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치 우리나라 작가처럼 익숙하다. 그의 새 작품이 출간되면 바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출간한 작품들도 언제나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곤 한다. 

왜 히가시노 게이고일까? 우선은 1885년 <방과후> 이후 2018년 <연애의 행방>까지 밥 먹고 글만 쓰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들 정도로 20년간 35편의 작품을 쏟아낸 작가의 성실한 작품 활동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백야행>이나 <용의자 X의 헌신> 등 범죄 스릴러는 물론, <연애의 행방>처럼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그대 눈동자에 건배> 등 단편에 담긴 SF, 블랙 코미디, 심리 서스펜스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작가이다.

사회비판적 시선이 담긴 본격 사회파 소설에서 부터 '팝콘 무비'와도 같은 소소한 흥미 위주의 소설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종횡무진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기억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범죄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젠 다르게 기억하게 만드는 작품이 등장했으니 바로 다수의 독자가 '인생 책'이라 평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수 c&e


물론 <나미야 잡화점>에도 범죄가 등장한다. 한밤 중 어느 집에서 가방을 훔쳐 나온 듯한 세 소년. 추적을 피해 차를 타고 도망치려던 소년들은 낡은 차가 고장나자 폐점한 '나미야 잡화점'으로 피신한다. 이야기는 판타지로 이어진다.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잡화점. 그곳에서 소년들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 주인의 낡은 물건들을 뒤적거리다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무료 상담을 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그때 낡은 상점의 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생각지도 못한 사연 한 장이 도착한다.

나미야 잡화점에서 만난 과거와 미래의 청춘들

세 소년이 살던 2012년과 나미야씨가 상담 편지를 써주던 1980년(소설 속에서는 1979년)은 이렇게 만난다. 또 늙수그레한 잡화점 아저씨 나미야와 아키코 아가씨의 청춘이 엇물린다.

원작에서 아키코 아가씨네 공장의 기계공이었던 나미야. 아키코네 일꾼인 그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의 도피는 실패로 끝난다. 미래에서 온 세 청년에게 편지를 보낸 생선가게 뮤지션. 그는 대학마저 포기하고 음악의 길을 걸으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음악의 길은 쉬이 열리지 않고, 생선가게를 홀로 짊어진 아버지의 건강마저 위태롭다. 그린 리버의 사정도 막막하다. 아이를 가졌지만 홀로 어렵게 아이를 낳아서 키워나갈 자신이 없다. 또 다른 여성 길 잃은 강아지 하루미는 자신을 키워준 은인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낮엔 직장에 나가고 밤엔 술집 여급으로 일하지만, 더 많은 돈을 위해 현실과의 타협을 고민한다. 그리고 세 청년들은 '부모가 없어서, 혹은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현실에 대한 좌절을 겪는 중이다.

영화와 소설은 이렇게 젊은 나미야를 비롯하여 1980년의 청춘, 그리고 2012년의 청춘들을 '나미야 잡화점'을 통해 조우하게 한다. 이는 좌절한 청춘의 시대를 사는 현재 일본으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청춘 비망록이기도 하다. 저성장 시대를 통과하며 가장 큰 희생을 겪은 일본의 청춘들은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프리터족'과 '니트족'으로 살아가며 사회적 부담이 되고 있다.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꿈을 잃은 오늘의 젊은이를 위무하기 위해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자기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던 청춘들을 불러온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판타지적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벌어진 시공을 건너는 상담을 통해 청춘들의 절망을 다독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독임에는 과정상의 좌절과 실패라는 통과 의례가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나미야잡화점의기적

나미야잡화점의기적 ⓒ 이수 c&e


히가시노 게이고의 멘토링 

어쩌면 한 사람의 생애는 보잘 것 없거나, 때론 좌절과 실패로 점철될 지 몰라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삶은 그 자신이 아니더라도, 세상 속에 '빛'이 될 것이라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강변한다. 일본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글을 써온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청춘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폐점된 잡화점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판타지적 장치, 거기에 '상담'이라는 절묘한 카운셀링을 통해 오늘의 청춘을 설득한다. 영화는 거기에 더해, 마루코헨의 말썽꾸러기들이었던 세 청년이 판타지 경험을 통해 각자 삶의 행로를 제대로 찾아가는 꽉 닫힌 결말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멘토링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우리 나라에서 붐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의 영화화답게 꽉 찼던 영화관. 판타지적 설정이나 극적인 장치에 취약한 일본 영화답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소설만큼의 짜릿한 절정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소설 속 생선가게 뮤지션의 음악이 스크린에 현현되는 그 '실사'의 장면만으로도 소설을 봤던 독자들은 소설의 여운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ost reborn 가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ost reborn 가사 ⓒ 이수 c&e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수 c&e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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