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이었다. 웃으면서 <마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던 이보영이 갑자기 아역배우 허율을 언급하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윤복이의 첫 파트너가 돼 영광이었다"고 말을 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하지만 오랜 경력의 배우답게 이보영은 다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사실 끝난 게 실감나지 않는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윤복이랑 막 울었다.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이보영은 인터뷰 내내 배우 허율을 윤복이라고 불렀다. 무엇이 이보영을 이토록 <마더>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15일 오전 서울 신사동에서 <마더> 촬영을 마친 배우 이보영을 만났다.

 15일 배우 이보영이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tvN <마더> 종영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 제공.

15일 배우 이보영이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tvN <마더> 종영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 제공. ⓒ 다니엘에스떼


"아동학대 기사 보고 울어"

- 원작을 보셨나.
"원작을 먼저 봤고 이 작품이 제작된다는 걸 알고서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를 낳고 기분에 업앤다운이 심할 때였다. 아동학대 관련 기사만 봐도 울었다. 그 상황들이 상상되고 울던 중에 이 작품이 제작된다는 걸 알고 '이걸 해야할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촬영을 하면서는 물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싶었지. (웃음) 원작이 너무 좋아서 내가 잘 해도 본전인데 무슨 심정으로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나도 모르게 원작과 이 드라마를 비교하고 있는 거다. 초반에 연기하면서 부담이 굉장히 컸다."

-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 마음에 들었나?
"드라마는 그래야하지 않나 싶었다. 아이가 또 다시 상처를 받고 치유받지 못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치유하는. 그래야 보시는 분들도 편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 싶다. 꽉 막히는 현실을 드라마 속에서도 보면 누가 노력을 하겠나. 어떻게든 희망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다."

 15일 배우 이보영이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tvN <마더> 종영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 제공.

ⓒ 다니엘에스떼


 15일 배우 이보영이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tvN <마더> 종영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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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진 역도 원작과 차이가 분명했다. 연기하면서 그런 점에서 오히려 힘들 거나 그렇진 않았나.
"감독님과 상의를 하고 들어간 부분이다. 수진이라는 캐릭터가 좀 더 한국 정서를 담아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 가자고 상의가 된 상태였다. 우리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뭉클한 그리고 자기를 되돌아보는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수진이 진짜 엄마가 돼가는 과정이 드라마를 통해 잘 드러난 것 같다. 연기할 때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을까?
"사전에 '어떻게 해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연기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데 상대 배우의 연기가 정말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웃음) 너무 좋았다! 상대 배우의 눈을 보고 그걸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대로 대사를 뱉은 것 같다. 그렇게 '신 바이 신(scene by scene)'으로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기도 많이 달라졌다."

- 그럼 현장 분위기에 따라 연기가 많이 달라졌겠다.
"상대 배우에게 잘 말리기도 했다. (웃음) 그래도 <마더>의 현장은 정말 모든 스태프들이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셨다. 대본도 충분히 나와 있어서 캐릭터도 많이 생각할 수 있었고 현장도 모든 컨디션이 맞춰져 있어 연기를 한 번 하고 나면 정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윤복이랑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막 장난치다가도 갑자기 촬영에 들어가면 눈물이 났다. 그런 현장이었다.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순간 있지 않나."

- 이보영 배우도 허율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허율도 이보영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초반에 다들 윤복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아동학대 현장을 아역 배우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그런 건데 윤복이는 드라마가 끝나는 게 슬프지 다른 면에서는 행복이 최상치라고 하더라. 물론 드라마가 끝난 뒤에 아이의 감정이 걱정되긴 하는데 일단 학대를 받는 신에서 본인이 학대를 받는지 잘 모른다. 어른들은 '어떻게 쓰레기봉투에 애를 넣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겪어보지 않아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더라. 경험이 있어야 아프고 할 텐데 그런 경험이 없어 문제가 없었다. 윤복이도 현장에 놀러오더라. 처음에는 집중을 시키려고 '윤복이 네가 주인공이야' '떠들면 안 돼' '현장에 집중해' '여기 이모 봐. 다른 데 쳐다보지마' 이렇게 말하기도 했는데 중반부터는 그냥 윤복이가 돼있더라. 그 이후로는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다."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아이는 기른 정이라고 생각해"

- <마더> 속에는 다양한 '엄마'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나?
"(기존에서) 바뀐 생각은 없다. 애를 키우면서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애를 낳고 막 애가 마냥 예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더라. 내가 나쁜 엄마인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키울수록 예뻐지더라. 초반에는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고 그러고 엄마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왜 우리 사회는 엄마라는 사람은 다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의아함도 갖고 있었고. 정말 낳기만 한다고 다 엄마인가?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나는 아이는 기른 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아이의 마음 속 성을 잘 쌓아줘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다."

- 드라마 속 엄마의 모습 중 이보영은 어떤 엄마의 모습과 가장 닮았나?
"비슷한 엄마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영신(이혜영) 엄마 같은 엄마가 롤모델이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예쁜짓만 하고 있다. 사춘기가 오고 다 컸을 때 내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믿어주고 한없이 사랑해주고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엄청났다. 주변에서도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안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음이 아프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 반응 보다는 ... 가족들 반응이 제일 좋다. 가장 냉정하다. (웃음) 온 가족이 윤복이가 수진이랑 같이 살게 되기를 응원해주더라. 사실 저희 엄마는 내가 나오는 드라마라도 재미가 없으면 딴 이야기를 하시고 그러는데 <마더>가 시작되는 순간 불도 끄고 온전히 드라마에 몰입하시더라. 동생에게도 '윤복이랑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문자가 왔다. 그렇게 캐릭터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되게 행복해진다. 내가 수진이가 되는 게 되게 행복하다. 그런 가족들 반응 때문에 내가 의미 없는 일을 한 건 아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 남편인 지성은 어떤 반응이었나?
"신랑은 지금 한국에 없다. 12회까지는 나랑 같이 봤다. 같이 볼 때는 말도 못 시키게 한다. 그냥 보고만 있다. 며칠 전에 14회를 보고 나한테 말도 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라. (웃음) 물론 드라마에 재미 있는 요소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약간의 물결이 일렁이게 하는 것도 보람차다."

- 제1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공식 경쟁 부문에 <마더>가 선정됐다.
"사실 꽤 오래 전에 알아서 (웃음) 감흥이 많이 떨어졌다. 초반에는 '헉' 했는데 감독님이 이야기하지 말고 나만 알고 있으라고 하시더라. 되게 좋았다. 시청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을 때였는데 모든 스태프들이 이 드라마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찍었다. 그 과정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게 좋았다."

"미투 운동 지지해... 목소리를 낼 필요 있어"

- 시청률이 아쉽지는 않나.
"기대 자체를 아예 안 했다.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이 드라마를 안 했을 거다. 대본의 호흡도 느렸고. 그래도 끝날 때는 웃으면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고 정말 그랬다. 시청률은 물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된다. 그런데 나는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겁게 만들어갈 수 있는 드라마가 더 좋다. 시청률이 잘 나와도 '뭐야 왜 이렇게 많이 보는 거야' 싶은 드라마도 있었다." (일동 웃음)

- 댓글을 보면 '역시 이보영'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어떤가?
"사실 이제 반응을 봐도 상처를 받는다든지 기분이 좋아진다든지 그런 단계는 지났다. 몇 년 전만 해도 조그만 반응에도 힘이 나거나 상처를 받았는데 이제는 일상처럼 받아들여지는 단계인 것 같다."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배우 이보영. tvN <마더> 스틸 사진. ⓒ tvN


- 무게감 있는 드라마를 많이 했다. 가벼운 느낌의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
"사실 내 나이대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로 가벼운 게 많지는 않다. 일부러 무거운 걸 할 거야 어려운 걸 할 거야 그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 안에서 가장 재밌는 것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거다. 솔직히 왜 로코가 안 하고 싶겠나. (웃음) 그런데 시나리오가 그렇게 많지 않다. 좋은 캐릭터나 시나리오를 만나면 로코도 하고 싶다. 이렇게 몰입을 잘 할 수 있는 작품은 4~5개 정도 만난 것 같다. 이야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작품이. 그렇게 만나는 건 쉬운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배우인 것 같다."

- 앞으로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나?
"그런 건 딱히 없다. 사실 신(scene)에 잘 꽂힌다.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신이 있으면 해보게 된다. 어떤 장르나 역할보다도 꽂히는 신이 많은 대본을 만나고 싶다.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웃음) 할 수 있을 때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 그런 점에서 이보영 배우가 요즘 느끼는 '미투' 운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곪고 있던 게 터진 거고 그 과정에서 물론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정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방송계만이 아니라 여러 사회에서 그런 농담 등에 소극적으로 반응했던 것들이 인간에 대한 상처가 된다는 걸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보영 마더 미투 허율 일본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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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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