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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행동은 사회운동의 가장 전통적인 방식 중 하나입니다. 직접행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조직하기 유용하고, 문제점이나 이슈를 널리 알리는데 효과적이며, 창의적인 직접행동은 재미있고 모두에게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직접행동은 무수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직접행동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가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다양한 사례 연구 및 경험나누기, 연습활동들을 통해 직접행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성공적인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트레이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직접행동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고 싶은 분들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를 통해서 신청해주세요.(직접행동 트레이닝 신청) -기자말

야구의 매력은 무수한 패배와 실패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도 4번 안타를 치는 동안 최소 6번 이상 아웃을 당한다. 2018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는 지난해 꼴찌팀 KT위즈가 지난 해 우승팀 기아타이거즈를 제압했다. 야구에선 제 아무리 1위팀이라고 해도 한 시즌에 40번 넘게 패배한다. 유명한 야구 만화 <H2>의 주인공 히로의 말처럼 우리는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 즉 실패와 실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야구만이 아니라 대체로 우리 사는 인생 자체가 무수한 실패와 실수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는 그 실패와 실수를 자양분 삼아 발전해간다. 구구절절하게 실수와 실패에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지금부터 내게 자양분이 된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2002년 9월 13일 나는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바로 전날에도 나는 영등포 경찰서에 유치장에 갔다. 단 유치장 면회실 플라스틱 가림막 밖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연행된 우리 학교 친구들을 면회하고 있었다. 9월 13일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은 하루 전과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이번에는 유치장에 갇힌 나를 친구들이 면회왔고 나는 가림막 안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나로서는 이불킥하면서도 얼굴을 가릴 이불 끝자락을 부여잡을 부끄러운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사회운동의 주요한 방식인 직접행동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반대로 어떤 직접행동은 왜 필패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나 하나 부끄러운 것쯤이야, 썩 괜찮은 일이다.

지난 2002년 9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약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갑작스럽게 집무실을 점거당한 장영달 국방위원장이 한 학생에게 "앉아서 이야기좀 하자"고 제의, 약 40분간 '즉석 면담'이 이루어졌다.
▲ '양심적 병억거부권 인정' 촉구 기습시위 지난 2002년 9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약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갑작스럽게 집무실을 점거당한 장영달 국방위원장이 한 학생에게 "앉아서 이야기좀 하자"고 제의, 약 40분간 '즉석 면담'이 이루어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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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국회의사당 국방위원장실

그날 아침 나는 5~6명(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과 함께 기습적으로 국회 국방위원장실을 점거했다. 그 시간 국회 경위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국회 2층 로비에서도 기습시위가 펼쳤다. 나는 미리 약속한 대로 국방위원장실 바깥쪽 창문으로 달려가 준비해 간 현수막을 내렸다. 국방위원장실에는 국회의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한 명과 보좌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우리의 난입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우리에게 작전을 설명한 전학협 집행부는 국방위원장실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처음부터 우리의 예상과 어긋나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윽고 국회 경위들이 들이닥쳐 우리는 한 명씩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끌려나가고 있는데, 국회의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불러세웠다. 내 옆에는 오마이뉴스에서 취재 나온 카메라가 우리의 그 상황을 찍고 있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지만 국회에 상임위라는 게 있고 의원마다 상임위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당시 국방위원장이 장영달 의원이었는데, 나는 그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혀 몰랐다. 전학협 중앙 집행부도 나에게 국방위원장이 누군지, 장영달이 어떤 정치인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몰랐을지도. 장영달 의원은 내게 정당한 절차에 따라 면담 신청을 하고 와야지 이렇게 난입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고, 나는 면담 신청해도 어차피 안 만나줄 것 아니냐고 따졌다.

장영달 의원은 자기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했고, 나는 정치인들은 다들 말로만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나는 당신들 못 믿는다고 역정을 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장영달은 당시 지역구 보수 기독교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아마 몇 마디 대화만으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국회까지 와서 병역거부권 인정하라고 시위하면서 대체복무 법안에 대해서 쥐뿔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장면 2] 영등포 경찰서

국회에서 가장 가까운 영등포 경찰서로 연행이 됐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대로 조사에 임했다. 전학협 집행부에서 우리한테 일러준 대답 컨셉은 이랬다.

① 우리는 원래 모르는 사이고 오늘 처음 만났다.

② 우리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고 그냥 착실히 학교 다니는 학생이다.

③ 평화와 병역거부에 관심이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평화를 위한 캠페인이 있다는 홍보를 보고 왔다.

④ 어느 여성분이 우리한테 계획을 설명해줬다. 방송인 김미화 씨를 연상하며 그 여성의 생김새를 묘사한다.


나는 당시 문과대 학생회장이었는데,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알려준 컨셉에 따라 조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서 문 쪽이 시끄럽더니 전철연 조끼를 입은 일군의 무리가 내가 조사 받고 있던 사무실로 들어왔다. 상도동 철대위 철거민들이었다. 우리 조직이 일상적으로 연대하는 곳이었는데, 내가 연행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경찰서에 찾아와 준 것이다.

"어이 용석이 경찰들 조직화 하려고 여기 와 있어?"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며 때로는 곤란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철거민들의 허세 넘치는 유머에 내 얼굴을 순간 낭패라는 듯 일그러졌고 경찰은 입가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철거민들이 돌아간 뒤 경찰은 의미 심장한 웃음을 띄며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무서운 분들이랑 친하네요."

나는 당황했지만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무 말이나 내 뱉었다.

"학교에서 근처 지역 봉사활동 가서 만났던 분들인데… 여기 어떻게 오셨지… "

봉사활동이라니, 당시 나는 꽤나 교조적으로 혁명운동을 생각했던 탓에 봉사니 기부니 이런 걸 굉장히 경멸했는데 내가 내 입으로 봉사를 이야기했다. 그러고 조금 뒤, <오마이뉴스> 기사 출력된 걸 보면서 경찰이 나한테 물었다.

"학생회장이에요?'

아뿔사… 지금껏 운동권 아닌 척을 잘해왔는데 이젠 숨길 수 없게 된 지경에서도 나는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 쓰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네 뭐 학교에서 체육대회도 하고, 교수님들하고 회식도 하고… 뭐 그런 일들 하는 거예요. 별 거 아니에요."

그때의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기 위해, 내 '양심'을 속이는 말을 늘어놨던 순간의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웠고 경찰들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난 2002년 9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약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다 끌려나오고 있다.
▲ "대체복무제 개선하라" 지난 2002년 9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약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다 끌려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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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위원장실 점거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까닭

그 당시에도 국방위원장실 점거가 실패한 직접행동이었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유치장에 수감된 내내 편하지 않았다. 양심을 속인 거짓말, 그것은 활동가에게 커다란 자괴감을 심어주는 독이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운동이 누군가를 설득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직접행동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두 번째 까닭은, 한참 뒤에 깨닫게 되었다. 신문에 나고(울 엄마는 당신 아들이 처음 신문에 사진까지 나온 그 신문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까지 탔으니([오마이뉴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제도개선 하라" 대학생, 국회 국방위원장실 점거 시도) 우리는 나름 성과가 있다고 자평했더랬다.

세력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성공한 직접행동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병역거부 운동 차원에서 보자면 국방위원장실 점거가 과연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밑도 끝도 없이 국방위원장실에 들이닥쳐 잘 알지도 못한 채 억지 부리며 논쟁하던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과연 내 주장에 설득되었을까? 혹은 병역거부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까?

아마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이런 경험 한두 번쯤은 다들 있을 거다. 나에게,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니까. 대신 실패를 자양분 삼아 다음 번에는 더 나아지면 되는 거니까.

다시 야구로 비유를 들자면 삼진을 당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삼진을 당하는 건 문제다. 실패한 직접행동을 곱씹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다음 글에서는 나의 실패를 거울삼아, 직접행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용석씨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age_id=1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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