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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고쳐쓴 개헌안에 손뼉을 보내며

지난 3월 22일 전문을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은 무엇보다 헌법을 한글로 적었다는 점에서 크게 손뼉 받아야 한다. 가령, 헌법 제1조 제①항은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적는다.

개헌안 제안 이유를 "헌법의 한글화 및 알기 쉬운 헌법"에서 밝히듯, 헌법이 "대한민국의 가치와 질서를 상징하는 최고법이면서 최고의 공문서"이면서도 여전히 "어렵고 고루한 한자어와 일본식 문투의 문장"으로 쓴다는 점에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법이 없던 것도 아니다. <국어기본법> 제14, <행정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제7조에서 어문규범에 맞게 한글로 적어야 한다고 했지만 헌법을 적는 글은 이에서 한참 비껴나 있었다. 개헌안은 한글로 적을 뿐아니라 되도록 능동꼴 문장으로 쓰고 '…에 의하여', '…에 있어서', '…인하여'를 빼고 푸는 꼴로 적으려고 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이렇게 한글로 쓴 헌법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읽고 민주공화국이 과연 어떤 국가이며 민주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정치인가를 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헌법 기본권을 침해하는 '낯설고 어려운 말'

개헌안은 "'증거인멸의 우려'를 '증거를 없앨 염려'로, '助力'을 '도움'으로 바꾸는 등 한자어는 가능하면 우리 말로 풀어 쓰면서 '영전(榮典)', '의사자(義死者)', '부서(副署)' 등 어렵거나 이중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한자어는 일부 한자를 괄호 안에 함께"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말인지 선뜻 알아먹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대개 한자말인데 '부속도서, 창설, 고지,통지, 기망, 발부, 알선, 궐위' 다위 말을 올바르게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헌법은 중학교 의무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초등학생이고 대학생이고 아이고 어른이고 농사꾼이고 박사고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말로 헌법을 써야 한다. 헌법의 주인이 누구인가?

헌법학자도 판·검사도 헌법재판관도 대통령도 국가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헌법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한다면 의무교육으로도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말은 국민을 차별하는 일이며 국가는 제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어렵고 낯선 말은 개헌안 제10조 '행복을 추구할 권리', 제11조 ①항 '법 앞의 평등', 제22조 ①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이 났으니, 바꾸는 김에 '前文'을 '전문'으로 한글로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앞글'이나 '머릿글'처럼 바꾸면 좋겠다. 아울러 498자로 쓴 문장을 짧게 쓰고 입음꼴을 줄이고 쉬운 말로 썼으면 좋겠다. '유구한, 법통, 공고히 하고, 사회적 폐습, 불의를 타파하며, 균등히 하고,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도모하고, 항구적인' 같은 말들부터 쉬운 말로 바꾸자. 

쉬운 말로 대통령 개헌안 다시 쓰기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으로 한다.

제11조 ③ 사회적 특수계급 제도는 인정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창설할 수 없다.
→ 사회 특수계급은 인정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만들 수 없다.

제13조 ⑤ (……)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않고는 누구도 체포나 구속을 당하지 않는다. (……) 사람에게 그 이유와 일시·장소를 지체 없이 통지해야 한다.
→ (……) 일러주지 않고는 누구도 체포하거나 구속할 수 없다. (……) 사람에게 그 이유와 일시‧장소를 곧바로 알려주어야 한다.

제13조 ⑦고문·폭행·협박·부당한 장기간의 구속 또는 기망(欺妄)
→ 고문·폭행·협박·부당한 장기간 구속이나 속임수
(※ 한글로만 써서 알 수 없을 때는 묶음표에 한자를 같이 써도 이해를 도왔다고 하나 '속일 기欺, 허망할 망妄'으로 그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14조 ① 누구도 행위 시의 법률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으며
→ 누구도 행위 때의 법률에서 범죄가 아닌 행위로는 소추하지 않으며

제17조②(……)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 법관이 발급한 영장을 내보여야 한다.
(※ '발부'나 '발급'이나 같은 한자말이나, 발급이 더 흔하게 쓰는 말이다. 아예 발급한다는 말 말고 '내준다'는 말을 쓰면 더 좋겠다.)

제31조 (……)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 법률에서 정한 대로 국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제40조 ①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
→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서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제41조 모든 국민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
→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한 바를 따라 세금을 내야할 의무가 있다.
(※ '납세의 의무'는 초등학교 6학년 사회 시간에 배운다. 그러니 초등학생도 알 만한 말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납세라고 했을 때 그 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세금을 낸다'처럼 바꾸어 말한다면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제42조 ③ 누구도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
→ 누구도 병역의무 이행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불이익하다는 말을 일상에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비슷한 뜻으로 불리하다는 말을 쓴다. 같은 한자말이지만 불리하다는 말이 한결 쉬운 말이다.)

제48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발언하거나 표결한 것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로 한 말이나 표결로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49조 ③ 국회의원은 (……)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 국회의원은 (……) 그 처분으로 재산상 권리·이익이나 직위를 얻거나 다른 사람이 얻도록 주선할 수 없다.
(※취득은 얻는다는 말이다. 뒤에 쓴 '알선'이라는 말은 '주선'이 더 흔하게 쓰는 말이다.)

제50조 ③ 대통령이 임시회를 요구할 경우 기간과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
→ 대통령이 임시회를 열자고 요구할 때 기간과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제57조 ⑥ 대통령은 제4항에 따라 확정된 법률은 정부에 이송된
→ 대통령은 제4항에 따라 확정한 법률은 정부에 보낸

제61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 예산 각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費目)을 설치할 수 없다.
→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낸 지출 예산 각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만들 수 없다.
(※'비목' 같은 말도 보통 사람에게는 어려운 말이나 법에서 쓰는 말이니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설치한다'는 말은 '만든다'는 말로도 너끈하다.)

제72조 ②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경우 → 대통령 자리기 비거나

제110조 ① 비상계엄 선포 시 또는 국외파병 시의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나 국외로 파병했을 때 군사재판을 맡아서 할

제115조 ⑤ 감사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 감사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태그:#개헌안, #대한민국 헌법, #우리 말, #쉬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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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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