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여행을 콘셉트로 하는 예능들이 많다. 보통 일상에서 벗어나는 개념으로 여행이 구성된다. 예를 들어 <1박 2일>이나 <삼시세끼> 같은 경우다. 도시에서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SBS 예능 <싱글와이프>는 도시가 아니라 가정과 양육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 콘셉트라고 볼 수 있다. 연예인 남편을 둔 아내가 집안일에서 벗어나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신선하다. 특히 아내들은 연예인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소탈함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낭만적 일탈'일까

 <싱글와이프> 스틸컷.

<싱글와이프> 스틸컷. ⓒ SBS


그런데 <싱글와이프> 소개 글을 읽다가 아내들이 '낭만적인 일탈을 꿈꾼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그렇지, 지금 세상에 여성이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면서 해외여행을 꿈꾸기란 쉬운 게 아니지. 연예인을 배우자로 두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특히 회차마다 소개되는 부부의 경우 남편이 집안일을 혼자서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이 정도면 아내가 집에서 벗어나 해외여행 가는 것도, 남편이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되는 상황이다. 작곡가 김형석 편을 예로 들면, 아내는 그를 가부장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내가 집을 비우면 아무것도 못 하고 '언제 오냐'며 전화를 계속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아내가 정말로 떠나버리면 집안 모습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쯤 되면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래 <슈돌>)가 생각난다. 사실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싱글와이프>와 비슷한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싱글와이프>는 여행을, <슈돌>은 육아를 다룬다는 점이 다를 뿐. 그런데 여성이 독박육아를 하는 상황이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가정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거나 가정으로 돌아와 육아를 하는 것은 일상이 아닌 '일탈'의 맥락에 놓여있다.

오죽하면 <슈돌>에 출연한 아빠(남편)를 '슈퍼맨'이라 칭하고 '돌아왔다'는 표현을 쓰겠는가. 방송 콘셉트 상 아빠들에게 육아란 '대단한 것', '한 번 해봄 직한 것'이다. 이런 인식들은 사실 두 방송이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의지를 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속된 말로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아내의 서툰 행동이 남편의 폭소가 되다니

 <싱글와이프>는 아내의 서툰 일탈을 남편들이 구경하는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싱글와이프>는 아내의 서툰 일탈을 남편들이 구경하는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 <싱글와이프> 방송 갈무리


<슈돌>과 <싱글와이프>가 다른 점이 있다면 <슈돌>에는 아내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오롯이 아빠와 자녀만을 비춘다. 반면에 <싱글와이프>는 남편의 시선이 개입한다. 즉, 아내의 여행을 남편들이 구경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두 프로 모두 위에서 말했듯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탈'이 되어버린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다른 배우자의 시선이 개입되는가에 따라 확연히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싱글와이프>에서 아내들은 본인들도 가정에서 벗어난 게 생소한 경험이기도 하고 외국어에 서툴다 보니 자주 실수를 저지른다. 그때마다 그걸 지켜보는 남편이 폭소하는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자막까지 깔리면 남편들이 그 상황을 얼마나 답답해하는지 알 수 있는 건 덤이다. '아니, 저걸 왜 저렇게 하나'라는 식으로.

<슈돌>을 생각해보자. 출연한 아빠들은 대부분 본격적인 육아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실수를 하거나 힘들어해도, 심지어 눈물을 보여도 '그거 엄마들이 다 하던건데 왜 엄살 부리냐', '잘 좀 해봐라'라면서 야유 혹은 조롱하는 반응이 나오는 일은 드물다. <싱글와이프>나 <슈돌>이나 결국 일상의 사소하면서도 커다란 변화에 대처하는 개인을 다루는데도 이렇게 반응들이 다른 것, 참 씁쓸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슈돌>에서도 아빠들의 서투른 육아를 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서로 서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잘 안 되는 것 역시, 여전히 독박육아가 사회적인 문제인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모로 <싱글와이프>는 한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싱글와이프 슈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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