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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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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에 토지공개념 조항이 있다. 개헌안 제128조 제2항에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개인소유권은 인정하되 공익적 필요에 따라 토지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토지공개념 개헌안이 사회주의적?

토지공개념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법제에 도입된 제도다. 귀에 익숙한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제·개발이익환수제 등이 모두 이 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헌안이 통과하면, 이 같은 법률상의 토지공개념 원칙이 헌법상의 토지공개념 원칙으로 승화될 뿐이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이 개헌안에 들어간 것을 두고 사회주의적 조치라고 비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위의 택지소유상한제 등이 제정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가 아닌 노태우 정권 때다. 이 제도들은 보수정권 시절인 1989년 6월 16일 국회를 통과했다.

토지공개념이 입법적으로 정비된 것은 노태우 정권 때이지만, 국가가 경제적 목적으로 이 제도를 본격 활용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국토연구원 정희남 연구원이 2008년 10월호 <국토>에 기고한 논문 '농지개혁에서 토지공개념까지'는 박정희 정권의 토지공개념 정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을 제정하였다. ······(같은 달에) 토지수용법이 제정되었다. ······ 토지투기 억제를 위하여 1967년 11월 '부동산투기억제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1972년 10월의 유신헌법에서 최초로 국토계획의 필요성을 명시하였고, 12월에 국토이용관리법을 제정하여 ······ 1975년 12월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였다."


이 외에도 1974년 5월에는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처분하도록 하는 조치가 실시됐고, 1978년 8월에는 토지거래 허가제 및 신고제 등을 포함한 투기억제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 때부터 축적된 토지공개념 제도가 노태우 정권 때의 입법적 정비를 거쳐 이번 개헌안에서 헌법상 원칙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개헌안이 통과되면, 보다 강력한 토지공개념 정책이 실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회 입법이나 헌법재판에 의해 이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토지공개념에 관한 한, 한국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토지공개념이 기반을 잡았다. 영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유지에 대한 공공의 개입이 이념적으로 정당화됐다.

"영국은 일찍부터 '토지소유권은 왕에게, 개발권은 사회에, 사용권은 개인에'라는 사상이 정립되어 있었다. 특히 토지정책에 있어서 개발이익(개발로 인한 땅값 상승분) 환수를 중심으로 한 이론적 토대를 만든 존 로크는 '토지는 자연법적 소산'이라고 주장하고, 리카도나 마샬, 존 스튜어트 밀 등은 지대 이론에서 '개발이익은 환수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정권섭, '토지공개념의 비교법적 고찰', <토지법학> 제1권 제1호.


토지소유자의 토지개발권을 부정하는 이 같은 사상에 따라, 영국에서는 개발이익 전액을 국가가 징수한 시절도 있었다. 1947년 도시농촌계획법 제정으로, 개발이익 100%를 개발부담금으로 징수했다. 한때 이런 일이 있었을 정도로, 자본주의 선진국 영국은 오래 전부터 토지공개념을 실천했다.

과거에 영국과 더불어 자본주의 확산에 앞장섰던 프랑스에서도 오래 전에 토지공개념이 인정됐다. 위 논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래 인용문에서 '밀도'는 토지면적에서 건축물이나 시설물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1975년 프랑스의 신토지정책법에 의하면, 토지소유권과 건축권을 분리시키는 법리 하에 법정밀도 상한을 초과하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무상으로 공유화'하도록 하고, 법정밀도 상한을 초과하여 건축하고자 하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얻어야 할 뿐 아니라 법정밀도 상한의 초과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토지공개념이 1919년 헌법에 규정됐다. 바이마르헌법으로도 불리며 자본주의세계 헌법의 모범으로 지칭되는 이 헌법의 제153조 제1항은 "소유권의 행사는 동시에 공공복리에 봉사해야 한다"라고 했고, 제155조 제3항은 "토지에 대한 노동 또는 자본의 투하 없이 발생하는 지가의 상승분은 전체를 위해 이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규정했다. 토지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소유자가 취득하지 못하도록 헌법 조문에 명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진영에서 발달했다. 그것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그랬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토지공개념 조항은 사회주의를 따라가는 조항이 아니라 선진자본주의를 따라가는 조항이다.

토지공개념이 자본주의 건전화를 위한 원칙이라는 점은, 노태우 정권이 토지공개념 확산에 열의를 보인 이유와도 관련된다. 노 정권은 1987년 6월항쟁 이듬해에 출범했다. 이 정권은 직선제 개헌 직후의 대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여러 가지로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6월항쟁의 열기가 가라앉자마자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되고, 1988년 4월의 제13대 총선 참배로 여소야대 국면까지 등장했다. 예전 같은 강압 통치가 힘들어진 데에다가 미국이 한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면서까지 보수정권을 지원할 의사가 없다는 게 명확해진 상태에서, 보수정권이 의회에서마저 다수당의 지위를 상실한 것이다. 근 30년째 군대와 총칼을 앞세워 국민과 야당을 제압한 보수정권 입장에서는, 국회에서 다수파 야당을 말로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이만저만 낯설고 두려운 게 아니었다.

 1987년을 전후한 한국의 정치 위기와 노태우·전두환 정권을 다룬 <타임> 기사.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1987년을 전후한 한국의 정치 위기와 노태우·전두환 정권을 다룬 <타임> 기사.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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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6월항쟁을 계기로 보수정권이 약해지고 국민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추가적으로 자극할 만한 현상이 경제 분야에서 발생했다.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한층 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86년의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과 서울 아시안게임으로 무역수지 흑자가 생긴 데 이어, 1988년을 전후해서는 서울 올림픽 때문에 시중 통화량이 증가했다. 이는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줬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선심성 개발공약이 터진 지역들에서 땅값이 대폭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의 힘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국민을 자극하는 부동산 투기가 극심해지자, 노태우 정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놓은 해법 중 하나가 바로 토지공개념의 제도적 정비다. 노 정권이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토지공개념을 밀어붙인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런 우려를 마음속으로뿐만 아니라 입 밖으로도 표출했다. 당시의 신문기사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보도의 발췌.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보도의 발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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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은 토지공개념이 혁명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 했다. 토지문제를 방치하면 혁명이 폭발할 수 있다고 염려한 결과다. 6월항쟁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상황에서 토지문제가 혁명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을 억누르면서 토지공개념을 밀어붙였다. 적당한 수준으로라도 개혁을 해서 민중의 분노를 눌러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에서, 1989년 6월 16일 토지공개념 제도들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했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일들이다.

혁명의 발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은 6월항쟁 직후의 한국보다 훨씬 '위험'하다. 혁명을 꿈꾸는 쪽에서는 '훨씬 희망적이다'라고 바꿔 표현하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체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양극화는 1987년보다 지금이 훨씬 심각하다. 보수세력은 지금이 훨씬 약하다. 군부에 대한 보수세력의 입김도 약해졌다. 보수세력을 지탱해주던 미국과 미군이 한국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과 여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거기다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여론 전파력과 장악력은 이전 어느 때보다 훨씬 높다. 2017년에는 국민들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것도 주말에 축제 참가하는 듯이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보수정권을 몰아냈다. 무혈로 전복할 수 있을 정도로 보수세력이 현저히 약해졌다는 징표다. 이것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대한민국 체제가 국민의 힘에 의해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넣고자 한다. 이것은 한국을 혁명의 열기로 밀어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혁명의 열기로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존 체제를 좀더 고쳐 쓰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조치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토지공개념의 헌법 편입을 막고 국민의 불만을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혁명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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