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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 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 강우일 주교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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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박탈할 권리는 없다. 설사 국가라 해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마음대로 제약할 권리는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가 본적이 있다. 이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나는 제주4·3을 떠올렸다. 규모와 양상은 다르지만 인간을 집단 학살했다는 점, 정당한 법적인 절차 없이 무차별 학살했다는 점, 거의 인종청소에 가까울 정도의 대규모 학살이었다는 점, 그 모든 과정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저질러졌다는 점, 그리고 주변 대부분의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는 사람들이 있어도 침묵을 지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

이런 점에서 아주 유사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통해 인류는 역사 속에서 한 가지 크게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고귀한 가치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박탈할 권리는 없다. 설사 국가라 해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마음대로 제약할 권리는 갖지 못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제주4·3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사적 가르침을 주는 배움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4·3은 아무리 국가 공권력이라고 해도 국민의 생명권을 결코 짓밟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무리 국가 안보라는 거창한 근거를 내세워도 국민의 생명이 국가에 우선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기본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정부와 국가는 결코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4·3은 우리에게 명백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나라의 현대사에서 4·19의거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서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 가치가 국가나 정부의 권력이 갖는 가치에 우선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4·3 또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인간 생명과 그 기본권의 숭고한 가치를 깨우쳐준 사건이었다.

제주의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삼아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의 억울한 희생을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죽음이 되고 만다. 수많은 무고한 피에 물든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려는 것은 그 희생자들의 무덤을 다시 한번 군홧발로 짓밟는 행위요,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다.

4·3으로 희생된 우리 선조들이 흘린 피만큼 그 후손인 우리들은 그만큼 더 철저히 폭력을 거부하고 무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평화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4370신문>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제주4.3, #4370신문, #4.3사건, #강우일,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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