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포스터 이미지

▲ 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포스터 이미지 ⓒ DNA Films


지난 3월 14일 작고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생전에 혜성 충돌과 같은 외계 급변 상황과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공 가능성 등을 경고한 바 있다. 그 주장의 요지는 최악의 경우 그런 상황에서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지구 외 다른 별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미국에서 개봉한 <서던 리치 : 소멸의 땅>(Annihilation, 앨릭스 갈런드 감독)은 이런 호킹 박사의 주장을 새삼 돌아보도록 만드는 SF 영화다.

이 영화는 외계에서 비롯된 특이 현상의 확산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인류의 대응에 관한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심리학자와 생물학자, 물리학자, 지질학자 그리고 응급구조사로 구성된 5인의 여성 탐사대가 특이 현상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 겪게 되는 괴이한 경험을 중심으로, 이들의 유대가 무너지고 반목하게 되는 사연 그리고 주인공인 리사(나탈리 포트만 분)가 이 현상의 진실을 대면하기까지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미국 소설가 제프 밴더미어(Jeff VanderMeer)의 네뷸러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로, 제니퍼 제이슨 리와 오스카 아이삭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포트만과 함께 공연했다. 네뷸러상(Nebula Award)은 미국에서 출판되거나 발표된 SF 소설을 대상으로 한 저명한 상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 소설은 국내에 <소멸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1권이 출간됐다.

이 작품의 특징은 충격적인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특이한 괴이 현상이 중심소재인 영화인만큼 당연한 결과이기도 할 텐데, 일부 잔혹한 장면을 제외하면 이런 이미지 대부분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구현됐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 외 이 영화의 전반적인 장면 구성과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들이 혼재돼 있다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필자는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을 보면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미믹>(Mimic),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심연>(ABYSS) 등 과거 영화의 특정 장면이나 아이디어를 연상했다. 그리고 이런 체험은 진부하다는 느낌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작용했다.

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영화 한 장면 캡처 이미지.

▲ 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영화 한 장면 캡처 이미지. ⓒ DNA Films


그만큼 만듦새가 괜찮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명징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필요 이상의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유전자 조작 등의 기술로 기존 생명 질서를 교란하고 있는 인간의 행태와, 무분별한 개발과 주거지 확대 등으로 여타 생명체들을 절멸의 상황으로 몰아가며 소위 '대멸종기'를 이끌고 있는 현시기 인류의 상황을 풍자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즉 지금은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교란하고 다른 생명을 절멸로 몰아가는 주체로서 이 모든 상황에 작용하고 있는 듯하지만, 언제든 그 반대 입장에 놓이게 될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경고하는 영화로 이 작품을 해석했다는 뜻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은 이미 숱하게 인류가 경험해왔고 또 지금도 무수히 경험하고 있는 진행형의 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 각종 바이러스의 유행 그리고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 등을 그런 경우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인류는 의외로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자만이라면 자만이요 무지라면 무지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자만과 무지는 때로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Annihilation'은 부지불식간에 다가올지도 모를 현생 인류의 절멸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당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가당찮은 것이다.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