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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빙벽에 덮인 구천폭포. 인간 세상에는 봄이 턱밑까지 이르렀는데 신선세계는 아직도 엄혹한 겨울이다.
▲ 제11회 ‘한국산서회와 함께하는 인문산행' 거대한 빙벽에 덮인 구천폭포. 인간 세상에는 봄이 턱밑까지 이르렀는데 신선세계는 아직도 엄혹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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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조계동 구천폭포에서 약 4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송계별업(松溪別業)' 바위글씨가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자인 한국산서회 조장빈 인문기행 팀장은 지난 3일 열린 <제11회 한국산서회와 함께하는 인문산행>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구천폭포를 찾아 이 같은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조계동 구천폭포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 김이만(金履萬)이, "물줄기는 비단을 걸쳐 놓은 듯 하고, 우렁찬 소리는 천둥이 몰아치는 듯하며, 포말은 싸락눈이 흩뿌리는 듯하다."라고 극찬할 정도로 일찍부터 동방의 여산 폭포(廬山瀑布)로 일컬어져 왔는데, 서기 1646년에 인조의 3남이자 효종의 아우인 인평대군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그 이름을 송계별업松溪別業)이라고 했다.

열한 굽이 폭포 중허리를 가로질러 돌로 된 무지개 다리를 세우고 보허각(步虛閣), 영휴당(永休堂 )등의 누대를 지어 바람을 읊고 달을 희롱하며 소요음영하니, 이후 약 100년 동안 송계별업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유상지(遊賞地)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보허각, 영휴당 등의 여러 누대와 돌다리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무너지면서 송계별업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송계별업 우측으로 구천은폭 바위글씨가 보인다.
▲ 송계별업 바위글씨 송계별업 우측으로 구천은폭 바위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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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송계별업의 유적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폭포 상단 암벽에 새겨진 '구천은폭(九天銀瀑)' 바위글씨가 유일할 뿐, 나머지 흔적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 서기 1674년 이곳을 방문한 미수 허목의 「갑인기행」에 송계별업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어 옛 모습을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금상[현종] 15년(1674) 5월 임진일에 도성문을 나와서 대흥불우(大興佛宇)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 절은 대궐 동북쪽 석록소동(石麓小洞)에 있으며, 금상의 숙부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조계동(曹溪洞) 별업(別業)이었다. 대흥불우 아래 석계(石溪)에는 계당(溪堂)이 있으며 계당 앞에는 두 개의 돌다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데에 있는 것을 비홍지교(飛虹之橋)라 한다. 이 홍교(虹橋)를 지나면 석정(石亭)이 있는데, 아스라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다리 위로 멀리 폭포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이 구천(九天)에서 떨어지는 것 같으므로 '구천은폭(九天銀瀑)'이라 새겨놓았다. 폭포 옆에는 '송계별업(松溪別業)'이라 새겨져 있으며, 돌다리 아래위에 또 '창벽(蒼壁)'과 '한담(寒潭)'이란 두 단어를 크게 새겨 놓았다. 산 너머로 펼쳐진 너른 들과 평평한 개천을 멀리 바라보니 절경이었다."(허목의 「갑인기행」)

위 「갑인기행」에 등장하는 바위 글씨 중에 '구천 은폭'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그 소재를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한국산서회 조장빈 인문기행팀장이 '송계별업' 바위 글씨를 찾아냄으로써 인평대군의 조계동 별서 연구에 진일보한 단초를 놓은 것이다.

'송계별업' 바위 글씨는 구천은폭 바위글씨를 바라본 상태에서 왼쪽 암벽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장빈 팀장은, "송계별업 바위글씨 발견을 통해 인평대군의 조계동 별서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활발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관할지자체의 보존 대책 수립과 함께, 역사와 문화유적이 살아 숨 쉬는 서울 도심의 명승으로 구천폭포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라고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조장빈 팀장이 이끄는 한국산서회 인문산행은 매월 첫주 토요일에 진행되며 주로 서울 인근의 명산대천을 찾아 선인들이 남긴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한국산서회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태그:#구천폭포, #구천은폭, #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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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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