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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아이의 정강이뼈 아래에서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구슬이 발견됐다. 아이 유해 위에서는 다량의 탄티와 탄두가 나왔다. 아이 유해 아래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유해가 뒤엉켜 있다.
 8~9세 아이의 정강이뼈 아래에서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구슬이 발견됐다. 아이 유해 위에서는 다량의 탄티와 탄두가 나왔다. 아이 유해 아래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유해가 뒤엉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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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안에 희생자의 발뼈가 그대로 들어있다.
 운동화 안에 희생자의 발뼈가 그대로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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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믿기 어려웠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그대로였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가늘고 긴... 누가 봐도 어린애의 유해였다. 다리뼈 옆에 작은 구슬이 놓여 있었다. 죽은 아이가 평소 가지고 놀던 구슬로 보였다. 발굴팀 관계자는 "8~9세 아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푸른 구슬 위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드러났다. 아이의 두개골은 다리뼈 아래 경사면에서 발견됐다. 유해가 거꾸로 처박힌 것이다.

그 아래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어른의 뼈가 뒤엉켜 있었다. 엄마의 머리뼈 또한 거꾸로 아래 쪽에 놓여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를 품에 안은 것으로 보였다. 다시 그 위로 20대 여성의 유해가 포개져 있었다.

부근에서는 돌 반지로 보이는 작은 은반지도 나왔다. 10세 미만의 어린애는 물론 젖먹이 영아까지 살해했다는 증언이 떠올랐다.

유해가 나무 밑둥아래 경사면에 거꾸로 걸쳐 있다. 살해 후 시신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것으로 보인다.
 유해가 나무 밑둥아래 경사면에 거꾸로 걸쳐 있다. 살해 후 시신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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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유해 대부분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몸이 굽어 있다. 살해 후 시신을 함부로 내던진 것으로 보인다.
 드러난 유해 대부분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몸이 굽어 있다. 살해 후 시신을 함부로 내던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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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밑동 아래에서는 머리를 땅으로 향한 유해가 발견됐다. 나머지 유해 또한 경사면에 뒤틀린 형태로 걸쳐 있었다. 살해 후 아무렇게나 시신을 던져 놓은 것으로 보여졌다.

신발을 벗지 않은 유해도 발견됐다. 채 썩지 않은 운동화에서는 발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머리를 아래로 향한 또 다른 유해의 다리 또한 위 경사면에 굽은 형태로 드러났다. 죽어서도 신발을 벗지 못하고, 몸을 바로 눕지 못한 유해가 덩굴처럼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다.

옥비녀와 은비녀도 10여 개가 발굴됐다. 그만큼 여성 희생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유해 곳곳에서 불을 지핀 흔적도 나왔다. 채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확인 사살하기 위해 시신 더미 위에 불을 지핀 것으로 추정된다. 폐금광 안에서 신음이 날 때마다 동굴 안으로 연기를 피워 질식사시켰다는 증언도 있다.

아산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 현장.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지 4일 만인 지난 26일까지 수습한 유해는 약 30여 구에 이른다. 그것도 폐금광 입구 6~7m 이내에서다. 시신을 겹겹이 짐짝처럼 아무렇게나 포개 놓았기 때문이다.

6~7m 좁은 공간에서 30여구의 유해가 드러났다. 시신을 겹겹이 아무렇게나 포개 놓은 때문이다.
 6~7m 좁은 공간에서 30여구의 유해가 드러났다. 시신을 겹겹이 아무렇게나 포개 놓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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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지르는 듯 고통스런 표정의 유해도 드러났다.
 비명을 지르는 듯 고통스런 표정의 유해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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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은 1950년 아산시 배방면 주변 마을 곳곳에서 끌려 왔다. 인민군 점령 시기 인민군에 협조하는 등 부역을 했거나 그 가족이라는 게 이유였다.

발굴팀의 안경호 4.9 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수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했지만 이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째 유해발굴 현장을 누비고 있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도, 노용석 부경대 교수도 처참한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26일 오후 폐금광 안쪽으로 통하는 동굴면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팀은 안쪽 면에 다량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팀은 오는 28일까지 1차 발굴을 한 후 내달 5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2차 발굴을 벌일 예정이다.

폐금광 안쪽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팀은 금광 안쪽에 많은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폐금광 안쪽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팀은 금광 안쪽에 많은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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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아산시 배방읍 중리마을 뒷산 폐금광에는 약 200~300명의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배방면 10여 개 마을 주민들로 1951년 1월 7일과 8일 '마을 회의' 또는 '도민증을 발급해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소집되었다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과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에 의해 살해됐다. 학살 지휘와 지시는 당시 충남경찰국장과 온양경찰서장에 의해 이뤄졌다.

정부 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아산 부역 혐의 희생 사건'과 관련 "단지 부역했다는 이유로,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반인권적, 반인륜적 국가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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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해발굴, #아산시, #부역혐의, #집단학살,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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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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