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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1월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아산 배방면 민간인학살사건
 1955년 1월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아산 배방면 민간인학살사건
ⓒ 경향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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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에 출장 갔다 돌아온 김 검사에 의하면, 경찰서 지서주임이 괴뢰정부(인민군)에 부역했다는 구실 밑에 부역자 아닌 양민 120여 명을 학살했다. 또 부역자 또한 개인적으로 사살하여 전후 3개월(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에 걸쳐 250명을 학살한 것이 판명되었다. 이 밖에도 정부보유미 450가마를 횡령하였다. 두 살 난 영아에서 노인까지 맹목적으로 학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남 아산 배방면에서 한국 전쟁 시기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경향신문>(1955년 1월 15일 자)의 기사입니다. 죄 없는 민간인을 두 살 난 영아에서 노인까지 맹목적으로 학살한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학살을 자행한 당시 경찰관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안경호 4.9평화재단 사무국장
 안경호 4.9평화재단 사무국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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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시작된 유해발굴을 통해 당시 이승만 정부와 경찰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살해한 증거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도, 경찰도,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우익단체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은 지난 달 22일 시작한 배방읍 중리3리 뒷산 폐금광에 대한 유해발굴 작업을 27일만인 지난 25일 마무리했습니다. 발굴된 유해는 약 150구에 이릅니다. 조사단은 감식과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는 상반기 중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조사단의 발굴팀 일원으로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안경호 4.9 평화재단 사무국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유해 발굴 전 과정에 대한 소회와 관련 사진을 골라 싣습니다. 

[발굴 첫날/ 2월 22일]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발굴 첫날,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발굴 첫날,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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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눈 쌓인 설화산이 피로 얼룩졌다.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아기, 힘없는 부녀자와 노인 일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시신을 수습할 식솔도, 제사를 지내줄 가족도, 모두 같은 날 죽었다. 해가 뜨면 이분들께 깨끗한 술을 올리고 밝은 곳으로 모실 것이다.

이제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무고한 죽음이기에 임종이 더 필요했을 그분들. 그 신원을 찾아 기억하자.

한 삽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흙바람 부는 이곳은 그래도 살만합니다.

[2일째/ 2월 23일]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

음봉면, 배방면, 온양읍에서 끌려온 사람들.

방앗간에 갇힌 채 며칠을 굶고 산발이 되어, 짚단 한 지게 고쳐 매고 총부리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밟는다. 이윽고 사람 키 높이 폐광에 다다라 산골짝을 울리는 요란한 총소리.

아기 업은 애미, 지게꾼 애비,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솔가지 부러지듯 무릎들이 꺾인다.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 지고 온 짚단에 묻히고 신음마저 화염에 가려진다. 동무들과 뛰놀던 뒷산, 올려다 보는 것도 두렵다. 머리 커서 가 본 뒷산 발걸음을 떼일 수 없다.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

[3일째/ 2월 24일] 나야 알 수 없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총부리들이 장전하고 차마 고개를 숙이라 할 때, 입 근육이 달라붙고 침도 마른 때
피부와 혈관 근육도 육탈 과정을 거치며 더 과묵해진 걸까.

마사토와 진흙에 겨우 엉켜, 머리와 다리 구분 없이 함부로 구겨질 줄

나야 알 수 없지
나야 알 수 없지


 발굴 5일 째.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발굴 5일 째.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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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2월 26일] 구슬과 탄피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아이의 또 다른 손엔 탄피가 쥐어졌다.

[6일째 / 2월 27일] 총부리들은 악마였다

2살 아이가 엄마 등에 업힌 채 67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7살 아이가 파란 구슬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들었다.

20대 새댁은 머리에 탄두가 날아와 은비녀가 떨어지고 30대 가장의 머리는 나무뿌리와 흙이 채워져 있다. 어금니가 닳고, 닳은 노인의 주변에는 탄피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삼족을 멸했다. 씨를 말렸다.

시신을 수습할 가족들 모두 몰살시키고 죽지 않은 시신에 불을 질렀다. 뼈마디에 불탄 섬유가 지문처럼 달라붙어 있다.

아이들의 유해가 나올 때마다 발굴이 중단된다. 감정 수습도 하기 전에 아이들의 아우성이 골짜기를 메운다. 총부리들은 진정 악마였다.


 발굴 11일 째.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 들.
 발굴 11일 째.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 들.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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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째/ 3월 6일] 두 살 아기

어지럽게 널려 있는 뼈들 사이로 아이 장난감, 푸른 구슬, 은비녀.

2살 아기가 마치 엄마 등에 업힌 듯 여성의 유해와 함께 드러났다. 엄마 등에서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아기.

아기의 체온과 함께 식어갔을 엄마. 총으로 근접사 시켜도 숨통이 남아 있던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들. 과연 그들의 몸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가.

[12일째/ 37] 어린 뼈 여럿 수습하다

불에 그을리고 습기에 녹아나고 지층에 눌린 어린 뼈를 여럿 수습했다.
화염 속에 살아남은 사람은 말이 없다.

[13일째/ 3월 8일] 쌍가락지

 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손가락 은반지
 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손가락 은반지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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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왼손 약손가락 은반지.
그이와의 언약은 어디로 갔을까


 발굴 14일 째. 머리맡에 놓인 약병 두 개
 발굴 14일 째. 머리맡에 놓인 약병 두 개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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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 18일 째. 엄마의 왼발 신발에 담긴 발뼈와 아이의 고무신(오른 쪽)
 발굴 18일 째. 엄마의 왼발 신발에 담긴 발뼈와 아이의 고무신(오른 쪽)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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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째/ 3월 9일] 두 개의 약병

지표면 아래로 지층을 이룬 유해 더미. B1 구역 309-9로 명명된 이 분의 머리맡에 두 개의 약병이 놓여있다.

어떤 지병이 있었을까. 끝내 그는 죽임이라는 불치의 병을 안고 임종도 잊고 말았다. 돌아온 약병처럼 그의 삶도 소환해 보고 싶다.

[18일째/ 3월 14일] 엄마의 왼발-아이의 오른 발

거친 시절 이들 모자는 어디를 가고 있을까
엄마의 왼발, 아이의 오른발. 엄마의 왼쪽 신발에 고스란히 남겨진 발뼈

그 곁을 떠나지 않은 아이의 오른쪽 신발. 단 하루만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느 봄날 못다 걸은 황톳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흙바람 속 아련한 모자의 뒷모습 보았을 텐데.

 발굴 19일 째. 60촉 백열전구
 발굴 19일 째. 60촉 백열전구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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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러운 봄
 서러운 봄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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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째 /3월 15일] 백열전구

봄비. 이중천막. 60촉 백열전구
필라멘트마저 태워 버려 어린 영혼 불러내리

[22일째/ 3월 18일] 두 명의 뼈가 한 몸처럼

설화산 기슭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에서 두 명분의 아래턱뼈가 한 몸처럼 붙어서 발굴됐다. 치아 감식결과 8살 전후 아이 두 명의 하악골(아랫턱뼈)

그 날 한 마을 동무가 아비 어미들과 함께 끌려와 나란히 죽음을 맞았을지, 한 집안 형제가 죽음의 공포를 나누며 함께 숨을 거두었을지 알 길이 없다. 죽음의 방식에는 전형이 없다지만 8살 아이들에게 향했을 그 총부리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3일째 / 3월 21일] 서러운 봄

그해 겨울 빼앗긴 목숨, 서러운 봄이 대신 왔다.

[24일째/ 3월 22일] 총소리

굳센 뼈들과 사용하지 않은 M1 총알이 클립 채 땅에 박혀있다. 서둘러 학살하며 미처 챙기지 못한 걸까. 학살을 거부하며 고의로 버린 걸까.

오늘도 발굴장 옆 사격장에서 종일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에게 향했을 그 총성. 언제 멈춰지려나


 발굴 24일 째. 사용용하지 않은 M1 총알의 8발 클립이 통째로 발굴됐다.
 발굴 24일 째. 사용용하지 않은 M1 총알의 8발 클립이 통째로 발굴됐다.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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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째/3월 23일] 고통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어린아이 갈비뼈.

불에 타고, 돌에 눌려, 머리 다리 구분이 없다.

아이의 죽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27일째/3월 25일] 마무리

 25일 오후, 유해발급이 마무리됐다.
 25일 오후, 유해발급이 마무리됐다.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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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7일 간의 유해발굴작업을 마무리했다.

감식과 보고서 작성, 보고대회 일정이 남았다.
(발굴팀은 약 150구에 이를 것으로 잠정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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