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의 새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교보문고와 이어지는 광화문역 지하 통로까지 긴 줄이 이어지고 교보문고는 전용 계산대를 만들어 해당 앨범을 판매한다.

계산대 뒤로 앨범이 든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한쪽에선 포토카드 교환이 이뤄진다. 암암리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아예 '포토카드 교환대'란 안내판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질서 있게 포토카드를 교환하게끔 한다.

포토카드의 유혹

워너원 지난 19일 발매한 워너원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앨범 < 0+1=1 (I PROMISE YOU) >의 구성품은 다양하다.

▲ 워너원 지난 19일 발매한 워너원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앨범 < 0+1=1 (I PROMISE YOU) >의 구성품은 다양하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 캡쳐


보통 멤버 개별사진으로 만들어지는 포토카드는 CD 구성품으로 들어가 있는데, 앨범을 뜯지 않고서는 어떤 멤버의 사진이 포함돼 있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선 그 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을 구매하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토카드 교환대'에 가서 원하는 멤버의 것으로 서로 교환한다.

많은 팬들이 온라인 서점 할인까지 마다하고 오프라인 매장까지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선 뒤 CD를 사는 이유다.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도 포토카드 교환을 제안하는 게시물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의 지름신에 불을 붙이는 건 '포토카드'뿐만이 아니다. 아이돌 등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 앨범을 내면, 상당수의 팬들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장을 산 팬들에 한해 팬사인회 입장 자격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앨범의 경우 구성품이 퍼즐 조각처럼 들어 있어서 버전 별로 수집해야 온전한 완성품이 된다.

대부분 최근 아이돌 CD의 구성이 이렇다. 그중 요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워너원의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지난 19일 발매한 워너원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앨범 < 0+1=1 (I PROMISE YOU) >의 구성은 다른 아이돌의 앨범이 그렇듯 여러 장의 CD를 사고 싶은 구매욕에 불을 지핀다. CD는 Day 버전과 Night 버전으로 구성됐고, CD 안에 포토카드와 미러카드, 따조(TAZO) 등이 멤버별(랜덤)로 포함돼 있다.

일단 Day 버전과 Night 버전은 앨범의 커버부터 포토북의 사진까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팬이라면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의상을 입은 Day 버전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트를 입은 Night 버전 둘 다 갖고 싶을 듯하다. 직접 사서 열어보기 전까진 앨범에 속한 구성품이 어느 멤버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추가 구매를 할 확률이 적지 않다.

워너원 지난 19일 발매한 워너원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앨범 < 0+1=1 (I PROMISE YOU) >의 구성품은 다양하다.

▲ 워너원 워너원의 < 0+1=1 (I PROMISE YOU) > 앨범의 구성품인 따조(Tazo). ⓒ 온라인 서점 알라딘 캡쳐


워너원 지난 19일 발매한 워너원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앨범 < 0+1=1 (I PROMISE YOU) >의 구성품은 다양하다.

▲ 워너원 따조를 수집하여 조립하면 이와 같은 모양이 된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 캡쳐


이번 워너원 앨범의 구성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따조(TAZO)'다. 따조는 과거 한 과자 안에 포함돼 어린이들로부터 인기를 끈 바 있다. 따조 여러 개를 모아서 조립하면 입체적 모형이 완성되는, 일종의 퍼즐조각이라고 보면 된다.

워너원 앨범의 따조는 멤버 개인 따조 11장과 단체 따조 1장을 조립해 12면체의 원형을 완성품으로 만들게 돼 있다. 한 CD 안에 멤버 개별 따조 1장, 단체 따조 한 장이 들어 있기 때문에 12장이 아닌 11장의 CD를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아서 모든 구매 CD가 멤버 별로 한 장도 겹치지 않는 경우일 때만 11장이지, 겹칠 경우 더 많이 사야만 완성품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겹치면 겹치는 대로 11장을 사서 원형을 완성할 순 있지만 이왕이면 멤버 11명의 따조를 조립해 완벽한 완성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워너원 앨범 한 장의 정가는 2만 원이며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의 할인가는 1만 6300원이다. 온라인을 통해 저렴하게 산다고 했을 때 11장이면 17만 9300원이다. 이러한 것들이 일종의 '상술'이란 걸 팬들도 잘 알고 있지만 사랑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 많다. 

있어도 또 사고 싶은 리패키지 앨범

레드벨벳 레드벨벳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 레드벨벳 레드벨벳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 온라인 서점 알라딘 캡쳐


포토카드 등 구성품 외에 앨범의 형태 자체에 변화를 줘서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리패키지 앨범이다. 리패키지 앨범은 기존 앨범의 트랙리스트에서 한 곡 내지는 세 곡 정도를 추가하거나 다르게 바꿔 발매하는 걸 말한다. 리패키지 앨범의 경우는 기존 앨범과 동일한 앨범으로 보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른 앨범으로 보기에도 애매하다. 보통은 해당 앨범의 연장선으로 간주된다.

리패키지 앨범 역시 큰 틀에선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판매 전략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사례 또한 많다. 레드벨벳의 경우 지난해 11월 정규 2집 < Perfect Velvet >을 발매했고 석 달 후인 지난 1월에 리패키지 앨범 <The Perfect Red Velvet >을 냈다. 리패키지 앨범에는 정규 2집 수록곡 9곡에 'Bad Boy' 등 신곡 3곡이 추가돼 총 12곡이 담겼다. 이어 2월에는 스마트뮤직앨범인 키노앨범 형태로도 발매됐다. 

앞서 트와이스도 지난해 10월 정규 1집 < twicetagram >을 발표했고 그해 12월에는 이 앨범의 리패키지인 < Merry & Happy >를 발매했다. 리패키지 앨범에는 신곡 'HEART SHAKER'와 'Merry & Happy' 두 트랙이 추가됐다. 하이라이트 역시 지난해 3월 미니 1집 < CAN YOU FEEL IT? > 발표 후 그해 5월 새 노래 두 곡 'CALLING YOU'와 'SLEEP TIGHT'를 포함시킨 리패키지 앨범 < CALLING YOU >를 선보였다.

태연은 지난해 2월 정규 1집 < My Voice >를 발매했고 이후 '11:11'을 비롯한 4곡을 추가하여 총 17트랙으로 구성된 디럭스 에디션을 같은 해 4월 발표했다. '디럭스 에디션'은 용어가 다를 뿐 리패키지 앨범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두 세 곡이 추가되어 새롭게 발매된 리패키지 앨범은 원래 앨범 못지않거나 더 높은 판매고를 올린다. 온라인 서점에 표기되는 세일즈 포인트 수치를 보면 추측 가능하다. 팬들은 그 전 앨범을 구매한 상태라도 리패키지 앨범까지 사는 경우가 많다. 리패키지 혹은 디럭스 앨범은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가 많아 '리패키지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의 구매욕을 부추긴다.

음반 시장 약세, 다양한 판매 전략 꺼내

이러한 팬소비 문화에 관한 질문에 한 가요계 관계자는 22일 오후 <오마이스타>와 한 통화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음원 시장이 확대되고 반면 음반 시장 규모는 축소되기 때문"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음반 제작자들은 어떻게 하면 음반 판매량을 늘릴 수 있을지 다각도로 고민하여 발매 형태나 구성품 등을 전략적으로 구성한다"며 "더불어 팬사인회나 악수회 등을 마련해 가수를 만날 기회를 주며 음반 구매를 유도한다"고 말했다.

한 팬은 다음처럼 분석했다.

"요즘 아이돌 그룹의 수는 옛날에 비해 훨씬 많다. 즉, 파이는 예전과 비슷한데 조각이 늘었으니 한 아이돌에게서 팔리는 CD의 양은 아이돌 수만큼 N분의 1로 줄어야 맞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팬 한 명이 같은 CD를 여러 장 사기 때문이다. 천만영화 탄생은 한 명이 한 번씩 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과 같다. 팬덤이 만 명이라면 한 명당 하나씩 CD를 사서는 돌아갈 수 없는 상업 구조가 됐다. 그걸 아는 제작자들은 다양한 판매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또 다른 한 팬은 "내가 그 스타가 좋아서 돈과 시간을 자발적으로 쓰는 건 내 의지지만 그런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기분 나쁘다"면서 "나는 순수한 팬심인데 걔네에게 나는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지는 게 너무 실감나서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했다. 이어 "팬들의 팬심을 경쟁시키는 거니까... 알고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알게하는 게 기분 나쁘다"라고 덧붙였다.

 6월 4일 오후 서울 성산동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제23회 2017 드림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엑소, 태민, 트와이스, 빅스, 세븐틴, 레브벨벳 등 많은 가수들이 무대를 빛냈다. 5만여 관객이 무대를 꽉 채우며 열띤 함성을 보냈다.

지난해 6월 4일 오후 서울 성산동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제23회 2017 드림콘서트>가 열렸다. 팬들이 객석을 꽉 채운 모습이다. ⓒ 손화신



김생민 탕진잼 포토카드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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