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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무산은 참으로 아쉬웠다. 나는 탄식했다. 단언컨대,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에 갔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다.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는 그 순간에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통탄할 일이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 그 한쪽의 대통령으로서 정말 슬펐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고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부시 대통령 당선이 조기에 확정됐다면, 중동평화회담과 시기가 겹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에는 전혀 새로운 역사가 펼쳐졌을 것이다.

…(퇴임후인 2003년 11월 방한해 김대중도서관으로 찾아온) 클린턴 대통령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제가 1년만이라도 더 대통령으로 있었더라면 북한 위기기 해결됐을 것입니다." (김대중 자서전2, 381쪽)
북한과 미국은 지난 2000년 말에 정상회담 성사 직전 상황까지 갔었다. 그해 6월에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상호 특사'로  방문해 북미 공동코뮈니케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을 계획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00년 DJ의 탄식... 18년 만에 북미 정상회담 성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조속한 만남을 희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후 발표했다. 사진은 1월 8일 앤드류공군기지에서 손 흔들어 인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1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국가과학기술원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조속한 만남을 희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후 발표했다. 사진은 1월 8일 앤드류공군기지에서 손 흔들어 인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1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국가과학기술원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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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8년이 지나, 북한과 미국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대북특사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5월안에 만나겠다"고 즉각 수락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수락은 김 위원장이 정 실장을 통해 보낸 '비핵화'와 핵·미사일 실험 자제의지와 한미연합 훈련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김정은),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트럼프)며 말폭탄을 주고받은 상황과 비교하면 대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해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획기적인 전기라는 점에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한반도에 남아있는 냉전 체제를 해체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1972년에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에 가서 마오저뚱 주석을 만난 뒤 일반대표부를 운영하다가 1979년에 정식 수교했던 것처럼, 이번에 정상회담이 잘 되면, 미국과 북한이 수교 관계 직전까지 갈 수 있다"면서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까지 하고나면 6자회담 재개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 북한 국제무대 공개...더 이상 악마화 어려울 것"

실제 북한과 미국이 정식 국교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은, 1953년에 맺은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뜻한다. '잠시 총을 내려놓은' 휴전 상황에서 국교정상화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은, '시진핑-김정은 회담'보다 훨씬 국제적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가 될 것이고,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김정은과 북한이 국제무대에 공개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만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김정은과 북한을 악마화하고, 나쁜 딱지를 붙이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미국과 한국의 반공냉전세력이 악의적으로 북한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행태를 반복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1985년에 영국 대처 수상이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처음 만난 뒤 레이건 대통령에게 '고르바초프는 비즈니스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레이건-고르바초프 회담이 열리게 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냉전 해체가 시작됐는데, 당시 회담 내용보다 만남 자체가 주는 효과가 더 컸다"며 "4월말 남북정상회담에 바로 이어지는 5월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질서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 공포심·핵무력 완성 자신감 공존"...문 정부, 한반도 운전대 확실하게 잡아

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면담결과 공동브리핑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5일부터 이틀간 방북한 뒤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면담하고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와 북미대화 등과 관련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백악관 면담결과 지켜보는 시민 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면담결과 공동브리핑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5일부터 이틀간 방북한 뒤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면담하고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와 북미대화 등과 관련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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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국제 경제제재에 대한 압박․공포심과 미국과의 회담에 대한 자신감이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북은 '핵무력 완성'을 통해 미래의 핵, 현재의 핵, 과거의 핵이라는 3가지 카드를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에 정상회담 합의를 위해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미래 카드'를 던졌고, 이후 미국과의 정상회담 과정까지 '현재 핵' 능력에 대한 '검증' 문제를 갖고 줄다리기를 하게 될 것"이라면서 "북이 이미 완성해놓은 핵·미사일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때까지, 즉 마지막에 확신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고수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 합의를 계기로 북한과 미국은 '탐색적 대화'과정 없이 바로 본대화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상회담 요청을 바로 수락하는 특유의 과시욕을 나타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선거 유착 의혹으로 위기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 내놓을 수 있는 큰 업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운전대를 잡게 됐다. 북한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미국까지 설득해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냈기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  6월부터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을 연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그:#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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