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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리의 염전
 가곡리의 염전
ⓒ 김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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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가곡1리와 2리로 행정구역이 분리된 지 약 40년 만에 두 마을이 가곡리로 통합됐다. 산업단지 확장에 따른 편입지역 주민들의 이주 등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행정구역을 통합하게 된 것이다. 현대제철과 연관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가곡1리 면적의 약 40%, 가곡2리 면적의 약 90%가 산업단지에 편입되며 사실상 마을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마을 뒷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하얀 소금밭 뒤로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해무가 낀 동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았던 이곳의 모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오래전 마을의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들 역시 산업단지에 밀려 떠나갔거나 나이가 들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가곡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가곡리는 꿈에서나 다시 갈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염전에서 일하던 마을 청년들

석문방조제가 건설되기 전, 그리고 산업단지가 들어서며 바다가 매립되기 전 가곡리는 본래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곳이었다. 모래사장과 갯벌이 펼쳐져 있고, 어선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마을이 아름다워 아름다울 가(佳)와 골 곡(谷) 자를 써서 '가곡리'라고 불렸다. 특히 준치, 망둥이, 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이 잡혔던 황금어장이었다.

가곡리 주민들 대부분은 바다 일을 생업으로 삼는 어부였고, 염전이 많아 마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염전에서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칠성 가곡리 노인회 총무는 "옛부터 타 농어촌마을보다 일거리가 많아 청년들이 많았다"며 "염전에서 일하지 않은 주민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마을이 가득 찼을 때도 있었다. 현대글로비스 위치에 자리했던 가동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지난 2006년 유곡초등학교와 통합되며 폐교됐다. 이전까지 가동초등학교는 가곡리 주민들의 긍지이자 자랑거리였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가 학교에서 진행됐고, 주민들이 다함께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낙지잡이했던 성구미와 시루지

바닷가 끝자락에 위치한 성구미는 옛부터 젓갈을 담그는 새우와 간재미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포구였다. 성구미에는 1951년 6.25전쟁 당시 미군 통신부대가 가곡리에 주둔했을 때 시루지 백사장에 간이 비행기 활주로가 있었다고 한다.

시루지는 시루떡 같이 고운 모래가 있다고 해서 시루지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약 2km에 달하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주민들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였다. 시루지 인근 갯벌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해, 동네 주민과 인근지역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망둥어 낚시와 낙지잡이 등을 즐기던 곳이다.

가곡리 주민들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곳은 할매바위다. 이전엔 물질하는 여인들의 약속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물질을 하러가거나 바다에 놀러갈 때 사람들은 "할매바위 앞에서 만나자"는 말을 많이 했단다.

할매바위에는 오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남편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집에 돌아오질 않아서,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어부의 아내가 그 자리에 굳어서 돌이 됐다는 것이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전국 각지에서 무속인들 이곳을 찾아 기도와 치성을 드렸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대제철 등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전설이 얽힌 할매바위 또한 공장부지로 편입됐다.

가곡리 주민이었던 김성창 씨는 "어렸을 때 시루지 백사장에서 주로 놀았다"면서 "마당배라고 불리던 할매바위가 있는데 그 곳에서 밤새도록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6살 때 경기도 연천에서 가곡리로 이사왔다"며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라 추억도 많은데, 마을이 점점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슬프다"고 말했다.

한편 신영개와 두멍개는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굽던 화염소가 일제시대 때부터 운영됐으며, 몇년 전 농촌정보화마을, 허브마을로 지정받아 갯벌체험, 염전체험, 허브체험 등을 실시하며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송산면의 염전
 송산면의 염전
ⓒ 김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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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 횟집들은 마섬으로

현대제철이 들어선 '송산일반산업단지'에 포함돼 공원으로 개발된 성구미는 앞바다가 매립되면서 그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6년 1월 충남도는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송산일반산업단지를 승인했고, 성구미포구 또한 현대제철의 추가확장지역으로 포함됐다.

당시 성구미포구 앞바다까지 매립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공사로 인한 어획량도 크게 줄어 어민들의 근심과 걱정이 컸다. 성구미에 터를 잡았던 횟집들은 석문방조제를 건너 장고항1리의 마섬포구로 이전했고, 성구미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 또한 타 지역으로 이주했다.

소병희 전 가곡2리 이장은 "성구미 포구는 대한민국 100대 아름다운 포구로 선정된 적도 있었다"며 "천연어족자원도 많았고, 어업선진지로 굉장한 발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이 세워지면서 바다가 없어져 어민들이 설 자리가 많이 부족해졌다"면서 "무척 안타깝고 서럽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김명용 가곡리 이장

"당진에서 처음 두 마을 통합"

"두 마을이 통합한 사례는 당진시에선 처음이라고 합니다. 가곡리가 통합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환경문제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충실하게 가곡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민 한 마디

박영구 가곡리 새마을지도자: 가곡1리와 2리가 통합되면서 해야할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주하는 주민들을 포용하며 노인을 공경하는 마을이 됐으면 합니다.

이칠성 노인회 총무: 어릴 적 성구미와 시루지로 소풍을 많이 다녔어요. 바닷가에서 낙지를 잡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때의 가곡리 바다는 생계가 아닌, 심심하면 가서 노는 곳이었습니다.

이순애 전 가곡리 부녀회장: 결혼을 하면서 가곡리에 오게 됐어요. 45년 간 가곡리 살면서 주민들과 함께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많이 노력했어요. 가동초 자모회장을 맡았을 때 김밥을 싸서 아이들과 성구미로 놀러갔던 기억이 선한데, 이제는 그때 그 장소가 기억으로만 남는다니 아쉽네요. 가곡리 주민들은 순진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에요.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소병희 전 가곡2리 이장: 어릴 적 오염되지 않은 갯벌과 모래사장에서 놀던 기억, 망둥이를 잡고 그 자리에서 회를 떠 먹던 시절의 추억이 너무 많아요. 고향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룰 나누면 끝이 없어요. 가곡리 주민들이 환경피해에 고통받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현대제철과 인근 공장이 주민들이 상생하면서 모범이 되는 가곡리가 됐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당진시대 김예나 기자



태그:#당진, #송산, #염전, #가곡리, #마을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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