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 후 처음 치러지는 지방선거. 새판을 짤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배경과 정당에서 6.13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삶과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던 전진희씨는 이제 민중당의 이름으로 서울시의원에 도전한다.
▲ 알바왕에서 서울시의원 후보까지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던 전진희씨는 이제 민중당의 이름으로 서울시의원에 도전한다.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학생운동과 총학생회장 역임,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학생단체 활동, 그리고 진보정당 경험. 이런 흐름을 읽다보면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앞에 앉은 선배의 영향으로 학생운동의 길로 진출해 각종 집회와 시위로 점철된 조직생활을 이어나가다 결국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전형적인 '운동권'의 이미지를 체현하게 되는 이미지.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선입견은 서서히 깨졌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는 총학생회장이 되고 나서도 중단하지 못했다. 낮에는 사회문제를 선두에서 해결하는 투사였지만, 밤이면 또래의 대학생처럼 클럽문화를 즐겼다. 한 때 운동권 문화를 '촌스럽다'고 느꼈던 대학생은 이제 서울시의원이 되고자 출사표를 던졌다. 서대문에서 시의원을 준비하고 있는 민중당 전진희(33)씨 이야기다.

"지난해 10월 민중당이 창당하면서 두 가지를 내세웠어요. 첫째는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정치의 시대를 열자'는 것이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아, 이건 나보고 출마하라는 거구나' 싶더라고요(웃음). 그래도 한참 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생계는 어쩌나, 명함은 또 어떻게 뽑나? 이런 고민이 줄을 잇더라고요.(웃음)"

'알바왕'에서 '전진하는 전진희'로

전진희씨의 주요활동은 청년노동자와 여성에게 '정책제안'을 받는 것이다. 단순히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함께 공유한다.
▲ "청년은 조직하는 것" 전진희씨의 주요활동은 청년노동자와 여성에게 '정책제안'을 받는 것이다. 단순히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함께 공유한다.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직접정치의 의미를 '내가 출마하는 것'으로 단숨에 이해한 전진희씨는 원래 알바왕이었다. 수능을 보자마자 부모님은 더 이상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19살에 김 공장에서 돌김을 포장하고 조리김에 방부제를 넣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주말과 방학에는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영어 보조강사, 수학문제풀이 강사, 논술교재 만들기, 영재 학원 강사, 창의력 수업 강사, 텔레마케팅, 예식장 도우미…. 그가 거쳐 간 알바의 세계다.

"가장 오래 했던 알바요? 예식장 도우미에요. 총학생회장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이 알바를 했으니까 한 10년 했나? 제가 결혼시킨 커플만 해도 수천 명이 될 거에요. 전 이 일이 좋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축복받는 시간이니까.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부모님께 신랑 신부가 절하면서 울면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같이 펑펑 울고..."

수천 번은 봤을 결혼식에도 매번 눈물을 쏟았던 공감능력은 그녀를 본격적인 학생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교 3학년 때인 2007년, 신문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홈에버와 KTX 비정규직 투쟁을 만났다.

"우연히 간담회에 참석했는데, 평생 평범하게 살아오신 홈에버 비정규직 어머니들이 처음 파업이라는 걸 해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쁜 소리는 처음 해봤다고 하시더라고요. KTX 여승무원 언니는 대학 땐 집과 학교만 오가면서 공부만 해서 스펙은 좋았지만 사회문제에는 관심도 없었대요. 집회하는 애들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기가 그 상황이 되었다고 웃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 엄마도 나도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땅바닥에서 이렇게 투쟁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사람이라는 게 사회랑 무관하게 살 수는 없겠구나', '어차피 하게 될 거면, 빨리 시작해서 세상 바꾸는 일에 기여하는 게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바로 중단하고 총학생회장에 출마했어요."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귀했을 때, 선뜻 총학생회장을 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놀랐다. 학생들도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후보에게 관심을 보였다. 경선이었지만 99표차 신승. 총학생회장이 된 전진희는 몇 십 년 만에 보란 듯이 총회를 성사시켰다. 그 자리에서 등록금 동결과 스쿨버스 무상화, 몇 가지 복지 요구를 내세운 단식을 선포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단식을 하겠다니까 학우들이 '언니, 안돼요. 하지 마요' 하면서 같이 울어주더라고요. 이를 악물고 9일 동안 버텼더니 그동안 학생들의 요구에 관심도 없던 학교 태도가 달라졌어요. 총장님이 면담하자고 하면서 당시에는 꽤 비싼 수입 생수를 줬어요. 단식하고 있으니까 나름 예우를 해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감동적인 승리. 모든 요구가 관철됐다. 학우들은 그녀에게 '전진하는 전진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뭔가 더 열심히, 제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한해를 수놓았던 2008년과 함께 임기가 끝나고 나서도 학교에서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를 꾸리고, 각종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졸업 이후에도 등록금과 대학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학생단체 활동을 이어나갔다. 줄곧 교육문제, 대학문제를 고민하다 이제 노동문제로 옮겨왔다.

"2016년에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으로 일했어요. 처음 상담한 분이 우리 엄마뻘 되시는 아주머니셨어요. 자기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사장이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노동법이 어떻고 이런 저런 법률이 어떻고 이야기 드리다가 어머니 잘못한 거 아니라고, 그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펑펑 우시는 거예요. '너무 비참하다'고, '내가 못 배워서 무시당하는 거 같았다'고요. 사실은 위로가 듣고 싶었다면서 '너무 고맙다'고 그냥 어디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청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는 것이 청년정치"

전진희씨는 '정치파라솔'을 들고 청년들을 찾아간다. 파라솔 아래에서 정책제안을 받고있는 전진희씨.
▲ 서대문 지니 전진희씨는 '정치파라솔'을 들고 청년들을 찾아간다. 파라솔 아래에서 정책제안을 받고있는 전진희씨.
ⓒ 전진희

관련사진보기


그녀의 공감능력은 이곳에서도 발휘됐다. 10분 지각했다고 해고된 청년, 일을 그만둘 때 그동안 못 받은 주휴수당을 요구했더니 오히려 절도죄로 고발당한 청년, 그리고 유명 케이블방송 조연출로 일하다 사망한 청년까지. 전진희는 그들과 사례가 아니라 감정을 공유했다. 그래서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하는 지금도 주로 청년노동자와 여성을 만나고 있다. 그들이 나이 어린 청년이라는 이유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성적 불안에 노출되어야 하는 대한민국 일상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청년노동자는 온갖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고, 여성은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 있어요. 화장실 갈 때 뽀족한 것이나 매니큐어를 가져가는 여성들이 많아요. 몰카가 있을까봐, 카메라 같은 것이 보이면 렌즈 깨고 매니큐어로 칠하려고요. 얼마 전에는 실제로 몰카 찍다가 걸려서 도망가는 남자를 잡으려고 뛰어가던 여성을 본 적도 있어요. 삶의 위협이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어 있는 거죠."

미투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은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이 흐름 속에서 희망을 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낀다.

"가해자가 유명인인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심판을 받잖아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오히려 일터에서, 대학에서 배제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여자들 빼고 술마신다' '무서워서 말이라도 걸겠냐'는 식으로요. 개인이 위험을 감수해서 폭로하는 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잖아요.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폭로가 멈추면 너무 큰 상처로 남게 될 거에요. 개인이 위험을 감수해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직면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진희가 주목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자신도 '청년 정치'를 표방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서울시의원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청년 정치는 뭘까?

"그동안 '청년 정치'는 두 종류였어요.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청년세대이거나 아니면 청년 정책을 이야기하거나. 제가 생각하는 청년 정치는 이런 게 아니라 '청년들의 힘이 세지는 것'이에요. 한번 유행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세력을 모으는 청년정치요. 불특정 청년을 그냥 자신이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정치 공동체가 많아지고 강화되면서 청년이 있는 현장과 광장, 의회를 연결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해요."

그래서 전진희씨는 청년과 여성을 만나면서 '정책제안'을 받고 있다. 그리고 4월 7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여성이 안전한 서대문을 만드는 체인지 플래시몹'도 준비 중이다. 편의점 알바들을 만나서는 '편의점 알바 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당선이 아니라 이렇게 청년이 서로 만나고 조직되는 것이 청년정치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핑계가 아닐까?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창당된 지 1년도 안 된 소수정당 후보가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 진보정당이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도 비례후보를 제외하고 지역구에서 서울시의원이 당선된 적은 없다.

"(선거운동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민중당이 뭐야? 당대표는 누구야?'란 것이에요. 설명하기 복잡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우리 당원들이 보여서 이렇게 답했어요 '저기에서 노점하시는 깻잎 떡볶이 포차아시죠? 또 저쪽노점에서 양말 파시는 분 아시죠? 이곳에 자주 오시는 택배 아저씨 아시죠? 다 민중당 당원이세요. 이렇게 민중당은 유명하고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정당이에요!' 이런 정당에서 출마하면 당선은 물론 3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전진희는 '서대문 지니'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말하기만 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지니와 달리, 서대문 지니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함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서대문구를 지나다 정치파라솔 아래 있는 '서대문 지니'를 만나면 함께 이룰 소원을 상의해 보면 어떨까?  

 ☞ 관련기사
"합당이 쉽니?"...국민의당 이긴 '도봉구 금사빠'의 도전


태그:#전진희, #민중당, #청년정치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