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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째 나의 새해 계획은 한결 같다. 바로, 운동하기. '몇 해'라고 간단히 말했지만, 실은 이런 지 십 년도 훌쩍 넘었다. 강이 메워지고, 산이 파헤쳐질 수도 있는 그 긴 시간 동안 계획만 하고 끝났으니, 이거 참, 부끄럽다.

올해도 시간은 잘도 지나가고, 이제 새해 운운하기에도 민망한 4월이 되었다. 새해 소망을 실현은 못할지언정 시작은 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 아닌가. 마음이 급해온다.

특히 연초에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을 다녀온 이후 몸살을 앓았더니, 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에너지로 거리를 활보했건만, 다녀온 뒤 심신이 안녕치 못하여 몇 날 며칠을 앓아누운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넘쳐나는 체력은 속된 말로 '뽕 맞은' 상태였달까.

여행지에서의 힘이 아니라 여행지를 다녀온 뒤의 에너지가 진짜 체력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여행을 함께 한 일행은 재충전을 잘했다며 좋아라 하는데 나는 내 저질 체력을 원망하며, 다시금 운동할 것을 다짐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친구가 퍼스널 트레이닝의 효과가 너무도 좋다며 적극 추천했다. 말 그대로 1:1 수업이니 자기 몸에 딱 맞는 운동을 하게 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제 몸의 변화를 시시각각 체감할 수 있어 이만큼 재밌는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 저질 체력을 원망하며, 다시금 운동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내 저질 체력을 원망하며, 다시금 운동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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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간증과도 같은 자발적 홍보(?)에, 귀가 솔깃했다. 가격을 알아보니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거금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번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내가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만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집에서 가까운 트레이닝 센터를 찾아보고 방문했다.

트레이너 분과 간단한 상담을 했다. 체력을 테스트한다거나, 지병 혹은 기타 특이사항에 관한 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었고, 새로 리모델링했다는 샤워실에 대한 자화자찬과 금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불만은 전혀 없었다, 이것도 중요한 부분이니까.

트레이너 분이 뒤늦게 운동의 목적을 묻기에, 나는 아주 솔직하게 답했다.

"평생 운동이라곤 해보지 않아서 체력이 너무 약해요. 기초 체력을 좀 기르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그는 실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리곤 이어지는 한 마디.

"에이, 살도 빠지면 좋아하실 거잖아요. 아니에요?"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학적 관점이든, 인체공학적 관점이든, 그의 관점에서 내게 체중 감량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체형이 어떻든 여자들은 모두 체중 감량을 원한다고 넘겨짚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이든, 그래선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고객이 제 몸을 사랑하도록 돕겠다는 포부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각자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효과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분명 틀렸다. 그 덕분에, 나는 내 몸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봐야 했다. 부정적인 시선을 담아서.

인간의 몸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느꼈다면, 내가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타인의 몸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 아니, 백번 양보해 속으로 평가한다 한들, 그렇게도 당당히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한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은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타인의 몸을 변화시켜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몸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각 개인 스스로가 원하는 몸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그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온 사회가 마른 몸을 요구한다. 붐비는 지하철 역 앞에서는 여름이 되기 전, 지금이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절호의 기회라며 호들갑을 떠는 갖가지 운동 센터의 전단지를 배포하고, 살이 찐 코미디언은 살이 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각종 광고들은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홍보하기에 바쁘고, TV엔 마른 사람들만 가득하다. 이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우리의 인간됨은 뼈가 드러나는 정도에 비례하여 상승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모쪼록,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를 평가하고 깎아내리는 자격 없는 시선이 없어진다면, 외모 때문에 불행한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비단 체형만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숱이 적어도, 이가 고르지 못해도, 틱이 있다고 해도, 대체 뭐 어떻단 말인가. 타인을 평가하지 않을 때, 우리도 자유로워질 것이다(나 역시 반성한다).

소심한 나는, 그 트레이너분께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쯤 야무지게 쏴주고 싶었건만, 순발력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 대신, 꺼내기 직전까지 갔던 신용카드를 도로 집어넣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할 것이 확실한 이 세상 유일한 그것, '내 몸'을 긍정하고 싶다. 아쉬운 체력은, 아무래도 다른 운동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어찌됐든 올해에는 반드시 계획만으로 끝내진 않겠다고, 이 글을 쓴 김에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모두들 새해 계획을 한 번 점검해보며, 타인의 시선과 무관한,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원해 본다.


태그:#외모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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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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