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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루를 보내십니까?" 1년 전 퇴직한 후배가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물었다. 인사치레가 아니다. 수척해진 얼굴이다. '아직도 퇴직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지레 짐작했다. '새벽 5시께 눈이 떠지면, 엎드려 뻗혀 20개, 맨손체조 20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읽기 1시간, 또 TV보면서 신문 2개 훑어보고...' 새겨듣는 눈치는 아니다.

그는 최근 막내딸을 출가시켰다. 그동안 월급쟁이로 세 자녀를 모두 훌륭히 자립시킨 모범 봉급생활자였다. 몸이 축난 이유는 우울증이 아니었다. 돈 문제였다. 모아놓은 돈은 자녀들 자립시키느라 다 소진하고, 국민연금으로 견디다보니 스트레스 쌓이고 삶 균형이 무너졌다. 그래서 술도 끊고 모임도 빠지면서 돈 안 쓰고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돈 안 쓰면서 하루 24시간 보내는 법?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몇 달 몇 년 계속할 방법이 있을까. '10년 면벽'하는 스님처럼 독방에 틀어박혀 칩거한다면 모를까, 별 다른 생각이 안 난다.

'1주일에 이틀은 한문교실, 또 하루는 인문강좌듣기, 두어 번 모임참석' 이런 평범한 일상에도 돈이 든다. 친지들과 어울리고 모임에 나가고 취미활동 하다보면 돈이 나가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다른 사람은 어찌 지내나? 시간은 많고 돈벌이가 없는 친구 얘기를 유심히 들었다. 그는 하루 8시간씩 소설을 읽는다. '무얼 읽느냐?' 물었더니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이다. 겪어온 시대가 비슷해 공감이 많이 간단다. <태백산맥>은 진즉 읽었다. 다음엔 12권짜리 일본소설 <대망>을 다시 읽을 참이다. 다른 친구는 신문 4개를 꼼꼼히 읽는다. TV드라마를 몇 개씩 본다. 누군가는 성경을 만년필로 베껴 쓴다.

소설과 신문읽기, 책 베끼기, 드라마 보기... 한 나절이 순식간에 흐른다. 하루 종일 칩거도 가능하다. 그런 칩거를 몇 년씩 계속할 수 있다면 돈 안 쓰는 10년도 가능할 터이다. 개그말로 '건국대생(건강하게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건국대생'은 '하바드생(하는 일 없이 바삐 드나드는 사람)' 되기보다 훨씬 힘들다.

독신으로, TV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는 생활을 견딜 수 있는가? <퇴사하겠습니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52)는 50세 때,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아사히신문사를 자진 퇴사했다. '10년 준비'를 거친 결단이었다. '돈(물질)대신 시간(자유)'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돈과 욕망에 대달려 사는 현대인을 '튜브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중환자 같다'고 묘사했다. 독신으로, 냉장고 세탁기 TV도 안 쓰고, 하루 서너 시간씩 산길을 걸으며, 사누키 우동 값을 '기축통화'로 여기는 시골에서 자칭 '자유인'으로, 자유롭게 산다.

행복의 크기는 자유의 크기에 비례한다. 에미코는 극빈생활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월든> 저자 소로도 '자발적 빈곤'을 선택한 사람이다. 시골 콩코드에서 막노동으로 자유와 행복을 찾았다. 톨스토이(1828~1910)는 '육체노동이 자유와 행복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명상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권독했다.

"나는 목수나 요리사를 만나면 부끄럽다. / 그들은 내 도움이 없어도 / 며칠, 아니 몇 년씩 살 수 있다. ---(중략)--- // 두 손으로 노동할 때 / 우리는 세상을 공부하게 된다. / 채소밭을 가꾸면서 나는 생각한다. /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아 / 지금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까?"

'이뭣고' 외우며 면벽 10년을 하든, 전기 없는 생활을 하든, '육체노동'을 하든, 자유와 행복은 '튜브를 떼는' 결단 후에 찾아온다.


태그:#돈, #자유 , #행복, #시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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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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