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8년 월드컵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다. 석 달 뒤인 6월 15일 오전 0시(한국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한 달 간의 축구 축제에 빠져든다.

'세계인의 축제'로 불리는 월드컵이지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참가국들의 속내는 다르다. 월드컵은 자국의 축구 실력을 전 세계 앞에서 검증 받는 '시험의 장'이다.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기쁨보다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을지가 참가국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한국 대표팀도 여느 참가국과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절대적인 약체지만 16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치열히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는 부족한데 대회 개막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표팀급 선수들 중 다수가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기에 과거처럼 잦은 대표팀 소집은 불가능하다. 3월에 예정된 두 번의 평가전이 '옥석 가르기'의 마지막이다. 3월에 있을 두 번의 평가전을 토대로 신태용호의 월드컵 멤버 선발은 사실상 종결된다.

'공격수 풍년' 신태용호

월드컵 본선에 참가할 선수단을 꾸리는 일은 쉽지 않다. 월드컵은 국민 전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대회다.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대회인데 전력이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기에 더욱 고민이 많다. 때문에 선수 선발에 있어서 그 어느 대회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

현재 신태용 감독이 선수 선발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고민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바로 중앙 수비수에 대한 고민이다. 한국은 근 2년 간 수비 라인에 대해 심각한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전임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시절부터 계속된 근심이다. 대표팀은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10골을 내주며 역대 가장 많은 실점을 허용했다.

그중에서도 중앙 수비수에 대한 고민이 깊다. 풀백 자리에서는 김진수, 최철순 등 비교적 신뢰할 만한 자원들이 등장한 반면 중앙 수비수 중에서는 김민재만이 믿음을 주는 편이다. 이제 프로 2년차인 김민재가 벌써부터 팀의 핵심 수비수로 낙점받았을 정도로 한국 수비진은 단단하지 못하다. 월드컵 본선까지 이어질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한편 신태용 감독이 행복한 고민에 빠진 부분도 있다. 바로 풍부한 공격수 풀(pool)이다. 신태용호는 근래 찾아볼 수 없는 '공격수 풍년'에 있다. 월드컵 본선에 나설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이 대거 존재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월드컵 멤버로 거론되는 선수들이 실제로 월드컵 본선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신태용호가 내세울 만한 지점이 공격진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이 믿는 가장 날카로운 창은 단연 손흥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강호인 토트넘 홋스퍼에서 팀 내 득점 2위로 당당히 공격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팀을 뛰어 넘어 EPL 득점 순위에서는 웨인 루니, 알바로 모라타와 함께 랭킹 10위에 위치할 정도다. 손흥민은 어느덧 EPL을 대표하는 영향력이 높은 공격수로 성장했다.

손흥민의 비견될 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오스트리아 리그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황희찬의 몸상태도 긍정적이다. 황희찬은 올 시즌 리그에서 총 4골을 잡아냈다. 공격수로서 많은 수치는 아니다. 다만 부상 기간이 있었고 컵대회와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 등의 기록까지 더하면 시즌 전체 11골까지 늘어난다. 어린 나이를 감안했을 때 훌륭한 수치다.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먼저 지난 시즌 강원FC의 에이스 역할을 자처했던 이근호가 가장 앞서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량과 순도 높은 득점력으로 K리그를 뒤흔들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손흥민과 찰떡궁합을 과시하면서 주요 자원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경기. 이근호의 슛이 골대를 빗나가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경기. 이근호의 슛이 골대를 빗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이근호가 잠시 주춤한 사이 '거인' 김신욱이 급격히 부상했다. 지난해 말 열린 2017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3골을 팀에 선물했고, 지난 1월 터키에서 있었던 국가대표팀 전지 훈련 기간 A매치 3경기에서 4골을 쓸어 담았다. 최근 A매치 6경기에서 무려 7골을 잡아냈다.

김신욱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 받기 무섭게 전북 현대의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2018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부터 멀티골에 성공한 이동국은 2차전 키치SC와 경기에서도 1골을 추가했다. 이어서 2018 K리그1 개막전 울산 현대와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막판에 넣은 골까지 합하면 전북 유니폼을 입고 7경기 연속 득점이란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장으로 선발보다는 후반 교체 자원으로 경기에 투입됨에도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소개한 선수로도 공격수 후보는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 리그1의 트루아 AC 소속의 석현준과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는 지동원도 고려 대상이다. E-1 챔피언십에서 점검 받았던 포항 스틸러스의 김승대나 제주 유나이티드의 진성욱 등도 리그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면 선택받을 일망의 가능성이 있다.

풍부한 공격진의 활용 가능성

각기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상대팀 수비의 약점을 파고들기 적합한 공격수를 다양한 카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감독들은 여러 유형의 공격수를 보유하길 원한다. 일단 신태용 감독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신태용 감독이 선택한 한국 대표팀의 '플랜 A' 포메이션인 4-4-2 전형에는 공격수가 두 명밖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자리는 큰 부상이 없는 한 손흥민의 자리가 될 것이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남은 선수들이 싸우는 형국이다.

월드컵 본선에는 팀당 23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FIFA가 정한 규정상 3명은 무조건적으로 골키퍼 포지션의 선수가 포함되어야 한다. 필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자리는 스무 자리인데, 통상적으로 한 포지션에 2명의 선수씩을 선발한다. 즉, 한국 대표팀 공격수 중 네 명만이 러시아 땅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들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음을 감안하면 공격수가 네 명만 선택받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면 굳이 한 포지션에 두 명씩에 선수를 데려가기보다 공격수를 다른 포지션의 선수보다 다수 데려가는 선택은 어떨까. 쉽게 말해 공격수 포지션의 선수를 5~6명 엔트리에 포함시키자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월드컵에서 절대적인 약소국이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문제는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끈적이는 수비와 기습적인 역습이 신태용호의 주요 테마지만 남은 기간 동안 단단한 수비력을 갖추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짧은 기간 안에 수비력을 극대화하려면 고정된 수비 자원이 변동없이 경기장에 투입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격진은 다르다. 공격수 사이의 호흡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수비보다는 단기간에 호흡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여러 유형의 선수를 본선 무대에 데려가도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월드컵에서 한국에 필요한 부분은 변수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플레이로는 상대의 견고한 수비에 흠을 낼 수 없다. 능력 있는 상대 선수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플레이 패턴이 필요하다. 변수를 창조하는 선수는 후방보다는 전방 지역에 있는 선수가 안성맞춤이다. 다양한 유형의 공격수가 절실한 이유다.

이제는 신화가 된 2002 한·일 월드컵이 힌트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의 명단을 다시 살펴보면 특이하다. 가분수에 가깝다. 수비적인 선수보다는 공격적인 자원이 월등히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전문적인 수비수는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이민성, 현영민 등 소수에 불과하고 황선홍, 안정환, 박지성, 이천수, 차두리, 설기현, 최태욱과 같은 공격수가 필드 플레이어의 1/3을 구성했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알다시피 대성공을 거뒀다. 황선홍과 안정환이 번갈아 상대에 따라 선발로 나섰고, 박지성을 고정으로 설기현과 이천수가 상황에 맞춰 각자 혹은 함께 경기장에 투입됐다. 여기에 차두리가 특급 조커로 추가됐다. 히딩크 감독의 비대칭적인 전술은 16강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결실을 맺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은 무려 여섯 명의 공격수를 동시 기용했고, 안정환의 연장전 골든골로 전설을 썼다.

곳곳에 존재하는 '멀티 플레이어'

히딩크가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대표팀에 '멀티 플레이어'들이 많았던 덕이다. 동점골을 위해 김태영, 김남일, 홍명보가 차례대로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로 교체됐다. 빠진 선수들의 자리는 기존에 선발로 나섰던 선수들이 메웠다. 유상철은 홍명보에게 주장 완장을 이어받아 중앙 수비수로 위치를 변경했고, 이영표와 박지성은 왕성한 운동량으로 중원과 후방을 커버했다. 멀티 플레이어들의 숨은 헌신이 이탈리아전에 있었다.

현재 한국 대표팀 자원 중에도 멀티 플레이어 성향을 가진 선수가 많다. 예전보다 포지션에 대한 경계가 상당 부분 사라진 점을 고려해도 유능한 멀티 플레이가 꽤나 존재한다. '에이스' 손흥민은 최전방 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위협적이다.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로 유력한 황희찬과 이근호도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다.

 15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34라운드 전북 현대와 서울 FC의 경기에서 서울 고요한과 전북 최보경이 볼 다툼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15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34라운드 전북 현대와 서울 FC의 경기에서 서울 고요한과 전북 최보경이 볼 다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드필더로 간주되는 구자철과 이재성, 권창훈도 마찬가지다. 세 선수는 공격 2선 모든 위치에 배치가 가능하다. 특히 이재성과 권창훈은 신태용 감독 지휘 아래에서 측면을 기반으로 활약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로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대들보' 기성용과 콜롬비아전 깜짝 활약을 보여줬던 고요한 등도 다양한 포지션에서 기복없이 활약한다.

컨디션 좋은 전문 공격수들을 다수 뽑아도 무리가 없는 이유다. 월드컵 엔트리에 동일 포지션 2명 선발 원칙의 이유는 부상과 컨디션 저하 등으로 한 선수가 나설 수 없을 때를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멀티 자원이 많다면 굳이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부상으로 인한 공백은 그라운드에 있는 멀티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채우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0-1로 뒤진 상황에서 선발로 나선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상을 당했다면, 동점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교체 선수로 비슷한 유형의 수비적인 미드필더를 넣는 선택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부상 선수의 자리는 허리에서 활약이 가능한 다른 선발 자원에 대체하고 교체 카드는 동점을 위한 공격적인 자원 투입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합당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선택이다.

냉정히 보자면 한국이 본선 무대에서 무실점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한국의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본선 총 31번의 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는 단 5번에 불과하다. 2002년 대회에서 나온 3회의 무실점 경기를 제외하면 고작 2번에 그쳤다. 실점을 허용한 26경기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한 경기는 1998년 대회 멕시코전과 2014년 대회 러시아전이 유이하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1월 터키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대표팀 소집 명단 발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1월 터키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대표팀 소집 명단 발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대부분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얻어 맞고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본선에서 한국의 후반 막판은 동점골을 위한 사력의 시간이다. 패배는 곧 탈락을 의미하는 단판 토너먼트 월드컵에서 다수의 공격수를 투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이다. 신태용 감독이 반드시 풍족하고 특색있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물론 공격수를 몇 명을 데려가냐는 문제보다 시급한 사안은 수비 안정이다. 수비 라인이 구축되어야 공격수들이 수비보다 공격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수비가 흔들리는 팀에 다수의 공격수가 투입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패할 공산만 크다.

이를 모를리 없는 신태용 감독은 본선 시작 직전까지 수비 라인 안정을 위해 혼신에 힘을 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선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남은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한국에는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변수가 필요하다. 다양한 공격진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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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엔트리 월드컵 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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