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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12월, 내가 쓰는 글이 힘든 일상에 지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으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가입하여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나의 사소하고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진솔한 감동의 메시지가 되어 읽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 주기를 바랐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서, 모든 게 처음이라 엉성하지만 사랑하는 아기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했던 일들을 정리해서 육아일기 기사를 썼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 시점에도 교실 한 편에서는 아직도 작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내가 직접 겪고, 전해들은 따뜻한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했다.

따뜻한 응원과 칭찬, 시민기자를 글 쓰게 하는 원동력

다행스럽게도, 내가 쓰는 육아일기와 교단일기에 공감을 해주는 독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 글들이 오마이뉴스에 게재되고,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등장했을 때는 정말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네이버의 '맘·키즈 판'에 사랑하는 아들 사진이 메인으로 등장하고, '오아시스 뉴스' 코너에 나의 육아일기와 교단이야기가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주었다.

네이버 메인에 등장한 육아빠의 기사
 네이버 메인에 등장한 육아빠의 기사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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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메시지는 정말 다양했다. 나의 육아일기를 보고, '아내가 좋은 남편을 만난 것 같다', '아기는 아빠의 사랑을 받아서 좋겠다'와 같은 흐뭇한 댓글을 남겨주는 독자도 있었고, 나의 교단이야기를 본 어떤 독자는 오마이뉴스에 등록된 내 이메일에 '지금처럼 좋은 교사로 교단에 남아 새싹들을 바른 길로 안내해달라'는 가슴 뭉클한 당부를 편지로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따뜻한 응원과 칭찬은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초보아빠 육아일기' 연재 보러가기

나를 슬프게 하는 댓글들

그런데 가끔씩 열심히 글을 쓰다가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쓴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등록되면 포털사이트에도 기사가 소개되어 게재되었는데, 포털사이트의 기사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보니 기사를 폄하하는 댓글들도 종종 달리는 것이다.

이런 댓글이 달리는 기사의 종류는 대부분 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교육 이야기가 아닌 육아일기 기사였다. 내가 쓴 육아일기 기사의 목적은 아기와 단둘이 있는 걸 두려워하는 초보 아빠들에게 아기 보기 꿀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육아빠의 아기 보기 꿀팁'이 큰 주제이다.

물론, 나쁜 댓글들은 본인이 썼다가 자진삭제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을 이용해서 큰 의미 없이 쓴 글이라고 치부하고 개의치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약간 자극적인 댓글들을 보면서 '왜 이런 말을 하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네?'하면서 소심하게 댓글에 비공감을 누르면서 속이 상하는 날도 있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댓글들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남자가 창피하게...'
'남자가 애 잘 보는 거 자랑 아님'

이 글에는 여러 가지 편견이 담겨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보는 일은 남자가 아닌 여자들만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시각이다. 도대체 왜? 점점 무거워지는 아기를 들고 씻기고 놀아주는 건 사실 아빠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기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보는 것이지, 둘 중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책임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편견은 남자다움에 대한 시각이다. '남자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위의 댓글처럼 아기를 잘 돌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고 육아를 한다는 걸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남자에게 창피한 일일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육아를 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쉽다. 아무리 나를 있게 해준 아빠라지만 나를 돌보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아빠가 좋은 아기가 있을까?

만약에 내 딸이 이런 성차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고자 허락을 구한다면 믿고 내 가족을 맡길 수 있을까?  아마, 독박육아를 하며 힘들어 하는 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일하고 온 남편이 집에서 애만 보던 엄마를 위해 왜 희생하지?',
'나도 집에서 애나 보고 싶다.'

이런 댓글은 어떤가? 육아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폄하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일은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비해 매우 쉽고 편한 일이며, 가치가 적은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일을 마치고 온 아빠가 저녁에 아기를 보는 것은 집에서 편하게 아기만 보던 엄마를 위해 희생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라는 '고급 노동'은 이 댓글을 쓴 사람의 생각만큼 쉽고 편하기만 한 일이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지치면 가볍게 차를 한 잔 하며 쉴 수 있지만, 아기와 함께 있으면 차는커녕 생존을 위한 밥을 먹을 시간도 갖기 힘들고 화장실도 편히 못간다. 또 회사에서는 동료 직원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위로를 할 수 있지만, 아기를 보다 우울해져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아기와 함께 우는 것뿐이다.

육아는 어떤 경제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가족'과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담겨 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과 딸로서 보살핌을 받고 자라왔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빠가 아기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일

내 아내가 아기를 낳고,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단언컨대 '맘충'이다. 이 말은 엄마를 뜻하는 '맘'에 벌레를 의미하는 '충(蟲)'을 붙여 만든 은어로서 엄마들이 아기랑 함께 외출할 때 아기를 빌미로 민폐를 끼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때문에 엄마들은 참 억울하다. 사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길 때가 있고, 그 민폐란 것이 상대적이어서 오해를 부르는 경우도 생긴다.

그 유명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맘충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이다. 아기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신 것 뿐인데도 '맘충'이 되었을 때 억울하지 않은 엄마가 있을까?

'집에서 아기 보는 아빠를 부르는 말은 빠충'이라는 댓글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빠충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내가 맘충이란 말이 왜 듣기 싫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그런데 빠충이기 때문에 집에서 아기를 보는 것이 아니다. 아빠가 아기를 돌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부모'이지 '모'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아빠가 아기를 보는 건 당연하다
 아빠가 아기를 보는 건 당연하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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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한 남성이 회사에서 암묵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화가 나는 기사, 육아휴직을 한 남성에게 '사회생활 포기했냐?'라고 묻는다는 속 쓰리는 기사를 보면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육아문화는 갈 길이 먼 것 같다.

나는 다짐한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서 아기 보는 아빠의 행복을 담은 '육아빠'기사를 많이 써서 한국 사회의 뿌리 박혀 있는 잘못된 육아문화를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키겠다고.


태그:#시민기자, #육아빠, #댓글, #육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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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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