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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오리 날개 속 털처럼 부드럽게 텃밭에 가득하다. 새벽에 콩나물 시루를 싣고 시장에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토란을 심는다고 텃밭의 흙을 뒤져 달라고 부탁했다. 시장에 다녀와서 장화를 싣고 텃밭으로 들어가 대파를 뽑고 텃밭을 뒤졌다. 그리고 대파를 다듬는데 아내가 아침 운동을 간다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내와 파란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햇살이 싱그러웠다. 아내는 운동을 하러 가고, 나는 작년에 만든 미니 연못을 청소하였다.

그러다 보물을 발견했다. 도롱뇽 알인지 개구리 알인지 잘 모르겠지만 미니 연못 속에 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리니 도롱뇽 알이라고 했다. 개구리 알이었으면 여름 내내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좀 아쉬웠다.

어제는 텃밭에 난 쑥을 캐다 팔았다. 봄이 오니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포도넝쿨도 정리하고 미꾸라지가 든 통과 잉어와 금붕어가 사는 미니연못에 먹이도 주었다. 길고양이 출신 새벽이가 일하는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자기 머리를 내 다리에 비볐다.

아내에게 장미꽃 모양 사탕을 선물했습니다(자료 사진)
 아내에게 장미꽃 모양 사탕을 선물했습니다(자료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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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후 세면을 하고 나서는데 오늘이 화이트 데이라는 생각이 들어,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에는 대학교 여자 후배가 카운터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사탕을 사자   

"아직도 이런 낭만이 있어요?"   

라며 부러워했다. 속으로 '이런 낭만 정도는 있어야 시인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장미꽃 모양 사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문 근처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와 다른 여자 한 명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하고 나니 아내는 그 여자를 보며

"대파 좀 나누어 주려고요."

라고 한다. 그새 아내는 대파를 나누어줄 생각을 한 모양이다. 퍼주기 좋아하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와, 장미꽃이네요? 오늘 발렌타인데이인가요?"

라고 아내가 말하였다. 화이트데이와 발렌타이데이도 구분을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함께 온 여자가

"오늘 화이트데이이고요,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주는 날입니다. 와, 부러워요."

라는 말을 한다. 갑자기 아내의 어깨가 들썩인다. 한번 '씩' 웃고는

"중부 도서관에 갑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떠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얼굴을 어루만져주었고 부드러운 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행복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쯤 우리 집 마당에는 햇살 받은 장미꽃이 아내의 미소와 함께 반짝이고 있으리라.


태그:#화이트데이, #장미꽃,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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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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