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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다수의 뉴스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옮겨간 시대. 50, 60대 이상의 독자들이 아니라면 이젠 'OO일보'나 'XX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10대와 20대는 거의 대부분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종이신문의 종언'이 임박한 시점. 하지만, 소수라 할지라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큼지막한 대판 신문을 펴드는 그 독특한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이 없진 않다. 그렇다면 종이신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어떤 것일까?

굵직한 정치와 경제 관련 뉴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오늘의 운세'와 '아침의 시(詩)' 등 짧고 흥미로운 메시지가 담긴 면부터 펼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종이신문 독자인 나도 그렇다.

권성훈의 신간 <현대시 미학 산책>.
 권성훈의 신간 <현대시 미학 산책>.
ⓒ 경인엠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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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현대시 미학 산책>(경인엠앤비)은 2015년부터 <경인일보>에 매주 연재된 고정 코너 '시인의 연인'에 실렸던 시와 그 시에 관한 해설자의 단상을 그러모은 것이다. 이 연재의 해설자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성훈(49·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종교학과 문학, 심리학 등에 두루 관심을 가진 권성훈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종이신문을 펼쳐드는 독자들을 위해 계절과 날씨, 사회적 분위기와 세계사의 흐름까지 고려한 한 편의 시를 때마다 엄선했고, 그 작품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3년 이상 연재가 이어졌다는 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편의 시와 그것을 풀어내는 해설자가 지닌 매력

사실 한 편의 시를 게재하고 그 아래 평론가나 작가의 간략한 목소리를 싣는 건 많은 종이신문들이 선택하고 있는 흔한 아이템이다. 우후죽순 같은 그 사이에서 돌올하려면 시 선택이나, 시의 해설에서 남다른 매력이 발견돼야 함은 물론이다. 권성훈의 선택과 해설에선 그런 게 보일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니 아래를 보자.

천 개 손을 뻗어
만 개 꽃을 피우더니

놓인 손목에선
피도 뚝뚝 흐르더니

어느새
진흙밥 짓고
쑥쑥 올린

저 골반들.

식탁은 삶과 죽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실존의 민낯이다. 그곳은 한 끼 식사가 되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놓여있는 존재와 그것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공존한다... (중략) 오늘 아침 허겁지겁 먹은 당신의 식탁도 그러하다. - 정수자 시인의 '연밥'과 권성훈의 해설.

상자 속 귤들이 저들끼리 상하는 동안

밖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무심하다

상처는
옆구리에서 나온다네, 어떤 것도.

누군가의 곁에서 무심하게 호흡하는 당신도, '관심의 온도'에서 부패해가고 있다면 '어떤 것도 상처'가 되는 바,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옆구리'가 아픈 것에는 연유가 있다. - 류미야 시인이 '곁'과 권성훈의 해설.

시 속에 숨겨진 길을 찾는 권성훈 시인.
 시 속에 숨겨진 길을 찾는 권성훈 시인.
ⓒ 경인엠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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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허술하지 않은 작품을 골라내고, 그 시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세밀하게 탐색한 권성훈이 '시인의 연인' 연재에 들인 공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 편의 시에는 가끔 세상 전체가 담기기도 하니까.

어쨌건, 종이신문의 독자와 함께 책을 읽는 독자들도 줄어들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이제 낡은 수사가 돼 간다. 하지만, 권성훈은 말한다. "시집을 펼치는 사람이 적어진다고 해서 시가 가진 의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시 속에서 길을 찾는' 권성훈의 작업은 앞으로도 한참은 지속될 듯하다. 눈여겨 지켜볼 일이다.


현대시 미학 산책

권성훈 지음, 경인엠앤비(2018)


태그:#권성훈, #현대시 미학 산책,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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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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