의 감정은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는 생각, 사춘기 시절엔 잠시 그럴 수 있다는 어른들의 가벼운 시선이 내 마음에도 그대로 복제되었던 모양이다.

세상에 '그런' 사랑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면, 나는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고, 그 애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 친구와 나눈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 밖으로 꺼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나에게 첫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성애자인 줄 알고 살아왔던 난 머리가 아팠다. '정말 사랑 맞아?' 의심도 했다. 그렇다고 여느 친구들에게 느꼈던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던 그 감정을 한 때 지나가는 치기어린 것으로 치부하긴 싫었다. 그렇다면 나는 양성애자일까?

어느 날 내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긴 생각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이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확실치 않지만, 슬프게도 나는 오랜 시간 '이성애 중심주의'에 강력하게 중독 되어왔고, 그로부터 빠져나오긴 쉽지 않을 거라고.

깨달음(?)을 얻은 지 십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도 했다. 결혼이 사랑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첫사랑과 같은 순간이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며 생각했다.

물론 이 판타지를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은 아주 낮겠지만, 이런 은밀한 상상만으로도 며칠 기분이 설렜다. 이 영화의 힘은 사랑의 감정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찬양하고 또 그 뒤의 씁쓸한 맛까지 모두 살려낸 데 있다. 영화를 본 뒤 떠오르는 낯선 생각이나 감정이 있다면 영화가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그 순간을 기쁘게 즐기면 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젊은 백인 남성들의 사랑이 영화를 통해 찬란하게 우리 앞에 나온 것처럼, 여성간의 사랑도, 노인이나 흑인 간의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래 전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었듯, 영화 속 엘리오와 올리오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환한 햇살 속에 모든 사랑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리니, 마음껏 사랑하라! 이 영화가 내게 준 메시지이다.


태그:#콜미바이유어네임, #동성애, #네이름으로나를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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