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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단톡(단체카톡) 방에 아들 아이가 보낸 사진과 메시지가 떴다. 사진은 생후 2개월 조금 넘겠다 싶은 아기 고양이었다.

"3색(검정, 노랑, 흰색)이 암놈이야. 귀엽지?"
"생명 하나 거두는 거 쉽진 않아. 데리고 왔으면 끝까지 키워야 해."
"너 학교 가면 종일 혼자 있겠네."
"이름 뭐라고 할까?"
"삼색이, 삼순이, 얼룩이..."
"네 이름 가운데자 넣고 길냥이였으니까 '상냥'이로 해~"

식구들 작명센스는 비슷비슷했다. 이후 그 길냥이는 '상냥'이가 되었다. 상냥이는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아들 아이의 원룸에서 이틀을 울었단다. 어미를 잃었는지, 아니면 어미가 떼놓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기온이 내려간 찬 밤에 애달프게 우는 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식구가 된 재롱이와 뚱이의 유묘시절
▲ 재롱이와 뚱이 한 식구가 된 재롱이와 뚱이의 유묘시절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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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고양이(뚱이)는 반항하듯 한동안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입을 벌려 '하~악' 댔다.
▲ 재롱이와 뚱이 검은고양이(뚱이)는 반항하듯 한동안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입을 벌려 '하~악' 댔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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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이 된 재롱이와 뚱이는 항상 붙어다녔다.
▲ 재롱이와 뚱이(형제묘) 청소년이 된 재롱이와 뚱이는 항상 붙어다녔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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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천 시골에서 생협활동가로 일할 때였다. 조합원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한 날, 우리 집을 둘러보며 누군가 말했다.

"여기는 고양이가 꼭 있어야겠어요!"

그 말에 나는 '괜찮다'고 했다. 우린 마당 넓은 널따란 외딴집에 이미 개 두 마리를 키우고, 닭장에 수탉 한 마리와 암탉도 십여 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는 내게 전혀 낯선 의외의 동물이었고 일단 무서웠다. 그 조합원이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동네 아는 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지금 분양중이거든요. 한 달 조금 넘었어요. 저두 처음에 별루 좋아하지 않았어요. 키우다 보면 생각이 달라져요. 그리고 여기 쥐 많죠? 걔네들(고양이) 데리고 오면 쥐는 눈에 띄게 줄어요. 쥐 잡으면 현관 문 앞에 갖다놔요. 그게 밥 줘서 고맙다고 보은하는 거래요. 그거 보고 놀라서 야단치지 말고 칭찬해줘야 더 잘 잡아요."

나는 정말 괜찮다고, 쥐가 좀 무서워도 쥐가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튿날, 그 조합원은 내가 막 퇴근하기 몇 분 전에 정말 고양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어머나!! 정말 데리고 왔어요?"
"네~ 한 번 보실래요?"

과일박스보다 조금 작은 상자를 조합원이 열었다. 그곳엔 두 마리 새끼 고양이가 서로 엉겨 꼼지락대고 있었다. 한 마리는 회색빛 줄무늬였고 또 한 마리는 완전 검은 고양이었다.

"앗, 두 마리에요?"
"네~ 한 마리는 너무 외롭고 같이 있어야 서로 잘 커요. 얘네들 둘 다 수컷이구요, 여기 사료도 충분히 넣어 왔어요."

아아... 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씩이나.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 젖도 채 안 떨어진 새끼고양이 두 마리는 그 날부터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검은 고양이는 집에 온 날부터 뭔가 불만스러웠다. 만질 때마다 입을 크게 벌려 저항하듯 '하~악' 거렸다. 윤기 없이 까칠한 털을 곤두세우며, 경계를 풀지 않은 뚱한 표정으로 구석을 파고드는 검은 고양이와 달리, 회색 줄무늬 고양이는 사람 손을 즐기듯 호기심을 보였다.

검은 고양이는 그래서 '뚱'이로, 회색 줄무늬 고양이는 '재롱이'가 되었다. 재롱이와 뚱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둘 다 완전 100프로 재롱둥이가 되었다. 우리가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려면 둘이 어느새 앞장을 섰다. 어디 그 뿐인가, 조합원이 이미 예견했던 대로 아침마다 생쥐를 잡아 전시하듯 자기의 '전리품'을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재롱이와 뚱이가 좀 더 자란 어느 겨울, 살짝 언 생쥐를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완전무결하게 먹어치우는 걸 보았다. 그걸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양이는 육식성 동물이란 걸 새삼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가 제철에 과메기를 먹듯 재롱이와 뚱이가 생쥐를 먹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혼자 호들갑을 떨었구나 싶었다. 재롱이와 뚱이는 주차하는 창고의 한 귀퉁이에 거처했다. 추수가 끝난 집 앞의 논두렁이나 흰 눈이 내린 밭둑에는 검은 공처럼 통통 튀어 오르거나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는 뚱이가 있었다. 뚱이 옆에는 재롱이가 항상 붙어있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우리는 이 외딴집에서 일 년 반을 전세로 살다가 다시 이사 갈 계획이 있었다. 집을 내놓고 바로 빠질 수 있을까도 문제였지만, 개 두 마리, 닭,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재롱이와 뚱이를 돌봐줄 사람이 세입자로 연결되기를 기원했다.

우리는 사정상 이런 외딴 집과 텃밭이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왔지만, 또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조합원인 또 다른 분이 게임에 열중하는 사춘기 아들에게 이런 정서적인 환경이 필요하다면서 연이 닿았다. 또 키우는 동물들도 생명이니 다 받고 싶다고 했다.

근데, 개는 묶어놓고, 닭은 닭장에 있다지만 재롱이와 뚱이가 걸렸다. 그래도 집 안에서 애완묘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우리가 떠나도 재롱이와 뚱이가 거처하는 곳은 창고이기 때문에 그리 문제될 것은 없었다.

"창고에 사료와 물만 넣어주면 재롱이와 뚱이가 알아서 먹어요."

우리는 재롱이와 뚱이가 즐겨먹는 사료 한 푸대를 구입해서 이사 들어올 그 분에게 건네며 부탁했다.

이삿날, 재롱이와 뚱이는 햇살이 퍼지는 담벼락에서 졸고 있었다. 둘은 언 생쥐를 먹을 때 옆에서 소리치는 내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었을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자 오히려 귀찮은 듯, 거불거불한 눈꺼풀이 떠지는가 싶더니 이내 덮였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마디쯤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니들 서로 잘 지내~ 우린 오늘 이사가. 재롱아, 뚱아! 그동안 많이 웃게 해줘서 고마웠어."

        다소곳하고 상냥스러운 상냥이
▲ 상냥이 다소곳하고 상냥스러운 상냥이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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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상냥이. 방을 치우려고 하자 먼저 자리잡고 앉아있다.
▲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상냥이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상냥이. 방을 치우려고 하자 먼저 자리잡고 앉아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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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명절이 낀 긴 연휴에 아들 아이는 상냥이를 대전 집으로 아예 데리고 왔다. 밖에서 키우던 재롱이와 뚱과 달리 상냥이는 지금 '개냥이'로 변신하는 것 같다. 식구들이 오는 발작 소리에 귀를 모으고 현관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마중한다. '니야~옹'(반가워용~)하며 꼬리를 바짝 들어 올려 자기 기분을 표현한다. 식구들마다 순위가 매겨졌는지 반응하는 소리가 다 다르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릎은 제 차지다. 간식으로 캔을 따는 소리는 귀신처럼 듣는다. 맑은 날, 따스한 빛이 드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상냥이가 때론 안쓰럽다.

상냥이는 베란다를 들쑤셔 먹물로 생쥐색깔과 비슷해진 털 굵은 서예 붓을 안방으로 물고 온다. 본능일까? 문득 재롱이와 뚱이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유어스테이지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고양이, #재롱이, #뚱이, #길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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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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