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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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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하던 행정직원이 직장상사의 강요와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간 일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태의 진원지는 충남 공주시에 있는 충남여성정책개발원(아래 개발원, 원장 허성우)으로 이곳은 충청남도가 성평등 가치실현을 위해 출연해 설립한 연구기관이다.

사건 발생 시점은 지난 달 2월 20일 오후 경으로,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아래 센터)의 외부 용역비 미지급금 처리 과정에서 불거졌다. 센터는 2017년 의뢰한 용역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해당 컨설턴트는 조사비 미지급금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이러자 허성우 원장은 임아무개 센터장과 전담연구원, 직원 A씨 이렇게 세 명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때 A씨는 미지급금 처리 계획서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위서 제출을 거부했다. 이러자 A씨에게 압박이 가해졌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충남여성정책개발원지부(아래 지부, 이채민 지부장)에 따르면 임 센터장과 전담연구원이 A씨에게 "경위서 거부는 '명령불복종에 해당되며 더 큰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수차례 회유와 협박을 가했다"고 했다. A씨도 지부에 낸 진술서에 "임 센터장과 전담연구원이 경위서는 징계가 아니라고 하며 지속적으로 경위서 작성을 강요했다"고 적었다.

A씨는 이틀 뒤인 22일 재차 사내에서 다수의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언을 들었다. 결국 A씨는 억울함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갔다. A씨는 현재 병가를 내고 치료 중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임 센터장은 "A씨가 막무가내로 일관해서 원장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로 불러 완곡하게 권유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A씨가 실신한 경위를 묻자 임 센터장은 "작은 조직이다 보니 평소 업무 부담이 과도했고 스트레스도 심했던 것 아닐까 판단한다"고 답했다.

지부는 A씨 사건을 '직장내 괴롭힘 및 탄압 사건'으로 규정하고 ▲ 센터장 보직해임 ▲ 징계위원회 개최를 통한 센터장 등 사건 관계자 징계 ▲ 기관과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공개 사과 ▲ 피해 조합원에 대한 산업재해 처리 적극 협조 등을 요구했다.

노조 측 요구에 대해 개발원은 지난 21일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사내 괴롭힘과 임 센터장 보직 해임과 관련, 각각 '관련자들의 주장이 서로 다르므로 조사 권한을 가진 기관 또는 기구에서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 필요'하고, '보직인사권자의 재량 사항으로 기관장 판단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사과 요구에 대해선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 및 결과 수용에 따른 개인별 조치 사항'이란 판단을 내렸다. 인사위가 사실상 지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여성운동가 출신 원장, 조직내 문제는 침묵?

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노조측은 기관이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노조측은 기관이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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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태에 대해 지부는 허성우 원장의 미온적인 태도가 사태를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 허 원장은 22일자로 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직장내 괴롭힘과 탄압이라는 노조의 주장이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직원의 건강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는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기관의 업무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고이지, 기관장이 노동조합 탄압과 기본협약 위반을 의도하고 한 행위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지부는 허 원장에게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부의 B 조합원은 허 원장을 성토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지부는 이 일을 외부로 알리지 않고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한 달 가까이 외부에 알리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허 원장이 성공회대 NGO 대학원에서 실천여성학 주임교수를 지냈고, 여성운동을 활발히 해온 점에 비추어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춰 사태해결에 나서 주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허 원장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차일피일 입장 표명을 미뤄왔다. 더구나 허 원장은 이달 초 사의를 표명했고, 다음 주엔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허 원장은 문제를 제기할 때 마다 기관과 기관장의 명예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행정직원 A씨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무척 실망스럽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허 원장은 23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래와 같은 입장을 전해왔다.

"일단 회계처리 문제는 충남도와 여성가족부의 감사결과에 따라 처분할 방침이다. 노조 측은 A씨 사건을 괴롭힘으로 본다. 직장내 괴롭힘은 일정 기간을 두고 혼자, 아니면 여럿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반면 이번 일은 업무처리를 둘러싸고 수일 내 벌어진 상황이다. 게다가 관련자들이 업무상 권한으로 괴롭혔다는 정황이 분명치 않은데다 관련자들의 진술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가해라는 지적에 대해선 별도의 기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난 이미 지난 7일 사의를 표했다. 이번 일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개인적 사유도 있다. 사태를 매듭지어야 하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사의를 표했기에 후임이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노조측은 기관이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충남 공주에 위치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노조측은 기관이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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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실신, 그리고 뒤이은 기관과 지부 사이의 책임공방은 우리나라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 '흔한' 논란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 가치 실현'을 모토로 충남도가 출연해 설립한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일이고, 관련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사뭇 괴리감마저 느껴진다.

이와 관련, 조합원 B씨는 아래와 같은 뜻을 내비쳤다.

"이 기관은 성평등과 관련한 연구 및 성평등 실현을 위한 실천방안을 생산해 내는 곳이다. 외부에서 보면 이곳에 성평등 의식이 있는 곳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 A씨에게 벌어진 일은 일반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조직 내 문제가 있으면 최대한 드러내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는데, 원장과 기관은 이 일을 손 놓고 있다.

이 일을 두고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다. 최근 확산 중인 '미투'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여성이라고 다 성평등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또 여성이라고 다 성평등 의식이 있지 않다. 사람이라고 다 인권의식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이번에 A씨에게 벌어진 일은 위계관계에서 비롯된 일로, 본질은 '미투'와 다르지 않다는 판단이다. 즉 인권의 문제라는 의미다." 


이에 지부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기관 특성상 직장 내 권력관계에서 약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해야 하며 기관의 사업 집행에 있어서 책임성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며 "기관이 이제라도 인사위원회를 개최한다고 밝힌 만큼 면피성 인사위원회가 아니라 가해자들을 실질적으로 징계하고, 피해조합원의 치료와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23일 만난 조합원 C씨는 기자에게 이런 입장을 전했다.

"현재 기관은 사실상 손놓고 있고,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이들은 없는 상황이다. 지휘 감독 책임이 있는 상위기관인 충남도도 지사가 공석 중이다. 이 와중에 노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외부에 알리는 일 말고는 없다." 


태그:#충남여성정책개발원, #허성우 원장, #직장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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