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여정을 끝마쳤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선 과거 올림픽을 소재로 흥행과 비평에 성공했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404만 관객 동원)과 <국가대표>(848만 관객 동원) 못지 않게 영화화 되도 좋을 만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 귀화 선수들의 이야기부터, 스켈레톤이 주는 공포감에 한때 포기하려고 했던 윤성빈 선수의 금빛 스토리, 비인기 종목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예상밖의 은메달을 따낸 4인승 봅슬레이 팀의 이야기 그리고 대한민국 설상 종목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차지한 배추보이 이상호 선수의 이야기까지. 올림픽 내내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만큼 극적이고 감동적인 소재들이 많이 엿보였다. 그중에서도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로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감동의 명승부를 펼쳐준 이상화와 고다이 라 나오의 이야기다. 자국 땅에서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한국의 '빙속 여제' 이상화와 독보적인 기량으로 국제대회 24연속 우승을 달성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의 대결. 이 둘의 라이벌전은 충분히 영화화 되어도 될 만큼 매력적이다. 그녀들의 맞대결은 단순히 한일전이라는 기본 포맷 말고도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상화 vs. 고다이라, 빙속 여제 두 사람의 경쟁과 우정

 이상화 선수가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서 경기를 마치고 기록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경기를 마친 일본 고다이라 선수가 다가와 손을 잡고 있다.

이상화 선수가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서 경기를 마치고 기록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경기를 마친 일본 고다이라 선수가 다가와 손을 잡고 있다. ⓒ 이희훈


우선 이상화는 올림픽 2연패는 물론 세계 기록을 보유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부상 회복 이후 무섭게 치고 올라온 고다이라와의 대결에서 모두 패하면서 오히려 도전자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3연패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는 그녀를 중압감 속에 몰아 넣었다.

늦은 나이에 네덜란드 유학까지 감행하여 고된 시간을 보낸 뒤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고다이라 나오의 상황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올림픽 일본 여자 빙속 최초의 금메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이고 2018 평창올림픽 일본 선수단 주장을 맡게 된 그녀는 올림픽 선수단 주장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일본의 올림픽 저주도 깨야 했다. 게다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스케이트를 탔던 친구 스미요시 미야코가 대회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은 올림픽 시작 전부터 양국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서로를 의식 할 수밖에 없는 인터뷰 질문을 받아야 했고 실제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월 18일 결전의 날. 같은 조는 아니지만 고다이라 나오는 14조, 이상화는 15조에 배정되며 맞대결 못지 않은 단판 승부를 치르게 된다. 앞서 출발한 고다이라 나오가 36초94로 이상화가 가지고 있던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우며 당당히 1위에 올라선다. 이에 질세라 뒤이은 이상화 또한 초반 100m 기록은 10초 20으로 고다이라 나오보다 앞서며 올림픽 3연패에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했던 이상화는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를 범하고 2위로 마무로 짓고 만다. 두사람의 피말리는 레이스는 두말 할 것 없이 명승부였지만 올림픽 최고의 장면은 레이스가 끝나고 나서 나왔다. 바로 울고 있던 이상화를 고다이라 나오가 안아주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이 장면은 세계인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경기가 끝나서야 알려진 두사람의 우정 어린 이야기들은 감동의 깊이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금메달을 딴 일본 고다이라 나오가 울고있는 이상화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건넨 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잘했어"였다.

그리고 고다이라 나오가 이상화를 안아준 이유는 마치 영화 속에 숨겨진 반전 같았다. 그녀는 일본 <스포츠나비>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혼자 울고 있었을 때 그 대회에서 우승했던 이상화가 내게 와서 함께 울어줬다. 그래서 어제 나도 이상화의 마음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화에게 힘을 받아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보답이랄까. 이상화와의 우정은 꽤 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또한 2015년 서울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자신이 우승했을 때 빨리 네덜란드로 돌아가야 했다. 고다이라는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상화가 링크장에서 공항까지 택시도 불러주고 요금도 내줬던 일화를 공개했다. 고다이라는 "결과에 대해 아쉬웠을 법도 한데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은 마음이 몹시 기뻤다"고 전했다.

또한 고다이라 나오가 이상화의 레이스 직전에 자국 응원단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던 장면도 인상적이다. 고다이라 나오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바로 그 순간 기쁨을 누리기보다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자신을 향한 일본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곧바로 경기를 펼쳐야 하는 이상화와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를 존경하며 최대 라이벌이자 국경을 넘은 친구로서 뜨거운 명승부를 펼친 두 여자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면 분명 관객들에게 충분히 짜릿한 전율과 뜨거운 감동을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훗날 양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캐스팅되어 만들어진 영화가 평창올림픽의 추억과 함께 두사람의 이야기를 재조명 하길 기대해본다. 정말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제목은 심플하게 <라이벌>이 어떨까?

그 자체로 영화 같은, 컬링 여자 대표팀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왼쪽부터) 김선영, 김초희, 김경애, 김영미, 김은정 선수가 2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경기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메달을 들고 있다.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왼쪽부터) 김선영, 김초희, 김경애, 김영미, 김은정 선수가 2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경기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메달을 들고 있다. ⓒ 이희훈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나 이번 평창올림픽 최고스타 우리나라 여자 컬링 대표팀의 이야기다. 컬링 불모지에서 올림픽 은메달을 캐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영화 같다.

'언더독의 반란'을 떠오르게 하는 그녀들의 스토리는 식상할만큼 영화에 최적화 되어있다. 올림픽 시작전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세계 랭킹 8위로 아무도 메달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 캐나다 팀을 상대로 8: 6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경기에서 숙적 일본팀에게 5: 7로 역전패 당했지만 이후 스위스(2위), 영국(4위), 중국(10위) 스웨덴(5위), 미국(7위)까지 파죽지세로 연파하며 7경기만에 6승 1패로 4강 진출에 성공한다.

남은 두 경기에서도 러시아와 덴마크를 11: 2, 9: 3으로 대파하며 예선 풀리그를 1위로 마쳤다. 운명처럼 4강전 상대는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숙적 일본 대표팀이었다. 여자 컬링대표팀 스토리의 클라이막스였던 4강전은 일찌감치 표가 매진되고, 내외신 기자들로 기자석이 모자라는 등 폭발적인 관심 속 치러졌다.

한국은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8대 7 승리를 거뒀다. 그들의 결승행은 이슈를 넘어 대한민국을 열광시켰고 국민들을 컬링 열풍 속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스웨덴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머물고 만다. 한편으론 이 아쉬운 결과가 영화 속 엔딩이라면 조금은 인간미 있는 결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스포츠영화에 차용하기 좋은 고난과 시련의 에피소드까지 포함돼 있다. 2014 소치올림픽으로 가는 티켓이 걸려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패하자 리더이자 에이스 김은정은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했다. 그리고 4년의 기다림을 뚫고 맞이한 평창올림픽에선 대한 컬링경기연맹이 파행으로 대한체육회 관리 단체로 지정되면서 선수들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결국 선수들은 태릉 선수촌에서 왕복 3시간씩 버스를 타고 경기도 이천 훈련원 컬링장으로 훈련을 떠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올림픽을 준비했다.

여자 컬링대표팀 자체가 가진 매력도 너무 영화적이다. 선수는 물론 감독까지 전부 김씨인 재미난 우연의 '팀킴'은 구성원부터 영미, 영미 친구와 영미 동생 그리고 영미동생 친구로 결성돼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팀을 떠나 개성 강한 매력을 지닌 선수들은 영화 속 캐릭터로 활용하기에 매우 최적화 되어있다. 바나나 먹다가 로봇설까지 대두되었던 '안경선배' 김영미, 미소가 귀여운 '안경후배' 김선영, 호탕한 매력을 지닌 김경애, 그리고 평창 최고 유행어의 당사자 '국민영미' 김영미까지 영화를 위해 굳이 덧칠이 필요없을 만큼 완벽한 캐릭터들이다. 

게다가 그녀들의 실제 이야기에는 영화에서 충분히 코믹하게 그려질 수 있는 소스들도 풍부하다. 아침밥 먹다가 지었다는 팀원들의 영어 이름들(김영미는 팬케이크이고 김경애는 스테이크이다), 경기장에서 김은정은 올림픽 최고 유행어 '영미'만을 외칠뿐인데 귀신같이 알아듣고 스위핑의 강약까지 조절하는 김영미의 모습. '야'로 시작해서 '야'로 끝나는 재미난 경상도 사투리("야는 버리고 야로 야를 쳐서 야들을 내보낼까?") 그리고 올림픽 대회 기간 동안 경기에만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을 코치진에게 맡기고 인터넷을 안 한 탓에 당사자들은 엄청난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까지 영화 속에서 잘만 살리면 대박 웃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여자 컬링 대표팀의 이야기는 영화화 된다면 같은 비인기종목으로 어려움을 딛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을 수상했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을 모델로 만들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오버랩 될 수 있다. 제발 <우생순> 처럼 허구의 인물과 허구의 스토리로 스크린을 채우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만들어진다면 영화의 제목은 <스톤>이나 <팀킴(Team Kim)>이 어떨까? 필자의 바람대로 두 이야기가 모두 영화화 된다면 4년 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시즌에 개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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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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