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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북관계의 진전과 비핵화 국면에서 변화를 가져온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13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관련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찾아온 서훈 국가정보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과 한 달여 전인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해, 잔치를 치르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정간섭성 발언을 했던 아베 총리였다.

"북 시간벌기에 당해선 안돼" → "문 대통령 리더십에 경의"

"북한의 시간벌기에 이용당해선 안 된다"며 남북의 특사단 교환을 못마땅해 하던 그가, 철썩같이 믿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하자 "북한이 핵사찰을 받으면 초기 비용 30억 엔을 내겠다"고 나설 정도로 다급해진 것이다.

서훈 원장에게 "북한이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큰 담판을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이 기회를 단순히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 그간의 태도를 180도 뒤집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2017년 5월 문 대통령의 특사로 온 문희상 의원에 이어 12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는 낮은 의자를 내주고 자신은 높은 의자에 앉았던 것과는 달리 서훈 원장과는 높이를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13일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 총리 공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일본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 서훈 원장, 아베와 회담... 아베 "비핵화 전제 북과 대화 평가" 13일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 총리 공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일본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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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ank you, Good night"

지난 8일 저녁(한국시각 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 앞에서, '북미 정상회담' 뉴스를 발표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쏟아지는 미국 기자들의 질문을 마다하고 짧은 인사만 남긴 채 돌아섰다.

자국 대통령과 동행해 정상회담을 취재하는 미국 기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들 이슈에 집중해 질문한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르윈스키 스캔들, 러시아 대선개입 파문, 미국 경제 상황 등에 대해 묻는 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을 취재하는 백악관 기자들이 한국 관료들에게 질문을 퍼붓는데도, 싹 무시하고 돌아선 것이다.

정상회담 취재 경험이 많은 한 고참 기자는 "한국 외교사에서 전례가 없는 장면일 것"이라며 "통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이 특사단 교환을 통해 정상회담을 끌어내고 이를 북미 정상회담으로까지 연결시키는 데 성공함에 따라 높아진 한국 정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장면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정의용 실장 면담과, 그 이후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시 주석은 연중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이른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한창인 지난 12일 정 실장을 만났다. 중국 지도부는 전통적으로 양회 기간에는 외교일정을 거의 중단하고, 다른 나라들도 아예 방문 일정에서 빼고 생각하는 시기에 성사된 직접 면담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 남과 북, 미국과 북한 사이에 중매자 역할을 해온 것은 중국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11월 시 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북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중매자'로 나서 북한과 미국을 직접 연결시키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자 시 주석까지 나선 것이다.

대부분 비공개로 외교사절을 만나온 시 주석은 이날 무려 10분 넘게 정 실장 접견 장면을 공개했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양회 기간 관련 기사로 채우는 관례에서 벗어나 이례적으로 1면 상단에 접견 내용과 사진을 보도했다.

정의용·서훈, 불과 4일 만에 미중일 최고지도자 직접 만나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대사. 2018.3.9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 정의용 실장, "트럼프 대통령과"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대사. 2018.3.9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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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은 반도 주변 4강이자 전세계 4강 중 대선에 한창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한 미중일의 최고위지도자를 9일부터 13일까지 불과 4일 만에 모두 직접 만난 것이다.

이로써, 적십자회담과 군사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 분야로 국한해서 시작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북한 핵문제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됐다.

불과 한 달 반 전 '코리아패싱'을 운운하던 국내외 언론들은 '재팬 패싱'은 물론 '차이나 패싱'이라는 호들갑을 떨 정도로 바뀌었다.

한국의 '무기'는 북한이었다. 정 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비핵화 카드를 쥐지 못했다면, 미중일 정상을 이렇게 단기간에 직접 만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비핵화와 북미회담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 국제적인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결정적 무기가 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로 불리며, 한국 외교가 자랑하는 불과 몇 장면 중 하나인 2005년 9.19공동성명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과 함께 북한과 미국 사이에 서서, 때로는 북한을 또 때로는 미국을 압박하고 설득해 가는 것이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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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8 남북-북미정상회담 : 평화가 온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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