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을 나온 후로 무던히도 잊으려 했던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피해 당사자들이 가장 먼저 힘을 냈고 변호인단이 꾸려졌고 저희를 지지해주는 여성단체들이 모여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직도 저희의 행동을 지켜보며 망설이고만 있는 많은 피해자분들이 계신 걸 압니다. 괜찮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연극인 김수희)

"저는 무섭지만 이런 후배들, 그리고 동료들을 대신해서 어렵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 이제서야 말하냐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세요. 주목받고 싶었냐고 묻지 마십시오.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연극인 홍선주)

"미투 운동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 후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대답은 '그때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일들이 상처입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혼자만의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치유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연극인 이재령)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지영


피해자들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 앞에 서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고 목소리를 냈다. 최초로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에 대한 '미투'를 외쳤던 연극인 김수희씨는 "이 자리가 힘들겠구나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다"며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준비해 온 글을 모두 읽어내렸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을 5일 오전 서울 서초동에서 열었다. 전국 성폭력상담소 128개소가 주최한 이날 자리에는 연극계 성폭력 피해자로서 '미투' 운동에 동참했던 배우들을 비롯해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구성원들과 공동변호인단이 참석했다.

'이윤택 사건' 피해자들 17명은 지난 2월 19일 이윤택의 '성폭행 부인' 기자회견이 끝난 뒤 조심스럽게 만남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변호인단이 꾸려진 다음 피해자들 중 16명은 공동으로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어 지난 2일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피해자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씨는 "이윤택씨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많은 피해자들이 '미투'를 했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면서 공대위를 통해 앞으로 미비한 부분을 제대로 정비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공동변호인단의 이명숙 변호사는 "101명의 변호사들이 어떻게 모이게 됐느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근절을 위해 처음에 6명의 변호사가 모여 공동 변호인단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주변에 도움을 호소했는데, 단 하루 만에 해당 사건 해결에 관심이 있는 101명의 변호사들이 연차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모이게 됐다"며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는 평생 동안 갖는 트라우마다"라며 국회를 향해 "이를 근절하기 위해 당을 초월한 위원회를 만들어 공소시효나 2차 피해의 문제 등을 논의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사회 적폐 중의 적폐인 성폭력을 청산하는 기로에 섰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지영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사법부를 향해 "가해자는 사건 초기 범행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범행을 부인하거나 피해자와 합의된 관계였음을 강조한다. 그 통념을 넘지 못하는 수사 과정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침해에 큰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는 사회 적폐 중의 적폐인 성폭력을 청산하는 기로에 섰다. 인권을 실현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27년째 여성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은 처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왔지만 그간 듣지 않았던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듣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명예훼손이나 무고죄와 같은 가해자들의 반격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과제가 남아있다. 공대위는 피해자 지원과 함께 성문화를 바꿔나가는 활동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향후 변호인단을 포함해 공대위는 '이윤택에 의해 권력형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공표했다. 그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101명의 공동변호인단에서 상의해 결정을 해나갈 예정이며, 성폭력 피해 공소시효 폐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공대위는 "어떤 통로로든 피해자에 대한 협박이나 강요를 할 경우 민·형사상으로 대응을 할 것"을 강조했다.

공대위는 이어 "또 다른 문화예술계 피해자들이 법적인 도움을 요청할 경우 추가적으로 대응하겠다"라며 "비단 공대위가 이윤택 사건에만 국한되진 않는다(이미경 소장)"라고 덧붙였다.

공대위 미투 운동 이윤택 성폭력 피해자 공소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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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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