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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지금처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렴."

주변에 귀여운 아이라곤 조카밖에 없는, '조카 바보'인 나는 둘째 조카의 생일선물로 예쁜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원피스를 준비했다.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어릴 적 나는 레이스에 목숨을 걸었고 분홍색이라면 사족을 못 썼던 것 같다. 앨범을 들춰보면 어딘가 비슷비슷한 옷을 입은 나를 발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걸 보면.

둘째 조카의 선물을 고르며 첫째 조카의 선물도 같이 샀다. 딱 어울리겠다 싶은 남색의 야구 점퍼였는데... 선물을 받아본 조카가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나도 핑크 핑크~ 피이잉크!' 하며 엎드려 절이라도 하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방바닥을 구른다.

유독 핑크,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아이. 그러고 보니 '남자는 핑크지~'하며 분홍색 모자를 골랐던 조카의 모습이 떠오른다. 생애 처음 가져본 아이의 취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고모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다섯 살 남자 조카는 분홍색을 좋아하고, 세 살 여자 조카는 긴 머리에 늘씬한 바비 인형 대신 조립 로봇을 갖고 논다. 그즈음의 나는 '미미'와 '쥬쥬' 같은 여자 인형을 갖고 놀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사뭇 다르다.

촌스러운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고정관념이 고정관념인 줄 모르고 편견이 편견인 줄 모르고 자랐던 고모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그런 식의 사고를 주입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자아이의 방을 분홍색으로 도배하고, 남자아이의 방을 파란색으로 도배하는 보통의, 여느 어른들처럼.

'여자다움'과 '남자다움', 누가 정의한 걸까

그러고 보니 '남자는 핑크지~'하며 분홍색 모자를 골랐던 조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핑크지~'하며 분홍색 모자를 골랐던 조카의 모습이 떠오른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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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라면서 끊임없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대해 들을 것이다. 사실, '그게 뭔데요?'라고 물으면 여전히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애초에 질문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런 연유로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답을 구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 전부를 통틀어 나는 어떤 '구분' 속에서 나를 '부정'해 왔고 또 '긍정'해 왔을까?

누군가는 '왜 이렇게 유난이야', '뭐가 불만인데? 왜 이렇게 삐딱하게 굴어'라고 할지 모르겠고, '너도 페미니스트냐?'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당최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도 사실 영영 모르겠지만.
     
최근엔 이런 일도 있었다. 소개팅 상대가 첫 인사를 마치자마자, '되게 여성스러우시네요'라는 얘길 한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꼈을까? 몇 마디 인사가 오갔을 뿐인데. 말투가 그랬나? 어떤 몸짓이나 손짓이 그랬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 긴 머리가, 아니면 귀걸이와 반지가, 무릎까지 내려온 치마가, 혹은 높은 구두가 나를 여성스럽게 보이게 했을까? 그저 개인의 취향이었을 뿐이다. 물론, 칭찬인 거 같으니 고맙게 들었지만 여자에게 건네는 여성스럽다는 말은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남자가 바라는 여자, 여자가 바라는 남자. 어쩌면 여성스럽다는 말은 남자가 바라는 여자의 모습은 아닐까. 왠지 그 말 속엔 '종속'되기 쉬운 뉘앙스가 있다. 이성에게 '되게 남성스러우시네요'라든지 '남자답다'는 말을 꺼내 보지 않은 걸 보면, 적어도 내가 바라는 남자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닌가 보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눈물이 많은 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 답하니, '좋겠다'고 한다. 남자는 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왜 울면 안 되느냐? 울어도 된다'라고 하니 '그게 좀 그렇다'는 말을 한다. '그게'라는 말 속에, '좀'이라는 약간의 말 속에, '그렇다'는 말에... 도대체 이 세 음절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 남자라고 감정이 없을 리 없고, 울면 좀 어떻다고.

그런 얘기를 하니, 당신 앞에서 운 남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 되묻는다. '어? 그렇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 앞에서 운 남자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걸까, 애써 울음을 삼켰던 걸까, 아니면 보통의 많은 날 머쓱한 웃음이나 마른기침으로 대신했던 걸까. 그러고 보면 '남자다움'이란 게, 여러 남자를 속으로 울게 했던 건 아닐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그런 이중 잣대에 질려버리는 요즘. 남녀를 구분하는 고정관념에 정중하게 '안녕'을 고하고 싶다. 스스로를 억압하던 고약한 사고와 배고픈 사유에 뒤늦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태그:#남자다움, #여자다움,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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